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퇴했다.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지난 1월 11일 광주 서구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23~38층의 외벽이 무너져 작업자 6명이 매몰돼 1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지난 해 6월에는 광주 학동 건물 철거 공사장에서 철거하던 건물이 차도로 쓰러져 지나던 버스 승객 8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위 두 참사가 발생한 곳은 모두 현대산업개발이 시공을 맡은 공사장이다.
두 공사는 거론할 필요도 없을 정도 부실했고, 안전수칙은 무시되었다. 무리한 공기단축, 불법 재하도급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산업개발의 아파트 공사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비난 여론이 급증하자 광주 화정 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 6일이 지난 1. 17.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이 용산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장직 사퇴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6월 철거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숨지거나 다쳤고, 다시 지난 11일 시공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해 죄송하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면서 “책임을 통감하며 이 시간 이후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정회장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회장직을 사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주주로서 할 수 있는 부분은 다할 것”이라고 답했다.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는 한 방편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맞는 말일까?
아니다. 법인의 대표할 지위와 자격을 내려놓으면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법인을 대표할 법적 지위와 자격이 없어진 자가 어떻게 법인의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가? “대주주로서 할 수 있는 부분은 다할 것”이라고 했으나, 대주주는 대외적으로 어떤 법적 책임도 지지 않는 반면 법인에 대해 배당을 결정하고 대표와 이사를 선임하고 교체할 막후 권력을 행사할 권한을 보유할 뿐이다.
오는 1월 27일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에서 법인의 경우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준수해야 의무와 책임 주체는 경영책임자인데, 경영책임자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법 제2조제9호). 정몽규 회장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의 지위를 스스로 벗어던진 것이다. 마치 쿠팡의 김범석 이사장이 국내 법인의 모든 이사직을 사퇴한 것처럼 말이다.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정몽규 회장에게 요구한 것은 회장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참사를 일으켰으니 법인의 대표로서 그 참사에 합당한 사회적, 법적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과 정반대로 법적 대표 자리에서 도망을 쳐버렸다. 정몽규 회장의 사과가 얼마나 가식적인지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은 산업안전보건법상의 도급인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도급인은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자신의 근로자와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안전 및 보건 시설의 설치 등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하여야 하”고(법 제63조), 도급인으로서 “제63조의 안전조치의무를 위반하여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법제167조제1항)고 정하고 있다. 만일 정몽규 회장이 공기단축을 지시하고 콘크리트 양생 불량 및 불법 재하도급에 대해 관여하거나 인지하고 있었다면 그는 도급인의 대표로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 제대로 된 수사를 지켜보겠다.
첫댓글 음주운전 사고후,
책임지는 차원에서 앞으로 그 차를 운전하지 않겠다.
적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