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신드롬
(The China Syndrome)
TV 방영제 : 대륙의 폭풍
1979년 미국영화
제작 : 마이클 더글러스
감독 : 제임스 브리지스
출연 : 제인 폰다, 잭 레몬, 마이클 더글러스
스콧 브래디, 제임스 햄튼, 피터 도낫
칸 영화제 남주우연상 수상(잭 레몬)
차이나 신드롬'은 제목을 보면 무슨 중국과 관련된 이야기 같지만 중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영화입니다. 제목 자체가 일종의 전문용어 입니다. 핵 발전소의 위험을 소재로 한 영화이며 방송과 언론이 소재이기도 합니다. 이 두가지 소재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수준높은 드라마로 완성된 사회물 입니다.
우선 제목의 의미부터 살펴보죠(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고중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멜트다운(melt down)' 현상이라고 합니다. 원자로 냉각장치가 고장으로 과열되어 녹아내리는 사고인데 이때 발생하는 열이 엄청난 고온이라서 원자로 아래의 땅까지 계속 녹아내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열이 끝없이 땅속으로 녹아내리고 미국의 반대편인 중국땅까지 뚫고 들어간다는 다소 과장된 의미로 표현한, 즉 원전 사고의 무서움을 표현한 전문 용어입니다. 즉 이 용어의 의미를 안다면 이 영화가 제시하는 방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 개봉되지 않은 70년대 수작영화들이 많은데 이 영화 역시 굉장히 수준높은 작품입니다. 제인 폰다, 잭 레몬, 마이클 더글러스 등 유명배우들이 등장하는데 제인 폰다의 경우는 60, 70년대 헐리웃을 대표하는 명배우였음에도 유독 우리나라에는 많은 영화가 개봉되지 않았습니다. 수준낮은 오락물인 '바바렐라'나 알랑 들롱과 공연한 정통 오락영화 '위기탈주' 같은 영화가 개봉되었고 그녀의 대표작들인 고급 사회물들, '그들은 말을 쏘았다' '클루트' '줄리아' '귀향' '차이나 신드롬' '황금 연못' 등이 모두 미개봉되었습니다. 아카데미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명 여배우인데 두 편 모두 개봉이 안되었을 정도니. 그런 이유는 제인 폰다 자체가 꽤 극성스런 '소셜테이너'로 급진적인 이미지였기 때문에 보수적인 70년대 우리나라 정서와는 좀 안 맞았던 이유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모가 안되면 살아남기 어려운 당시 영화계에서 보기 드물게 미모와 연기력 모두 갖춘 여배우였고, 40대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좋은 작품을 꾸준히 내놓은 장수하는 여배우였습니다. 이 영화 역시 '줄리아' '나인 투 파이브' '신의 아그네스' '황금 연못' 등과 함께 40대 시절에 출연한 수작입니다.
잭 레몬 역시 젊은 시절 주로 코미디 영화에 많이 출연한 배우로 전쟁물, 시대극, 서부극, 액션물, 범죄물 등 오락거리가 많은 영화들에 비해서 정서적 이해가 높아야 소화할 수 있는 코미디물 전문 배우로는 우리나라에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적어서, 제인 폰다 만큼 푸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개봉 편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차이나 신드롬'의 경우는 잭 레몬이 코미디가 아닌 진지한 연기를 한 작품으로 이 영화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코믹 배우가 아닌 연기파 배우로서의 정착을 알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미 아카데미 주연상, 조연상을 모두 수상했던 그는 이후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까지 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 최초로 '칸' '베니스' '베를린 '아카데미 주, 조연상'을 모두 수상하는 배우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4개 영화상을 모두 수상한 배우는 잭 레몬 외에 숀 펜이 유일합니다.(그는 아카데미 조연상을 수상 못했습니다.) 즉 영화계의 사이클링 히트를 친 셈입니다.
뭐, 이런 두 배우가 베테랑이 되어 결합한 작품이니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영화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제인 폰다는 방송국 앵커인 킴벌리 웰스를 연기했고, 잭 레몬은 핵 발전소의 제어실 책임자인 잭 가델 역입니다. 이 영화는 마이클 더글러스가 제작한 작품인데 그는 킴벌리의 동료 카메라맨으로 직접 비중있게 출연까지 합니다.
유명 앵커인 킴벌리(제인 폰다)는 카메라맨 동료 리처드(마이클 더글러스)와 함께 핵 발전소에 취재를 갑니다. 그곳을 탐방하던 중 갑자기 경고음이 울리고 제어실 직원들이 무척 당황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제어실은 촬영이 금지된 보안지역이었는데 리처드는 그곳이 보이는 창문으로 몰래 촬영을 합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곳 책임자인 잭 가델의 무거운 한 마디는 관객들에게 생각보다 꽤 심각한 상황임을 암시합니다. "이젠 모두 끝장이야"
간신히 상황은 진정되고 방송국으로 돌아온 킴벌리와 리처드는 그날 핵 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단정짓고 방송을 준비하지만 윗선에서 압력이 들어오고 리처드의 필름까지 압수당합니다. 리처드가 필름을 훔쳐서 잠적하자 킴벌리는 문책을 당하고 그를 찾기위해 나섭니다. 그 와중에 잭 가델을 만난 킴벌리는 그날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 따져 물었고 잭은 극구 사고가 아니라 가벼운 비상사태였다고 부인합니다. 발전소의 안전성을 킴벌리에게 강조한 잭은 자체적으로 안전조사를 하다가 중요한 부품에 결함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상관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고 납품회사에도 따지러 갔지만 그들은 오히려 잭에게 압력을 가합니다. 이제 회사의 이익과 공공의 안전중에서 선택해야 할 상황, 잭은 진실규명여부를 고민하게 되는데 이미 등을 돌린 회사와 동료들 속에서 오로지 언론사의 킴벌리와 리처드의 지원에 의지하여 양심고백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진실규명을 막기 위해서 윗선에서는 물리적 행사까지 불사하는 와중에 과연 잭의 선택은?
핵 발전소를 중심으로 그곳에서의 안전여부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려는 언론인, 그리고 그 언론인의 추궁과 윗선의 압력 이중고에 시달리는 내부 기술자의 고민을 심도있게 다룬 영화입니다. 전문 용어가 등장하고 현장 탐방이 벌어지는 초반부는 다소 어수선한 듯 하지만, 영화의 중심이 회사에 호의적이었던 잭의 의심과 갈등으로 전환되면서 눈을 떼기 어려운 긴박감이 끝까지 이어집니다. 한국 영화 '판도라'가 많이 연상되는 작품이지만 노골적인 신파와 영웅주의로 얼룩진 '판도라'와는 달리 이 작품은 굉장히 현실적이고 더 디테일하게 상황전달을 하고 있습니다.
잭 레몬과 제인 폰다의 노련한 연기도 한몫 하지만 영웅주의나 과장없이 평범한 발전소 직원이 엄청난 상황을 알게 되면서 전개되는 내용은 '판도라'같은 말초신경 자극하는 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현실감과 공감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이 영화에서는 핵 발전소 자체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윗선의 비리와 영리추구에 급급한 진실왜곡 등에 대해서 날카로운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원인이 결국은 아주 위험하고 중요한 시설을 지탱하는 부품에 대한 투자와 안전점검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결국 사익보다 공공의 안전을 더 추구해야 할 중요 산업시설에 대한 진실하고 투명한 운영관리를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잭 레몬이 연기한 잭 이라는 인물이 벌이는 행동들, 처음에 왜곡에 함께 가담하다가, 진실을 알고 의심하지만 선뜻 과감히 나서지 못하고, 그나마도 중대한 결심을 하고 방송에 고발하는 과정에서도 당황하여 비논리적으로 횡설 수설 하는 장면 등은 굉장히 리얼합니다. 가끔 영화에서 보면 평범한 인물이 비현실적인 초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의 잭 이라는 캐릭터는 사실상 가장 현실적이고 과장없이 그려낸 인물입니다. 그래서 관객들 입장에서는 영화가 좀 더 통괘하게 진전되기를 바랬지만, 킴벌리, 리처드, 잭은 비현실 오락물의 주인공처럼 특별한 초능력을 발휘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보통 인간으로서 진실규명을 위해서 혼신을 다하는 인물일 뿐.
감독 제임스 브리지스는 이 영화 이전에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로 알려진 인물로 그다지 많은 작품을 연출하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가 '인생의 연출작'이 되었습니다. 헐리웃 스타 출신의 잭 레몬과 제인 폰다의 노련하고 원숙한 연기가 정점에 달한 작품이고, 두 배우 모두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잭 레몬은 칸 영화제 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그보다 6년전에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호랑이를 구하라'에서의 진지한 연기로의 변신 이후 완전히 중후한 모습으로 정착한 느낌이고, 젊은 시절에 개구쟁이 익살꾼 같은 고정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여 중견배우로서의 관록까지 느껴집니다. 제인 폰다 역시 앵커역할이라는 쉽지 않은 연기를 굉장히 무난히 해내고 있습니다.
최근 원전 폐쇄 관련 논란이 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원전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고, 그래서 '판도라'같은 영화도 나왔겠지만 이 부문의 전문가가 아닌 제 입장으로 볼때는 원전을 페쇄하든 아니든, 더 중요한 것이 결국 비리없고 투명한 관리와 전문가의 진실한 분석, 그리고 사익보다 공공의 안전을 더 중시하는 사명감 등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편히 누리는 전기를 비롯한 여러 에너지의 근원은 편리함 만큼의 큰 위험을 같이 수반하고 있으니... 이미 거의 40여년전에 헐리웃에서는 이렇게 원전의 위험과 안전관리를 지적하는 작품이 등장했던 것입니다. 특히 소셜테이너로 알려진 제인 폰다가 그녀 답게 선택할만한 소재이기도 했습니다.
국내에 극장개봉되지 못했고, '로맨싱 스톤'보다 몇년 젊은 시절의 마이클 더글러스가 조연으로 비중있게 출연하고 있고, 1989년 공중파 TV에서 '대륙의 폭풍'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바 있습니다. '라스트 픽쳐 쇼' '네트워크' '차이나타운'등 국내 극장에서 개봉되지 못한 70년대 헐리웃 수작 중 한 편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후반부에 방송국 기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명백한 범행이 자행되는 건 좀..... 도대체 어떻게 수습을 하려고.
ps2 : 70년대에 유독 좋은 사회물들이 많았습니다. 방송과 언론의 기능이 많이 높아져셔 그랬는지.
ps3 : 이 영화가 79년 3월에 미국에서 개봉되었는데 마침 같은달에 미국 펜실베니아주 원자력 발전소에서 비슷한 사고가 발생하여 예언역할을 한 작품이 되었다고 합니다.
ps4 :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도 멜트타운 현상으로 일어났다죠. '차이나 신드롬'이 아니라 '아메리카 신드롬'이 된 셈이네요.
[출처] 차이나 신드롬(The China Syndrome 79년) 핵발전소의 위험을 경고|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