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엄은 젊어서 경론에 통효하여 칭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법문이 번성하고 흥하여 지혜의 바다 깊고 깊어지지만 훌륭한 마차의 방향을 어디에 둘지 알지 못한다”라고 한탄하며 경장 앞에 서서 그저 손에 닿는 대로 집었던 것이 화엄경 제1권 & 이후 화엄경 연찬에 힘을 쏟게 되며 혜광의 화엄경소를 보고 깨달은 바가 있어 입교 개종. 화엄경전기, 이시이 코세이 재인용.152-153
지엄은 그 방향(司南, 맡을 사)을 여래장성, 불성설이 아니라 화엄경 성기품에서 끌어냄. 성기품(성기경)은 여래장설, 불성설의 원천이지만 그 교설이 반드시 소위 여래장성 혹은 불성설과 동일한 것은 아님.
나카무라 즈이류(중촌서강, 中村瑞降)는 성기품에서 중생 가운데 여래가 있다고 설하는 건 가장 오래된 여래장경전인 ‘여래장경’이, 부처의 눈으로 보면 중생은 如來智 如來身 如來藏當을, 때 없는 그대로 갖추고 있다, 고 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후대의 여래장경전과 같이 번뇌가 얽혀 때가 있는 여래장을 갖추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라고 함.
또한 다카사키 지키도(고기직도, 高崎直道, 험할 기)에 의하면 여래장경에서는 “중생이 여래 그 자체를 감추었다”고 설하는 것에 대해, 뒤에는 중생 가운데 있는 여래와 같은 본질인, 미레의 여래가 될 만 원인을 여래장이라고 부르게 되지만, 그런 동질의 원인이라는 성격을 강조한 것이 불성이라 말함.
또 다카사키는, 시대가 내려가면 그런 여래장이 왜 염정의 依持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추구하게 되고, 나아가 染緣起의 근거가 된다고 설명하기 위해 아라야식설과 결합하게 된다고 논함.
즉 지엄에 의해 淨緣起로서는 충분하지 않고, 염연기의 구조를 밝히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판정된 여래장설은 마지막 단계의 여래장설이 된 것. 보다 정확히는 당시 알려져 있는 여래장설과 불성설을 도입하여 일체 염정의 제버보가 여래장, 불성의 관계를 미세하게 논하여 극히 자세하게 설하려고 하는 정영사 혜원의 교학이 비판된 것.
번쇄한 해석을 거부하는 지엄이, 중생 가운데 여래의 지혜 그 자체가 있다고 선언하고, 그 依持가 되는 如來智의 선한 작용만을 설하는 화엄경 성기품에 착안한 건 매우 자연스러운 결말.
또 삼계교가 일체 중생을 여래장불이라 보고, 여래장에 근거하여 보법을 실천해야 한다고 설한 건 잘 알려져 있는데, 지엄은 그 삼계교설을 높이 평가한다. 말하자만, 지엄은 혜광의 화엄경소를 통해 토기 여래장사상의 종교성을 지향한 것이다. 153-154
첫댓글 지엄은 정영사 혜원의 여래장설을 격렬히 반대했다고 하지요
화엄종 두번째 조사 지엄의 고뇌가 스려 있습니다
경전은 저렇게 많고 깊기도 엄청 깊은데 나는 과연 저 많은 경전 어느 것에 마음을 두고 공부해야 할까
지금도 금강경이 최고 아니다 법화경이 최고다 아니다 열반경이다 아니다 정토가 최고다 아니다 禪이 최고다...
지금보다 더 했을 그때
지엄스님의 한탄이 들리는 듯 합니다
이단으로 낙인 찍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삼계교를 지엄이 높이 평가했다 는 대목, 꼭 기억하세요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