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장미
절정이 지난 꽃그늘 터널을 지나 그 여인을 만나러 간다. 문득 장미로 우거진 정원에서 멈춘다. 그녀가 홀로 서있다.
환희에 찬 순수의 의상으로 먼 곳을 지켜보며 약동하는 봄날을 노래하는 화사한 몸짓이다. 그 언어는 순전하여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좋다. 오랫동안 천상의 음색이 이 땅에서 퍼져나가면 된다. 장미꽃밭은 노래하는 여인으로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된다.
지난 5월 끝자락 지인들과 장미를 보러 중랑천엘 갔다. 카톨릭 신자인 한 지인이 ‘노래하는 여인상’을 찍은 사진에 붉은 장미 화관을 씌워 성모마리아로 변신시켰다. AI의 힘이다. 성상 모독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흔한 붉은 장미 화관이었을까. 혹 푸른 장미를 씌워도 더 잘 어울릴 텐데. 그러고 보니 장미축제엔 푸른 꽃잎이 보이지 않았다.
푸른 장미를 가끔 보았다. 오래전에 살았던 독일 프랑크푸르트 근교 크론베르크의 ‘고성(古城) 호텔’ 정원에는 ‘장미꽃밭’이 있었다. 고색창연한 호텔 뒤편 정원에는 다채로운 색깔의 장미가 무리 지어 피어났다. 단연 눈길을 끈 것은 신비한 모습의 짙푸른 장미꽃이었다.
우연히 일본과 호주에서 유전공학을 이용하여 2004년에 푸른 장미를 만들었다는 기록을 보았다. 그렇다면 훨씬 이전인 1990년대 초에 본 그 장미는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종이로 만든 조화였을까. 독일인의 성정으로 보아 파란 염료로 눈속임하지는 않았을 텐데,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늦은 봄과 초여름에 내리쬐는 햇살이 장미의 불타는 열정을 담아내기에 적절한 기후인 것 같다. 들녘에 온갖 꽃을 먼저 피우게 한 뒤 장미가 늦게 등장하는 이유는 자신감일 것이다. 그래서 장미를 흔히 ‘계절의 여왕’, ‘꽃의 여왕’이라고 부르나보다. 여왕이 여왕을 알아보듯, 역사상 장미 향기를 가장 즐긴 인물은 클레오파트라와 네로황제라고 한다. 이들이 베푸는 연회에서 그 향기를 즐기기 위해 크레오파트라는 장미꽃잎을 1미터 높이로 쌓았고, 네로는 하룻밤 사이에 15만 달러에 상당하는 장미를 온갖 용도로 소비하였다고 한다.
이즈음 산동네 마을 대부분의 주택 담장에는, 약속이나 한 듯, 덩굴장미꽃으로 덮여 있다. 그뿐 아니라 담장이 없는 어느 아파트 앞쪽에는 회양목 등 관목 사이로 분홍빛과 붉은 장미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왕이 살던 곳은 어디이며, 언제쯤 우리 땅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야생 장미는 북반구의 온대와 한대지역에 분포되어 자라고 있었으며, 19세기에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고 한다.
장미는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낯선 이국적 분위기를 풍긴다. 볼륨이나 겹겹이 쌓인 꽃잎의 질감은 누군가 언뜻 종이로 솜씨 있게 만든 조화처럼 보인다. 붉은색, 주황색, 분홍색, 흰색, 노란색, 보라색, 검은색, 초록색, 푸른색 등 현란한 색감도 그러하다. 그중 푸른 장미의 자태는 신비스러울 정도이다. 이 푸른 장미를 누군가에 선물한다면 받는 자에게 젊음을 주거나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어느 사이 ‘계절의 여왕인 5월’이 ‘꽃의 여왕’인 장미를 6월에 넘겨주고 떠났다. 어느 날 이웃 마을 지나다 아담한 양옥집담장이 눈에 들어왔다. 소나무 우둠지까지 뻗어 올라 활짝 핀 빨간 장미가 설치예술처럼 보였다. 푸른 솔잎 배경에 어울려, 덩굴장미의 화사한 빛깔은 동양화 한 폭에 더해진 수채화 풍경이었다. 느리게 한낮의 열정을 뿜어내고 있었다. 지나가는 모두에 실러의 〈환희의 송가〉를 전해주는 꽃다발로 보였다. 생명의 처음 기운을 회복시키는 듯 느껴졌다. 푸른 장미는 아니더라도 짙푸른 솔잎 사이에서 한껏 존재감을 드러내는 듯했다.
그 꽃에서 실의나 악의를 품을 자가 없을 것이다. 꽃 앞에 서면 누구나 한 번쯤은 시인이 된다. 문득 발코니에 푸른 장미 한 송이를 키우고 싶다. 어른 키만큼 자란 침입자 개망초와 대조될지 모른다.
자료를 확인해 보니, 푸른 장미는 원래 흰장미에 푸른색을 염색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장미에는 푸른 색소인 델피니딘을 생산하는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모르지만 얼마나 처절한 아름다움의 추구인가. 푸른 장미는 신비로움의 상징이다.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얻기 위한 사람들의 열망이 유전공학까지 동원하였다. 붉은 색소의 발현을 억제하고 팬지와 같은 다른 식물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주입하여 ‘유전자 변형’ 푸른 장미를 만들어 냈다니 참으로 놀라운 신세계이다.
창조주가 푸른 장미를 만들지 않았음은 사려깊은 지혜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꽃의 여왕에게 신비감마저 더해준다면 형평성에 어긋나는 특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어느 봄날 사정이 허락하면, 고즈넉한 크론베르크 ‘고성(古城) 호텔’(Schlosshotel Kronberg)을 다시 찾아가서 푸른 장미를 확인해 보고 싶다. 그때 느꼈던 신비로운 색감을 놓쳐버리고 싶지 않아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