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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그리스도인과 술
주정길 추천 0 조회 607 18.02.17 08:42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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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8.02.17 16:44

    첫댓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행방시키셨다(롬 8:2)는 것을 체험 안에서 설명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과 술"이라는 주제의 글을 옮겨 보았습니다. 사람이 아무 생각없이 술을 탐닉하다가 보면 언젠가는 술에 빠져 자신의 의지로는 거기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상태가 됩니다. 이런 상태를 "알콜 중독"이라고 합니다. 저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 저의 인생에 있어서 술은 가장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환경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 작성자 18.02.17 16:53

    무엇보다 술로 인하여 저의 인생은 파멸 직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값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1990년에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정말 간절히 삶의 저주에서 건져주실 것을 부르짖어 구했습니다(렘 33:3). 그리고 그리 오래지 않아 마치 한 여름의 소낙비처럼 저의 인생의 메마름을 적셔주는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은혜와 사랑 안에서 날마다 더해가는 영육 간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일하다가 땀을 많이 흘렸던 무더운 여름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시원한 캔맥주가 생각이 났습니다.

  • 작성자 18.02.17 16:55

    @주정길 저는 망설임 가운데 악한 옛 습관을 거절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순간 영상처럼 분명하게 제 마음 속에 그려지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아침 안개가 어데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밀려 시야에서 멀어지는 광경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기쁨 안에서 "이제야 내 안에서 나를 저주하고 괴롭히는 악한 영의 정체를 분명하게 보았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훗날(구원받고 꼭 10년이 지난 2000년 5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내가 완전히 해방된 진정한 은혜의 체험"(롬 8:2)에 비하면 잠시 스쳐가는 바람과 같은 체험일 뿐이었습니다.

  • 작성자 18.02.17 16:57

    @주정길 2000년 5월 어느날 하나님께서는 나의 육체 안에 있는 죄의 본성(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박히고 죽음에 넘기워진 사실(갈 2:20)을 성령 안에서 체험적으로 분명하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당시 저의 입에서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은 "아~! 주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 사실이었구나~!" 였습니다. 비로소 나의 연약한 믿음 위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 곧, 그리스도의 믿음이 덧 입혀진 것이었습니다. 이 후로부터 저의 영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시며 이기는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살아 움직임을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내 안에서 나를 대신하여 사십니다(갈 2:20).

  • 작성자 18.02.17 16:47

    @주정길 주님께서 나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 은혜를 인하여 나는 죄들의 사함과 영생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누려야 할 첫번째 축복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온전한 생명을 선물로 받았지만 그 생명은 아직 의의 단단한 말씀을 먹을 만한 성숙함에 이르지 못한 상태입니다.

    내 안에서 생명은 조금씩 자라기 시작하고 결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육체 안에 있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롭게 해방시키시고 내 안에서 나를 대신하여 사심을 체험합니다. 곧 성령 안에서 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체험으로 아는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누려야 할 두번째 축복의 시작인 것입니다

  • 작성자 18.02.17 16:48

    @주정길 세번째 축복의 시작과 단계를 논하기에 앞서 이제 어떻게 하면 "알콜 중독"으로부터 해방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알콜 중독'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의지로는 "술'로부터 벗어나올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하고 고백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첫걸음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하냐면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만 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람이 자신의 의지도 사용하고 하나님의 은혜도 이용하려고 한다면 결코 하나님께서는 알콜로부터 해방되는 은혜를 허락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구원이란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악으로부터 건지심을 지켜보는 것을 말합니다.

  • 작성자 18.02.17 17:01

    @주정길 중독이란 말이 나왔으니 이 중독에 대하여 조금 말하고 싶습니다. 스스로 어느 정도 건전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술이나 담배, 마약을 해 본 적이 없으므로 '중독"되었다는 말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자신을 잘 알 지 못하여 하는 말이 분명합니다. 사람이 비록 거듭났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사람의 육체는 죄와 세상의 영으로 중독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육체 안에 "죄의 법"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크고 분명한 잘못을 자주 일으키면서 살아왔던 사람들보다 어떤 면에서 죄의 본성, 곧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해방을 체험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 작성자 18.02.17 17:02

    @주정길 어느 두 사람에게 밖의 마당에 나가서 돌을 주어 오라고 시켰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큰 돌을 대여섯 개 주어 오게 하고 또 한 사람에게는 아주 작은 돌을 대여섯 개 주어 오게 한 후, 다시 자기가 주어왔던 그 자리에 돌들을 가져다 놓으라고 하면 첫번째 큰 돌을 주어온 사람은 그리 어렵지 않게 다시 갖다 놓을 수 있지만 아주 작은 돌을 주어온 사람은 매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유는 큰 돌은 마당에 그리 많지 않아서 주어온 위치를 대번에 알 수 있지만 반면 작은 돌은 마당에 널려 있어서 주어온 작은 돌의 처음 위치인지 알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지은 죄도 그럴겁니다..

  • 18.02.17 19:00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쥬스다'
    '술을 마시는 것 조차 죄다'라는 말씀이시네요.

    그리스도인들에게 술에 관한 의견이 분분한 것 같습니다.
    '전혀 안된다'라는 주장과 '조금은 괜찮다'라는 주장. 흠..... 저는 후자쪽입니다.
    그리고 포도쥬스는 아니고 포도주가 맞다고 생각하고요.

    묵상할 수 있는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됩니다^^
    (사실 쥬스이야기는 오늘 처음 들어봐요. 왜 쥬스라고 생각하시는지 알것 같습니다.)

  • 18.02.17 21:22

    예수님이 마신것은 포도주가 맞습니다
    세례요한은 포도주를 전혀 입에 대지 않았구요
    대답해 보시지요 누가 옳은 사람입니까?

  • 18.02.17 21:21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을 비난했습니다.
    '귀신 들려서 포도주도 마시지 않고 고기도 먹지 않는구나'

    그런데 유대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이번에는 예수님께는 이렇게 비난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가 포도주도 마시고 고기도 탐하는도다'

  • 18.02.17 21:14

    주의 만찬은 포도주와 빵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식사 방식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 가면 그때의 포도주를 재연해서 판매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건 술입니다.

    예수님께서 포도주와 고기로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어설픈 경건주의자들은 그것을 오류로 잡아내기에 급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도덕성이 하나님보다 우월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능가하는 그 '법' 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 18.02.17 22:22

    거룩해 보이기는 해야겠고
    차마 예수님을 정죄할 수는 없고...
    그래서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만들어 낸 해석
    '예수님이 마신건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주스였다' ...

    오늘날의 신학들은 모두 이런 식의 해석들로 교묘히 발전하였습니다.
    과거 바리새인들보다 더 지독한 위선입니다.

    과거 유대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낫기는 커녕 발꿈치도 못따라가면서
    금욕주의,경건주의를 흉내내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코미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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