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는 우리말 / 조 광 연
"화장실이 어디인가요?"
"예, 왼쪽으로 조금 가시면 있으세요"
높임의 대상이 아닌 일반 사물을 가리키는 경우에도 이처럼 높임말을 쓴다. 병원을 가면 간호사가 환자에게 "들어오세요"가 아닌 "들어오실게요"., "나가실게요"라고 한다. ~ '할게요'는 자신이 뭐를 어떻게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지,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거나 권할 때 쓰는 말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높임말의 과잉사용이 일상화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법에 맞지 않게 어휘를 구사하는 경우가 참 많다. 어디선가 보니 원고를 언제까지 제출해 달라는 취지의 공지를 하면서 "옥고 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한 것을 봤다. 상대방의 글, 원고를 높여서 지칭할 때 옥고라고 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옥고를 언제까지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는 할 수는 있어도 “옥고 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는 것은 어법에 맞지 않다.
대화할 때 보면 유독 "~ 같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주관이나 어떤 의견을 이야기할 때에도, 자신의 소신을 말할 때에도 “~같아요 “ 라고 자신 없는 투로 말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심지어 여러 사람 앞에서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에도 ”○○○입니다"라고 하지 않고 ‘○○○라고 합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마치 다른 사람을 누군가가 대신 소개할 때 쓰는 말투를 자신을 소개할 때에 쓰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 어릴 적 친구를 몇십 년 만에 만났다거나 생각지 않은 어떤 상황에 부딪쳤을 때 등에 '우연히'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 그러함에도 대부분 "우연치 않게"라고 한다. 거의 99%가 "우연치 않게"로 잘못 쓰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많겠지만, 몇 개를 더 들어본다. “가늘다”, “굵다”, “얇다” “두껍다”의 혼용, 잘못쓰임이다. "가늘다' 굵다"는 기둥이나 어떤 원통을 이루고 있는 사물의 굵기를 말할 때 쓰는 것이고, "얇다 '두껍다"는 판자 등 그 두께를 말할 때 쓰이는 것임에도 "허벅지가 두껍다, 얇다"라고 쓰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허벅지가 굵다, 가늘다"라고 해야 한다
생일이나 명절 때 하는 인사말로 흔히들 "좋은 시간 되세요"라고 한다. 즐겁게 행복하게 지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말인데 이는 잘못 쓰는 말이다. 인사를 받는 사람더러 좋은 시간이 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좋은 시간을 보내거나 갖는 주체이지 사람 자체가 좋은 시간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시간 보내세요" 또는 "좋은 시간 가지세요"라고 해야 한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자기 남편을 지칭할 때 신랑이라고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젊었을 적 기억을 떠올리며 그러는지 모르지만 어색하게 들린다. 남편이라는 좋은 호칭이 있으니 남편이라고 해야 맞다.
중의적인 표현도 심심치 않게 쓴다. 역전앞과 잔도棧道길이다. 역전이라 하고 잔도라고 하면 뭔가 의미 전달이 부족한 거 같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부고"訃告라고 하면 될 것을 "부고 알림"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한자어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우리말을 덧붙여서 생기는 오류다. 젊은이들끼리 통용되는 디지털 언어도 문제다. 말을 줄여서 쓰는 줄임말 즉, 약어는 나이와 관계없이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어떤 경우는 은어 수준이어서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말 우리글,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글이요 말이다. 2009년에 이어 2012년에 개최된 ‘세계문자올림픽대회’에서 연속 금메달을 땄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우리말과 글을 잘 발굴, 보급하고 발전시켜야 할 책무가 있다.
교육부를 비롯하여 문화체육관광부(국어정책과), 국립국어원, 한글학회, (사)국어문화원연합회, 국어문화운동본부, 한국어교육학회 등 정부기관과 단체에서는 고생하는 우리말이 더 이상 힘들지 않게 대국민 교육에 나서야 할 것이다.
존재감도 없이 있다가 한글날에만 TV에 얼굴을 비추는 일 하지 말고 연중 내내 TV 등 매체에 나와서 잘못 쓰이는 말과 글을 바로잡고, 아름다운 말과 글을 적극적으로 보급하는 일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24.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