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병산아 울지 마라. 백두대간29구간(백복령-삽당령)
2008. 8. 16(토) 흐리고 비
산사랑방 홀로
일출 05:40 / 일몰 19:15 / 음력 7.16
▲석병산(1055m)
첫째 날 : 2008. 8. 15. (금) 비 오락가락
06:00 귀네미골 안부 -산행시작-
06:20 큰재
07:30 황장산
07:40 댓재 -산행종료-
▣ 산행시간 : 1시간 40분 (6.20km) 피재-댓재 구간 땜방
둘째 날 : 2008. 8. 16. (토) 흐리고 가끔 비
10:00 백복령 -산행시작-
11:28 생계령
13:05 900봉
13:20 고병이재
14:26-14:35 석병산
15:10 두리봉(장의자 쉼터)
16:20 삽당령 -산행종료-
▣ 대간종주 거리 : 6.20km+18.50km / 누적거리 544.67km (포항셀파 기준)
첫째 날 : 귀네미골→4.70←황장산→1.50←댓재
둘째 날 : 백복령→3.28←헬기장→8.92←석병산→1.60←두리봉→4.70←삽당령
▣ 총 산행시간 : 1시간 40분+6시간 24분 (6.20km+18.50km) / 누적거리 : 580.67km
▣ 식수위치 : 없음
▣ 교 통 : 자가운전 (서대구I.C-영주I.C-현동-태백-35번-피재-귀네미골 235km)
▣ 차량회수 : 꼭지의 차량지원
택시연락처 : 임계개인택시 011-331-4024 / 동해개인택시 018-355-8297(심화진)
****************************************************************************************************************
2008. 8. 15(금)
출정식(?) 서두 이야기
8월 15일부터 시작되는 3일간의 연휴를 이용하여
지난번에 남겨놓았던 귀네미골에서 댓재 6.2km 구간과, 댓재에서 백복령 29.1km구간
백복령에서 삽당령 18.5km구간을 끝내기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댓재~백복령구간은 꼭지가 하루에 끝낼 수 없는 장거리구간이라
중간쯤인 이기령 가기전에 있다는 샘터에서 비박을 하기로 하고 배낭을 꾸리니
텐트며 침낭, 하룻밤의 살림살이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일기예보는 계속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다.
아무리 대간에 미친 부부라고 하지만 우중에 비박을 할 수는 없는 일
그렇다고 대간을 하면서 마른자리 진자리 가릴 수도 없는 일..
이래저래 머리도 무거운데 배낭을 드니 그 무게의 중압감에 산행도 하기 전에 쓰러질 것 같다.
때마침 말년휴가 나온 막내가 컴퓨터 앞에서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어른 눈에는 쓸데없는 짓으로 보이지만 아이들은 그것도 공부라고 항변한다.
‘그렇지! 저 놈을 데리고 가야겠구나.’
“아들아! 산에 가자.”
“....?”
뜬금없는 아비의 말에 아들이 고개를 돌리며 멍하니 쳐다본다.
“아빠 무거운 배낭 좀 지고 가자.”
“.......?”
그냥 산에 가자면 안가겠지만 배낭 들어달라면 기꺼이 들어줄 아들..
막내는 고등학교 다닐 적에 월악산, 가야산에도 함께 오른 경험이 있어서 등산의 의미를 알고 있다.
하지만 큰놈은 산이라면 질색이다. “내려올 산 왜 힘들게 올라갑니까?” 어쩌고저쩌고..
인생도 살다보면 내려올 날이 있을 터인데..
그래서 짐꾼(?) 막내를 데리고 집을 나서니 시계는 밤10시를 넘어서고 있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는다.
대구에서 태백은 참으로 멀고도 먼 길이지만 이제는 출근하는 기분으로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길이 되어버렸다. 피재에 도착하니 새벽2시, 삼수령이란 이름에 어울리듯이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빗님 대가족의 이별.. 이럴 때는 읽기예보가 좀 틀려주면 좋겠지만..
그러나 희망사항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다.
피재정자에서 비박을 하고 새벽에 지난번에 남겨놓은 귀네미골-댓재 구간을 마무리하기로 했으나
정자에는 이미 불빛이 어른거린다. 우중에도 어느 대간꾼이 벌써 비박을 하시나 보다.
어쩔 수 없이 비좁은 승용차 안에서 새우잠으로 새벽을 맞이한다.
차창을 두드리는 빗물가족의 장단소리가 흥겨운 밤..
처음부터 비는 우리를 유별나게 좋아했다.
작년 이맘때 지리산에서 대간을 시작할 때도 비와 친했고
가을에는 거의 전 구간에서 비를 홀딱 맞으며 진행했다.
눈을 뜨니 새벽5시, 빗소리는 여전하다.
휴게소 자판기에서 커피한 잔 빼먹고는 지난번 하산했던 귀네미골로 향하는데
새벽 어둠과 안개로 인하여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마을입구를 지나쳤다가 다시 백 하여 버스정류장이 있는 <귀네미로>마을 입구를 찾았지만
마을에서 안부까지 올라서는 임도길이 거미줄처럼 엮여있어서 찾기가 힘이 든다.
지난번에 택시타고 내려온 길이지만 안개 속에서 몇 번 헤매고 나서야 능선안부에 도착한다.
06:00 운무 가득한 귀네미골
댓재까지 6.2km, 2시간이면 충분하다고 꼭지를 위로하지만
우의를 입고 산문에 드는 내가 안쓰러운지 염려하는 꼭지의 눈길을 애서 외면한다.
아들 사진 한 장 찍어주고 물 한 병만 넣은 간단한 배낭차림으로 산문에 든다.
무성하게 자란 잡풀과 싸리나무가 지난번에 왜 꽁지를 뺏느냐며 물 폭탄을 퍼붓는다.
‘그건 내 탓이 아니야. 더위 탓이여~~.’
변명을 늘어놓아도 소용이 없다.
10분여 수풀을 헤치고 진행하니 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있는 임도길이다.
좌측으로는 배추밭이 끝없이 이어지고 운무가 가득하여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임도 따라 내려서니
달맞이꽃과 개망초가 함초롬히 피어서 불안해하는 나의 마음을 위로한다.
10분여 임도길을 내려서니 ‘큰재’ 이정표가 나오고 등로는 우측산길로 접어든다.
빗속의 무장공비 같은 내모습이 스스로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지만 밀린 숙제(?)를 해결한다고 생각하니
무거운 짐을 벗어내듯이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이렇게 행복한 무장공비도 있었을까.
한여름의 열기를 식히고 있는 낙엽송들의 부대끼는 소리를 들으며
운무속에서 더욱 고고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황장목 숲을 지나 황장산에 오른다.
정상석 대신 <댓재 0.6km, 큰재 4.4km> 이정목이 반갑게 맞아주나
신갈나무와 잡목이 산 사면을 메우고 있어 맑은 날에도 조망이 되지 않아 보인다.
이곳에서 댓재까지는 10분여 포근한 산길로 이어진다.
▲황장산 가는 길
▲황장산
▲댓재휴게소
그 후
댓재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기다려보지만 비는 계속 내리고..
우중에 꼭지와 아들을 데리고 두타, 청옥을 넘어 비박을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셋이서 삽당령구간을 이어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는지라 동해바다로 기수를 돌린다.
"가자! 바다로.. 비오는 날은 바다가 최고야~~~!"
..........................
▲추암 촛대바위에서
저녁 6시쯤 댓재휴게소에 도착하니 빈방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다시 동해시로 그 꼬부랑길을 내려가려니 엄두가 나지 않아 근처에 숙박할 때가 없느냐고
물으니 하장읍내에 가면 모텔이 하나 있으니 거기 가보라고 한다.
하장은 댓재와 백복령, 삽당령에서 접근하기도 좋다.
15분여 걸려 하장읍내 한 모텔에 도착하니 빈방이 하나 남았다고 하는데 시설은 별로지만
가격(30,000원)도 적당하고 댐 아래에 위치해서 계곡으로 조망도 좋다.
모텔이 해발고도 640m에 위치하다보니 아예 방안에는 에어콘이 없었고
밤에는 추워서 보일라를 틀어 줄 정도였으니 하장에서 에어콘 장사했다간 말아먹기 십상일 것 같다.
결국 비박대신 이곳에서 이틀간 머물며 댓재에서 삽당령까지 47km의 산행을 마치게
되니 대간하면서 처음으로 모텔에서 뜨거운(?) 밤을 맞게 된다.
2008. 8. 16(토)
아침에 일어나니 빗님이 또 사정없이 내린다.
모텔 건너 산사면의 나무들이 드러누울 정도로 바람도 심하게 부는지라 산행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또 고민에 빠진다.
TV뉴스에서 흘러나오는 폭우로 인한 인명사고소식에 불안스럽기도 하지만
세계를 들어 올렸다는 올림픽 역도뉴스는 나약해지려는 마음에 더욱 용기를 심어 준다.
"그래 가자~~"
퍼붓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하늘을 원망한 듯 무슨 소용이 있으랴.
오직 행동만이 있을 뿐..
산행준비를 한다.
백복령~삽당령구간은 18km정도..
혼자서 6~7시간이면 충분하니 5시전에 도착한다며 꼭지를 안심시키고
내일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하니 댓재~백복령구간은 내일 다 함께 하기로 하고 백복령으로 향한다.
10:00 비 내리는 백복령
백복령의 들머리는 간이 휴게소가 있는 나무팬스 옆으로 이어진다.
꼭지와 아들의 배웅을 받으며 산문에 들어서니 초입부터 잡풀이 우거져 빗물이 바지를 적신다.
둔덕을 넘으니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가로질러 물이 흐르는 두어 개의 도랑을 건넌다.
석회석 채굴을 위한 임도개설로 마루금은 없어지고 그냥 길이 생긴 것이다.
곧이어 물을 한 것 머금은 싸리나무터널을 지나니 우의를 입었지만 온몸이 젖는다.
안부에 올라서니 우측으로 속살이 하얗게 드러난 자병산의 흉측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시멘트원료인 석회암을 채굴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자병산은 영원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깊은 상처만이 남았다.
▲백복령
▲자병산
▲카르스트지형
▲생계령
▲도라지꽃
카르스트지형이라는 표지판을 지나니 웅덩이처럼 움푹 파인 곳이 많다.
땅속에 있는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지하수나 빗물에 녹아내려서 암석이나
지층이 침식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이 비오는 날 걷다가 땅이 내려앉으면 어쩌나 싶어 다리야 날 살려라 하며 걸음을 빨리한다.
조망이 트이는 작은 암봉을 내려서니 생계령이다.
장의자가 설치되어있어서 배낭을 벗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우중산행은 불편한 점도 있지만 나름대로의 운치도 있다.
땀에 젖고 빗물에 씻기다 보면 자신을 비우게 되고 그 비움은 산과 하나가 되게 만든다.
그러면 산도 더없이 맑고 깨끗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비온 후의 풍경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또 있을까..
▲계속 시야에서 떠나지 않는 자병산
▲백두대간을 감시하고 있는 노송
▲당신은 어디서 왔나요?
산책로 같은 편안한 길을 지나 작은 암봉에 오른다.
비가 잦아들더니 운무가 걷히고 첩첩이 어깨를 포갠 산마루가 하나둘 씩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아!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른다.
멀리 동해바다가 희미하게 보이고 부챗살처럼 펼쳐지는 산등성이들이 곱게 곱게 고개를 내민다.
비오는 날이기에 잠깐씩 비쳐지는 이러한 조망에도 감격해하고 고마워하는 것이리라.
배낭을 내려놓고 바위에 털썩 주저앉는다.
가져간 식빵을 꺼내어 그 위에 딸기쨈을 바르니 먹기도 전에 침이 꼴깍 넘어간다.
성찬이 따로 없다.
산에서는 걷기 위해서 먹고 살기위해서 먹는 것이라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가 보다.
높이 솟아오른 하늘도 한 점 달라하고, 지나는 구름도 한 조각 달라한다.
겨우 빵 두 조각이지만 배가 부르다.
▲동해 방향
▲열정적인 사랑의 애원
▲물폭탄을 장착한 싸리나무터널
▲지나온 자병산과 대간 마루금
다시 길을 나선다.
꼭지와 아들은 모텔에 있다. 산이 좋아 산에 들었지만 가족의 품이 그립다.
걸음을 빨리한다. 간사한 인간의 마음이 이러하지만 자연은 안아주고 보듬어준다.
홀로 핀 산도라지꽃이 반갑다며 손을 흔든다.
만나기 힘든 꽃인데 지나는 길에 몇 송이가 눈에 띤다.
또 있다.
용광로처럼 붉은 입술로 열정적인 사랑을 애원하는 엉겅퀴도 빗속의 친구가 된다.
그러나 걸음 내내 아쉬움이 있다.
뒤를 돌아보면 자병산의 아픈 상처가 계속 시야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병산아! 자병산아 용서해다오.”
다시 또 하늘이 어두워지고 비가 쏟아진다.
하늘도 우는가 보다.
갑작스런 운무와 어둠.. 길 찾기에 긴장감이 흐르지만 리본만 따르면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육감과 선답자들의 표시기에 신경을 쓴다.
갈림길이나 꺾어지는 지점에서는 리본이 한 움큼씩 붙어있어 도움이 된다.
잡목과 산죽이 바지에 빗물을 쏟아 붓는다.
그래도 졿다.
고병이재와 910봉의 헬기장을 지나니 또 산죽길이다. 산죽 길을 난 참 좋아한다.
길이 뚜렷해서 좋을 뿐만 아니라 산죽은 내가 산중에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다.
사철 푸르러서 좋고, 그 곧고 깨끗함이 좋다.
비오는 날의 산죽 길을 헤쳐 가는 것이 고역이긴 하지만 자신을 온전히 맞길 수 있어서 좋다.
▲백두대간과 석병산
▲동해 방향
▲상처만 남은 자병산
▲산죽 길
▲ 다시 폭우가 쏟아지고
노란 들꽃이 가득 피어있는 헬기장을 지나니 석병산 갈림길
대간은 직진이고 우측으로 <석병산 5분>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석병산(일월봉)은
마루금에서 약간 비켜나있지만 꼭 올라보아야 하는 곳이다.
전망이 좋은 곳이라 들었는데 우중이라 조망은 기대할 수 없지만 가보고 싶다.
석병산에 오르니 빗줄기가 더욱 굵어진다.
아우 자병산에 대한 그리움의 눈물,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이별의 눈물인가?
아니면 우리 인간을 향한 분노의 눈물일까.
석병산아 울지마라!
...............
.......
일월문이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는다.
▲석병산에서 바라본 가야할 두리봉
▲석병산 일월문
▲정상석 없는 두리봉
▲삽당령 하산 길
▲삽당령
가야할 두리봉이 덤덤한 모습을 드러내고 운무가 산자락을 넘나들며 선경을 연출한다.
아름다운 우리 산하의 시시각각 변하는 신비로운 풍경을 바라보면서 마음은 끝없이 황홀해지지만
자병산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마음을 서럽게 한다.
다시 삽당령을 향해 길을 나서지만
자병산에 대한 아픈 기억은 두고두고 가슴에 응어리로 남을 것이다.
- 끝 - 감사합니다.
첫댓글 아니, 아니, 아니,...... 어찌하여 댓재-백복령 구간을 아껴두셨습니까??? 뜨거운(?) 하룻밤도 좋고 추암 바다도 좋지만, 정작 홀딱 젖은 두타산 산행을 볼려고 했더니 ㅋㅋ...... 그렇다고치면 날 좋은 때를 구상하시는 모양인데 이 이우가 연휴가 없어서 우짜지요? 오늘(24일) 행하시지 않느다면 제가 두타산(혹은 계곡)만 산행하고 보조를 좀 해 드릴 수도 있을 것도 같은데.....
아우님 댓재-백복령(두타 청옥)은 다음날 일요일에 꼭지는 계획대로 무릉계곡으로 하산시키고 아들과 둘이서 끝내고 왔습니다. 그리고 내 아들이지만 나도 놀랄정도로 대단한 놈이에요. 말년 군발이가 29km대간을 훌딱 해치웠으니..그렇다고 특전사 출신도 아니고 공군병장? 대한민국 공군.. 대단해요. 그리고 산행기는 게으름을 피우다 아직 올리지 못했습니다만 몇 일후에 올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