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132억 원 김환기 ‘우주’ 비하인드 스토리
기자명 임언영 기자
여성조선 기사 입력 2022.11.04. 08:00
지난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 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남긴 작품.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의 그림 중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인 ‘우주’가 일반인에 공개돼 화제다. 입이 떡 벌어지는 그림 값부터 가짜 낙찰자 소동까지, 유명세를 제대로 타고 있는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취재했다.
그림이 흥미진진한 이유 중 하나. 한 폭의 그림이 영화 또는 소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어서다. 지난 7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개관 이후 두 번째 전시인 김환기展 <畵中抒歌: 환기의 노래, 그림이 되다>를 열고 있는 S2A에는 흥미로운 그림이 한 점 걸려 있다. 바로 1971년에 완성된 김환기의 ‘우주 Universe 05-Ⅳ-71 #200’이다. S2A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세아그룹의 김웅기 회장이 이 작품의 소유자로, 지난 2019년 작품 소장 이후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김환기 예술 세계의 정수 가장 큰 규모의 전면점화 ‘우주’
먼저 작품 이야기부터. ‘우주’는 김환기 예술 세계의 정수를 보여주는 전면점화다. 유일하게 두 폭이 합쳐져 한 작품을 이루는 형태로, 작가의 작업 중 가장 큰 규모다. 유화 물감과 서예 붓을 활용한 독특한 작품 제작 방식은 수묵화의 발묵 기법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작품에 무한한 깊이감과 웅장한 공간감을 선사한다.
작품 완성 초기에는 이 두 폭의 화폭이 ‘남과 여’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대립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해와 달, 빛과 그림자, 음과 양 등과 같이 두 패널의 작품은 서로를 끌어당김으로써 질서와 균형의 합일을 만들고 비로소 하나의 우주가 된다는 의미다.
이 작품이 희소성을 갖는 요소는 또 있다. 동심원들이 모여 소용돌이 패턴을 만들어내는 몇 안 되는 전면점화라는 점, 그리고 김환기가 자신의 일기에 작품의 시작부터 완료까지의 제작 과정을 기록한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 피난 시절부터 김환기와 인연을 맺은 주치의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김마태(마태 김정준) 박사가 작품을 구매, 47년간 소장했다. 작품 규모가 너무 커서 자택 거실에 걸 수 없어 잠시 구매를 고민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훗날 작품 앞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 두 폭의 그림이 가로로 결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04년까지 김마태 박사 자택에 걸려 있었고, 같은 해 8월 환기미술관에 장기 대여했다. 이후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작품이 출품됐고, 132억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사를 새로 쓰게 됐다.
‘최종 낙찰 금액 132억, 낙찰자는 한국인’
2019년 홍콩 크리스티에서 일어난 일은?
이 작품이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2019년 11월 23일, 이 대작이 과연 누구의 손에 낙찰되느냐는 미술계 초미의 관심사였다. 역시나 경합은 치열했다. 57억 원에 시작된 낙찰가는 결국 132억 원에 낙찰됐다. 구매 수수료까지 합치면 153억 5000만 원이다.
당시 낙찰자가 누군지에 대한 추측이 무성했는데, 언론 보도를 통해 한 20대 재벌 3세가 등장한다. 송승헌 전 동원건설 회장의 장손이자 당시 M컨템포러리 아트센터의 수석큐레이터로 활동하던 송자호 씨(현 피카프로젝트 대표)다. 경매가 끝난 뒤 언론사 기자들에게 ‘긴급 속보’라는 제목이 붙은 한 통의 제보 메일이 왔는데 그 안에는 “한국인이 최종 구매자. 이름은 송자호 큐레이터. 구매 목적은 송씨 개인의 수집용”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몇몇 보도를 통해 알려졌고, 고가의 그림을 구입한 재력가에 걸그룹 출신의 연예인과 연인 사이라는 개인사까지 알려지면서 순식간에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당시 그는 ‘우주’의 낙찰자 자격으로 몇몇 매체를 통해 짧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대답하기 애매하다”는 말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아 미술계를 들끓게 했다. 급기야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느냐”는 말로 사실상 낙찰자임을 시인했다는 보도도 등장했다. 이런 해프닝을 두고 홍콩 크리스티 측은 ‘오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그렇다고 소장자를 정확하게 밝히지도 않아 궁금증만 키웠다.
그 무성했던 소문의 진실이 3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김환기 ‘우주’의 최종 낙찰자는 송자호 대표가 아닌 글로벌세아그룹 김웅기 회장이었다.
‘미술품 공유’ 실천하는 세계 200대 컬렉터
S2A 통해 작품 선보일 것
“그림을 모으기 시작한 지는 좀 됐다. 어느 순간 내가 모은 그림들을 혼자 보는 것보다는 같이, 좋아하시는 분들과 공유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김웅기 회장이 본인의 자택에 걸려 있던 ‘우주’ 작품을 밖으로 끄집어내 일반 대중에게 공유하기로 마음먹은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10월 13일, 김환기 전시가 열리고 S2A에서 직접 만난 김웅기 회장은 ‘우주’ 작품을 구입하던 당시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전했다.
“‘우주’가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대한민국 국보 같은 작품이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서 “지인(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이 응찰하라고 권하셔서 고민 끝에 참여했고, 경합도 많이 했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낙찰 직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제 작품을 해외로 내보내지 않아도 되겠구나’라는 안도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흥분된 마음으로 응찰을 권한 박명자 회장과 통화해 기쁨을 나눈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지난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미술품 컬렉팅에 뛰어들었다. 컬렉터로서의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최근 미국의 미술 잡지 <아트뉴스>가 선정한 ‘세계 200대 컬렉터’에 한국인으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과 함께 이름을 올릴 정도로 파워 인물로 손꼽힌다.
한편 S2A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에는 김 회장의 ‘미술품 공유’에 뜻을 함께한 12명의 컬렉터들이 김환기의 작품을 무상으로 대여해줬다. 백자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처음 알아본 1950년대 작품부터 파리, 동경, 뉴욕 시절의 작품까지 17점을 만나볼 수 있다. 12월 21일까지 진행되는 전시는 많은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무료로 진행된다.
우주 Universe 19-Ⅵ-71 #206
Oil on Cotton
254x203cm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