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지 않으면, 치열하지 않으면 위대한 유산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년 이탈리아의 빈치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예술과 과학을 아우르는 천재이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다. 가난했지만 예술과 역학, 그림과 발명을 하며 불멸의 가치를 이끌었다. 30세에 기중기와 전차를 만들었고 41세에 기마상을 제작했으며 46세에 최후의 만찬을 그렸다. 48세에는 인체 해부도를, 51세에는 모나리자를 그렸으며 61세에는 하늘을 나는 기계를 만들었다. 죽는 그날까지 그의 꿈과 상상은 종교와 현실과 시공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림으로, 예술로, 위대한 과학으로 이어지는 등 끝없는 창조적 능력을 선보였다.
댄 브라운이 쓴 소설 '다빈치코드'는 전 세계 44개 언어로 번역되고 7천만 부나 팔렸다.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이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조사하면서 비밀과 사투를 추적하는 스릴러다. 톰 행크스와 오드리 토투 주연의 영화로도 인기였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속에 그 비밀의 열쇠가 있음을 응시하게 한다.
최근 '직지코드'가 세간의 화제다. 직지코드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고려 인쇄술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가설을 전제로 사실여부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지난 천 년 간 가장 중요한 사건을 뽑으라면 단연 금속활자의 발명이다. 직지는 구텐베르크보다 78년이나 앞섰으며 당시 원나라와 고려가 사돈을 맺을 정도로 유대관계가 깊었으니 고려의 금속활자 기술이 유럽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유럽 주요도시를 종단하며 그 비밀을 풀고자 했다. 고진감래(苦盡甘來). 그 과정에서 교황이 고려 왕에게 보낸 서찰을 발견했다. 교황청이 사절단과 서찰을 주고받을 정도로 교류했다면 당연히 당시 교황청에 고려의 인쇄술이 전달됐을 것이고, 그게 구텐베르크에게 전해졌지 않았을까.
어쩌면 근대 이전에도 동양과 서양은 이처럼 다양한 교류를 펼쳤을 것이다. 특히 한국의 금속활자는 유럽의 인쇄술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을 개연성이 높다. 다빈치코드의 비밀을 풀 듯 직지코드의 비밀을 찾아 나서면서 우리 고유의 삶과 문화가 인류에 미친 영향을 새롭게 조명하고 그 가치를 확장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무감을 느낀다.
실제로 금속활자 직지가 발명되던 1377년 청주는 세계 최고의 장인들이 있었다. 금속활자의 위대한 유산을 만들겠다는 의지와 창조적 자혜로 가득했다. 지천년견오백(紙天年絹五百)이라고 했던가. 실록에는 비단보다 더 값지고 우수한 한지가 청주에서 생산됐으며 궁궐과 중국으로 보내졌다고 증언하고 있다. 금속활자를 만드는 기술과 재료 또한 으뜸이었고, 붓과 배접기술도 내로라할 정도로 우수했다. 게다가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체계적인 보존과 확산에 대한 신념이 있었기에 직지가 탄생한 것이다. 우연이란 없다. 간절하지 않으면, 치열하지 않으면 위대한 유산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삶이란 묘한 설렘이 있다. 고단한 삶 속에서 쇠잔하게 말라가는 자신의 뒤태를 생각하면 슬픔이 밀려온다. 한 치 앞도 예단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 앞에 서면 가슴이 오그라든다. 그렇지만 내가 꿈꾸던 사랑과 욕망의 파편들이 샛별처럼 빛나거나 선홍빛 아름다움으로 물결칠 때는 어지럽던 머리가 맑아진다. 온갖 시련과 상처로 굴절된 삶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도 앙가슴 뛰는 꿈을 변주하고 생기발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 아니던가.
청주고인쇄박물관과 흥덕사지 일원은 세계의 인쇄문화, 직지의 우수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소나무 향 가득하고 햇살은 눈부시니 도시의 허파나 다름없다. 근현대 인쇄문화와 금속활자장의 뜨거운 장인정신도 만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간절했고 치열했기에 가능했다. 가던 멈추고 두리번거리자. 창조의 빛, 문화의 숲에서 나만의 추억과 나만의 비밀을 만들자.
사진 / 홍대기(사진작가)
글 / 변광섭(에세이스트·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콘텐츠진흥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