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을 사랑한 화가, 겸재 정선(鄭敾)
지금부터 볼 그림은 우리나라 국보 제 217호로 지정된 <금강전도(金剛全圖)> 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바위로 만들어 놓은 듯한 만물을 품은 경관과 기기묘묘한 바위 봉우리들이 늘어선 천하의 명승지, 금강산을 그린 그림입니다.
'전도(全圖)'라는 말은 전체를 그렸다는 의미입니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입니다.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라는 우리 고유의 화풍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그는 84세까지 장수를 누리면서 수많은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오늘날 전해지는 옛 그림은 정선의 그림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그의 호는 '겸손한 선비'라는 뜻을 가진 겸재(謙齊)이며, '겸재'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금강산 그림입니다.
정선(鄭敾)은 평생 여러 차례 금강산 일대를 유람해 100여 폭에 이르는 금강산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집니다. 겸재의 여러 금강산 작품 중에서도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금강전도>는 단연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지요.
그런데 정선(鄭敾)은 왜 그렇게 금강산 그림을 많이 그렸을까요? 그 이유의 하나는 정선(鄭敾)이 살던 당시에 금강산 여행 열풍이 불었기 때문입니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는 고려시대에 이미 중국까지 소문이 나 있어서 당시 중국 사람들은 다음 생애에 다시 태어난다면 '고려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구경해 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정선(鄭敾)이 살던 18세기는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가 넉넉해졌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름나 있던 금강산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이었죠.
금강산에 다녀온 사람은 그것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금강산 그림을 찾곤 했어요. 마치 우리가 해외 여행지에 가서 엽서를 사는 것처럼 말입니다.
정선이 금강산에 대한 그림을 많이 그린 두 번째 이유는 정선(鄭敾)이 그린 금강산 그림이 특히 인기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솜씨도 솜씨려니와 무엇보다도 정선이 금강산을 그리는 새로운 기법을 찾아냈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가 그린 금강산 그림을 보면 마치 실제 산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거든요.
그럼, 정선이 그린 <금강전도(金剛全圖)> 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커다란 산의 모습이 화면에 빽빽히 차 있는 강렬한 구성법을 사용하여 유명한 금강산을 한눈에 들여다 보게 했습니다.
화면 왼쪽 위에는 '금강전도 겸재(金剛全圖 謙齎)라고 화가 자신이 직접 그림의 제목과 화가의 호를 써 넣었고, 호 아래에는 '겸재(謙齎)' 라는 내용의 백문방인을 찍어 두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금강산 하면 일만 이천 봉이 떠오릅니다. 정선(鄭敾) 자신이 금강산의 전경도라고 부른 이 작품에는 금강산의 명성에 걸맞는 수많은 봉우리들이 등장하고 있어요.
하늘을 향해 치솟을 듯이 보이는 하얀 화강암의 멧부리들은 화면 오른쪽의 3분의 2정도를 꽉 채우고 있지요. 만일 이 날카로운 하얀 암봉들만 화면 위에 나타난다면 이 그림은 너무 단조롭고 예리하기만 해서 보는 이들이 곧 싫증을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선(鄭敾)은 이를 감안하여 화면 왼쪽 3분의 1 정도를, 비록 암봉에 둘러싸이긴 하였지만 둥글둥글한 흙산을 그려 넣어 묘한 균형을 되찾고 있습니다.
또한 오른쪽의 하얀 암봉들과 왼쪽의 검은 흙산들 사이에는 깊은 골짜기가 이어지면서 콸콸 소리를 내는 듯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내리는데, 이 골짜기를 중심으로 암봉과 흙산은 자연스레 연결되고, 또 분리되고 있어요.
골짜기의 맨 아래쪽에는 봉긋하게 솟은 무지개 다리가 있고, 골짜기를 따라 화면 위로 시선을 올리다 보면 화면 꼭대기에는 역시 둥긋하니 솟아오른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을 만나게 됩니다.
즉, 이 그림은 좌우(左右), 수미(首尾)가 교묘한 대칭과 조화를 이루면서 심리적인 균형감과 변화를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도는 암봉과 흙산을 대비하는 방법에서도 드러나고 있어요. 오른쪽의 암봉은 날카롭고 수직적인 붓질로 수없이 그어대며 형태를 잡고, 그 위에 하얀 색을 칠하여 희고 빛나는 모습을 강조하였죠.
왼쪽의 흙산은 둥글고 유연한 붓질로 부드러운 모습을 그리고 산등성이를 따라 물기가 많은 검은 먹점으로 표현하여 대칭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내었답니다.
화면의 오른쪽 위에 있는 화제(畵題)는 그림의 내용과 의미를 보강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일만 이천 봉 겨울 금강 개골산
뉘라서 뜻을 써서 참모습을 그려내리
뭇향기(衆香)는 해돋는 땅 금강산을 감싸안아 떠오르고 쌓인 기운 웅혼하게 온 누리에 서렸구나.
암봉은 몇 송이 연꽃(芙蓉) 인 양 흰 빛을 드날리고
반쪽 숲엔 소나무 잣나무가 현묘한 도의 문을 가렸어라. 설령 내가 발로 직접 밟아 보자 한들 이제 다시 두루 걸어야할 터. 그 어찌 베개 맡에 걸고 실컷 보는 것에 비할 수가 있으랴!
이 화제의 아래쪽에는 '갑인동제(甲寅冬題)'라고 쓰여 있어 이 작품이 1734년에 그려진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정선(鄭敾)은 금강산을 그리면서 금강산이 다만 하나의 산이 아니라 우주의 조화를 드러내는 상징물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던 것입니다.
다음은 <단발령망금강산(斷髮嶺望金剛山)> 이라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금강산을 찾아갈 때 거쳐야 하는 단발령이라는 고개와 그 너머에 펼쳐져 있는 금강산을 그린 그림입니다.
'단발령(斷髮嶺)'이란 지명은 이곳에 오르는 사람마다 금강산의 풍모를 바라보면 머리를 깎고 승(僧)이 되어 속세를 떠나고 싶어 한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금강산의 모습이 무척 황홀하였기 때문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금강산은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수많은 바위로 이루어진 산입니다.
그래서 아래쪽은 숲이 넓고 울창한데다 위로는 만 2,000봉의 바위로 된 봉우리들이 연속으로 솟아 있지요.
정선(鄭敾)은 금강산의 특징을 잘 드러내기 위해 바위산을 그리는 기법과 나무가 많은 흙산을 그리는 기법을 함께 썼어요.
그 사이에는 구름과 안개를 깔아 자연스럽게 두 세계를 연결시켰지요. 이러한 독특한 기법이 정선의 그림이 가지는 의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정선(鄭敾)의 그림에는 큰 것과 작은 것을 교묘하게 섞어 놓아서 보는 사람이 그림 세계로 빠져 들어가게 하는 신기한 힘이 있답니다. 이 그림을 봐도 알 수 있어요. 나무가 많은 흙산의 고개 위에는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서 있어요.
자세히 보면 힘든 언덕길을 오른 뒤에 숨을 돌리고 있는 모습이란 걸 알 수 있지요.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휴~"하는 숨소리와 함께 "정말 근사하구나!"라는 감탄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고갯길 중턱으로 시선을 돌리면 짐을 잔뜩 진 노새를 끌고 뒤쳐져서 올라가는 사람이 보입니다.
이것을 보면 누구나 저절로 '아, 가파른 고개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힘든 고개를 다 올라온 사람들의 상황을 상상하게 되지요.
또 갓을 쓴 사람의 손짓을 따라가 보면 구름 속의 금강산(金剛山)을 가리키고 있어요. 이 손짓 하나로 그림을 보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그림 속의 금강산 구경에 따라 나서게 되지요.
이처럼 정선(鄭敾)은 새로운 기법을 창안해 내고, 또 그림 속에 여러 아이디어를 심어 놓으면서 당대에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물론 그가 금강산 그림을 처음으로 그린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이전의 어떤 화가보다 훨씬 더 잘그렸고, 또 새롭게 그렸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누렸답니다.
정말 금강산 그림의 대가라고 할 만하지요.
대가(大家)는 다른 말로 거장이라고도 하는데, 그림에서 거장을 강물에 비유한다면 흘러가는 물줄기의 방향을 바꿀 정도의 일을 한 사람이고 할 수 있습니다.
정선(鄭敾)이 금강산 그림을 그리는 화풍을 만들어 놓자 물줄기의 방향이 바뀌듯이 이후의 화가들은 대부분 그를 따라 했지요.
정선에게 그림을 배웠던 심사정(沈師正), 김홍도(金弘道), 김희겸(金喜謙)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외에 많은 화가들이 금강산 그림을 그릴 때면 겸재식 화풍을 따랐습니다.
금강산(金剛山)의 만 2,000봉을 그릴 때면 정선처럼 으레 희고 뾰족뾰족한 바위를 그렸고, 바위를 감싸고 있는 산기슭을 표현하기 위해 먹점을 무수히 많이 찍어 숲의 무성함을 나타냈지요.
정선(鄭敾)의 금강산 그림이 인기를 얻고 금강산 여행 열풍이 일자 지방의 무명화가들은 금강산 그림에 대한 요청이 들어오면 당연한 듯이 정선의 그림을 놓고 베껴서 그려 주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