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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향(茶香)이 현해탄을 넘어
김 선 구
친구와 함께 다방 안으로 들어서려니 입구에서부터 은은한 향기가 감지된다. 커피 향과는 또 다른 냄새가 취각을 매료시킨다. 시중의 카페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분위기이다. 실내는 여느 때와 같이 장 노년 층 손님들로 붐볐다. 주인 J여사가 한쪽에 있는 자리로 안내해주자 제주에서 온 특별 손님이라고 친구를 소개했다.
벽면에는 동양화와 붓글씨 그리고 여러 가지 소품들이 걸려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 중에는 사회의 저명한 인사는 물론 문학과 서예 등 예술분야에 탁월한 인사들이 많다. 그들이 손수 만든 작품들을 걸어 놓아서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차 냄새가 덕성스런 인향, 묵향 과 어우러져 그윽한 향기를 발산했다.
올해로 90돌을 맞이한다는 M다방은 대구 근대역사의 산 증거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후 숫한 사회변화를 겪으면서도 옛 모습을 잃지 않고 유지해 왔다. 사라져가는 전통 문화의 면모를 그대로 담고 있어서 지난추억을 되새겨보고 싶은 장 노년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온다. 한 때는 유학자들이 많이 찾아와서 ‘양반다방’이라 불리기도 했다지만 지금은 전통과 고유문화를 아끼는 예술인들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구 근대문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진골목에 자리 잡고 있어서 과거와 현대를 잇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친구를 이곳으로 인도한 것은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함에서였다. 타지방에서는 쉽게 접해볼 수 없는 분위기이다. 대구 근대골목의 모습과 M다방의 독특한 분위기를 기회 있을 때 마다 지인들에게 언급했던 터였다. 마침 친구부부가 대구를 방문하였다. 친구는 시조시인이며 제주시조문학회장 등을 역임했고, 지금도 폭 넓게 사회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나름대로 느낌이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차를 가져온 J여사가 친구와 몇 마디 덕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언제나 단정한 한복 차림 속에 친절한 미소가 후덕한 인심을 느끼게 했다. M다방과 함께 한길을 걸어온 J여사도 인간문화제나 다름없다고 생각되었다. 이따금 TV에 출연하여 대담하는 모습을 보면 이미 이곳에서 유명인사가 되어있다. 7남매 중의 막내라는 이력도 특이하지만 불우이웃을 돌보고 봉사를 미덕으로 살아간다는 모습에 더 호감이 갔다. 가끔 장 노년층 인사들이 경청하는 강좌에 나와서 시낭송을 할 때가 있다.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크고 맑은 음성과 감정이 실린 목소리에는 아직도 소녀 적 꿈이 생동하는 듯했다.
내가 M다방을 알게 된 것은 나의 학교 선배인 Y장군을 만나면서 부터였다. 장군이란 호칭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여 장교임관 후 장군으로 예편하였으므로 그렇게 불렀다. 선배의 이력 중 특기 할 것 하나는 육사생도시절 최초로 육사에 불교학생회를 조직하고 군승장교제도를 주장하는 등 군 불교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별명이 ‘목탁장군’이었고 그렇게 불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예편 후에는 대학에 적을 두고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수필가로서, 불교계 인사로서 널리 활동하였다. 모임이라도 있는 날이면 꼭 M다방을 거쳐 갔다. 동향인들과 자리를 함께하면 항상 푸근한 면모를 풍겼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장군들을 덕장, 지장, 용장으로 구분한다면 그분은 덕장에 속할 만큼 소탈하고 친근감이 넘쳤다. 주위에 널리 베풀고 봉사하며 후덕함을 보였으니 나에게는 자랑스러운 선배였다.
어느 날 강원도 화천군엘 함께 가보자고 제안하였다. 군에 제직시절 대민사업으로 주민들에게 팔각정을 지어 준 것이 인연이 되어, 그 곳 시골마을 주민들이 우정의 표시로 기념비를 세워주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선배가 유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약속을 실행하지 못하여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이제 M다방에 가면 자연히 선배의 자취를 더듬어보게 된다.
이날도 Y선배에 대한 회고가 이어졌다. 고교시절 불교학생회를 창설하고 초대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선도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부친의 고향이 충북이었으나 어머니의 고향인 제주도를 자신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 등.
나의 친구는 일찍이 교육계를 퇴임하고 흙을 벗 삼아 귤 농사를 지으며 지내고 있다. 고향에 가면 언제나 만나 회포를 풀지만 육지부에서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오래 만에 만난 터여서 한 사흘 같이 주변명소를 둘러보았다. 청도 운문사를 위시하여 팔공산 일대를 둘러보고, 마지막 날에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과 이상화고택, 그리고 대구 진골목을 거쳐 M다방에 들렸다.
친구 역시 다방의 분위기가 신기한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향이 독특한 약차 맛도 그렇고, 사발 같은 찻잔과 접시에 듬뿍 담긴 과자가 이채로운 모양이다. 우리는 고향얘기, 친구들 얘기 등으로 담소를 마무리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제주도로 내려가서 얼마 후 소식을 보내왔다. 대구를 다녀가면서 느낀 바를 적은 글이었다.
「대한제국을 경제적으로 지배하려는 속셈을 가진 일본에 의해 지게 된 나라 빚을 국민의 힘으로 갚기 위한 애국운동의 본고장, 한국기부문화 일 번지 국채보상운동기념관과 빼앗긴 들에서 민족혼을 일깨운 이상화시인의 고택을 관람했다. 그리고 진골목으로 들어섰다. <중략> 100여 미터도 안 되는 이 진골목엔 대구 100년의 풍경과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철조망이 둘러쳐진 빛바랜 담장, 1947년 개원한 대구 최초 정소아과 의원은 간판만 그대로 남아 골목을 지키고 있다. 옛집 그대로 꾸민 식당들. 유명한 M다방에서 차 한 잔 마시는 행복감도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복을 입은 여인이 옛날과자 한 접시를 들고 인사를 하며 탁자 위에 놓는다. 주인 J마담이다. 손님은 거의 노년층이다.
1928년 문을 열고 오늘 날까지 그 모습 그대로 당시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다방 벽면에는 문인과 예술가들이 기증한 작품들이 빽빽하다. 다방이 아니라 갤러리라 해도 되겠다. 대구의 저명한 예술가, 정치인들의 사랑방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래서 명소(名所)로 뜨고 있다.」
'대구 중구 골목투어’란 제목의 이 글을 일간지 제주신보의 ‘해연풍’이란 칼럼 란에 개제하였다. 글 말미에는 제주도가 추진하는 원 도심 살리기 시책에 대구근대골목의 설립취지도 참고 했으면 하는 뜻을 비치었다. 대구의 명소 M다방의 다향이 비로소 현해탄을 넘어 제주에 이르렀다. 다향과 함께 대구의 근대골목의 역사와 풍경도 소개되었다. 그 향기 속에는 제주를 사랑하고 동경했던 Y선배의 모습도 어른 거렸다. 다향이 싣고 간 대구 근대골목의 모습이 제주 인들에게 접목되어 새 문화를 창달하는 개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첫댓글 가까운 곳에 사는 대구 사람들도 대구의 매력을 모르고 지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멀리 제주에 사는 지인이 이처럼 홍보를 잘 해 주시니 우리로서는 고마울 따름입니다. 너무 애향심을 앞세워 다른 지방을 배척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최소한 우리 고장을 폄하하는 발언은 삼가야 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퇴직후에도 변치 않는 우정을 나누며 함께 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애석하게 유명을 달리하신 Y선배님의 사연은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M다방의 다향에는 그리움이 더 짙게 묻어있나봅니다. 대구사람보다 대구를 더 잘 아시고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M 다방의 다향이 느껴집니다. 저는 대구에 살면서도 한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좋은 내용 감사드리며 언젠가 시간을 내어 한번 가 볼까하는 생각 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는 늘 바로 내 옆에 있는 것에 대해 무관심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남의 것, 다른 곳에 있는 것은 대단한 듯 보이고요....... 생각을 바꾸어 내 주변의 자랑거리를 당당하게 얘기하고 보듬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따뜻한 우정이 베어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진골목 미도다방을 예찬하여 주셔서 제주 친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장년들이 쉴곳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한 현실에서 j여사가 고마울 때가 있습니다. 함께 가서 많은 얘기 하는곳 , 다음번 갈때는 J여사께 차한잔 얻어 먹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대구의 명소를 탐방하는 느낌으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학교 다닐때 지도의 중심이었습니다. 미도다방을 주축해서 그 근방 어디서 만나자고 할 만큼 역사가 오래 된 다방 이지요 선생님 글에서 다시 옛날로 돌아간듯 합니다. 그렇지만 개업 90년이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습니다. 대구명소라고 할 만큼 역사가 깊네요.그 근처를 돌아다녀도 한 번도 가보진 않았습니다.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그 곳에 가봐야 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목탁장군과의 진한 우정, 그리고 헤어짐이 애석하게 생각됩니다. 현해탄을 넘나드는 다향 못지 않게, 인향.우향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거기다 사시는 대구의 홍보대사 역할까지 해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끈끈한 우정이 묻어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