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함지뢰 vs 확성기, 강대강의 추억
‘준전시상태’-‘진돗개하나’ 맞선 2015년 8월
결기 과시 앞서 위기 대응 능력·태세 갖춰야
2015년 8월 20일 오후 경기도 연천 28사단 지역. 북한군이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쪽으로 고사포 1발과 평곡사포 3발을 쐈고, 그에 맞서 우리 군은 155mm 자주포 29발을 북쪽으로 발사했다. 우리 군엔 최고경계태세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고, 북한군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48시간 내 군사행동 개시’까지 위협했다.
6·25전쟁 이래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일촉즉발의 위기는 그달 4일 북한 목함지뢰의 폭발로 우리 부사관 2명이 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으면서 시작됐다. 우리 군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다. 남북 합의로 중단된 지 11년 만이었다. 이에 북한은 42년 만에 섬이 아닌 내륙 영토에 포격을 가했고, 우리 군도 고강도 반격에 나선 것이다.
이후 남북은 전면전 일보 직전까지 갔다. 북한군은 전방 화기들의 총안구를 개방하고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며 시차별 전력운용에 들어갔다. 잠수함 50척의 기지 이탈, 특수부대용 공기부양정의 이동도 포착됐다. 우리 측도 접경지역에 대피령을 내리는 한편 한미 연합부대를 전방으로 배치하고 무력시위 비행을 벌였다. 미군 전략폭격기 전개 검토 소식도 전해졌다.
이런 살벌한 대결의 한편에선 남북 고위급 접촉이 이뤄졌다. 먼저 대화를 제안한 쪽은 북한이었다. 서로 부릅뜨고 노려보는 눈싸움에서 먼저 눈을 깜빡거린 것이다. 사흘간의 피 말리는 협상 끝에 남북은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당한 것에 대한 유감 표명’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의 중단’에 합의했고, 3주간의 위기는 막을 내렸다.
요즘 정부와 군 안팎에선 북한 도발에 강경한 대응이 최선이라며 그 사례로 당시를 소환하는 이들이 많다. 도발에 맞선 ‘비대칭무기’로서 확성기 방송의 효능을 확인했고, 나아가 압도적 대응을 보여줌으로써 북한이 먼저 꼬리를 내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에 대해선 논란이 없지 않지만 당시 정부가 모처럼 제대로 대처했다는 여론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수직 상승하는 효과도 거뒀다.
사실 북한이 각종 미사일을 쏴 올려도 정부로선 강경한 언어를 동원해 규탄하는 것 외엔 뾰족한 방법이 없다. 하지만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에는 단호한 대응으로 북한의 기를 꺾어놓을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응징 보복” “일전 불사”를 주문하고, 정부가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 같은 심리전 재개를 검토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다만 결기 어린 의지만큼이나 단호하게 즉각 대응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북한 무인기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군의 무능과 혼란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군에 대한 통수권자의 강한 질타까지 나온 터라 북한이 또다시 도발한다면 한반도 정세는 정면대결의 위기로 직행할 가능성도 높다. 북한의 벼랑 끝 긴장고조 책략에도 단단히 버티면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부터 총체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진다. 두 달 전 북한이 울산 앞 80km 바다에 순항미사일 2발을 떨어뜨렸다고 주장했지만 우리 군은 “탐지 포착된 게 없다”며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이 대목부터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구글 지도 수준에도 못 미칠 정찰사진 촬영을 위해 서울로 무인기를 침투시킨 것은 아닐 터. 무인기에 폭탄을 달면 순항미사일이다.
이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