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맨인 블랙[프롤로그 상:각성]
"똑 딱 똑 딱 똑 딱"
차가운 초침소리만이 공허히 울려퍼지는 공간에 무표정의 얼굴을 한 금발의 남자가 자신의 의자에 앉아 그 초점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남자는 새하얀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갖고 있었고 그러한 남자의의 옷은 최고급 실크로 짜여져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그의 모습과는 정 반대로 그의 얼굴은 매우 초췌해 보였다. 쾡한 눈과 쏙 들어간 양 볼은 며칠 동안 굶은 거지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단지 그의 귀티나는 외모만이 그가 귀족의 자제라는 것을 입증할 뿐이었다.
반면 이 적막이 흐르는 공간 밖에서는 여러 하인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심각히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벌써 2주동안 아무것도 안 드시고 계세요. 이러다가는 정말 어떻게 되실거예요."
한 마음씨 좋아보이는 보모가 말했다.
"어쩔 수가 없지않소. 우리가 억지로 드시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으리까지도 도련님에 대해 걱정을 전혀 안하시니..."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역시 도련님은 이렇게라도 나으리에 대해 자신의 분노를 나타내고 싶으신 것일 거요."
"하지만 이미..."
다시 한번 잠시 동안 적막히 흘렀다. 그리고 한명의 하인이 말을 꺼내려
하기 직전이었다.
달칵!
"도..도련님."
놀라는 하인들을 향해서 금발의 청년은 자신의 검을 차고서 눈길한번 주지않고 길을 나섰다.
길고 긴 복도를 지나 현관에 다다르자 하인들은 다시 놀라서 물어보았다.
"도련님, 이제는 제발 식사를 하십시오. 그리고 갑자기 어디를 가시려는 겁니까?"
"아버지..아니 위대하신 제국의 황룡기사단장님께 전하라. 당신의 뜻대로 떠나주겠노라고."
이 알지못할 얘기를 듣고 하인들이 일제히 말렸다.
"아니 되옵니다, 나으리. 참으셔야 합니다. 떠나지 마시옵소서."
"내 걱정은 하지 마라. 돈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오늘로서 난 귀족이 아니다. 더이상 당신들도 여기 있을 필요가 없어. 떠나."
"안 됩니다. 다시 한번 더 생각해 주시옵소서. 돌아가신 도련님의 마님께서 돌아가시면서 까지 부탁하신 도련님이십니다. 가지 마시옵소서. 라시엘 도련님!"
"그럼 이만."
그 한마디 만을 남기고 금발의 청년은 문을 나섰다.
2년후 루마누스의 콜로세움
"죽여라!죽여라!죽여라!"
"빨리 끝장을 내라고 심슨."
"심슨 난 너에게 5장 걸었다. 지면 알지?"
"멋진 금발오빠 저 덩치를 끝장내버려요."
콜로세움은 광란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었다. 새롭게 추가된 매치형식,
피의향연의 끝이 보여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중들은 모두 경기가 끝난뒤의 내기에서 딸 돈이 결정되는 이 순간 가장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속칭 피의 향연. 정확한 이름은 배틀로얄. 여러 검투사들을 콜로세움의 지하에 위치한 미로세트에 무작위로 위치시키고 마지막 한명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고 죽는 경기였다. 너무나 잔혹한 매치였기에 수도루마누스에서는 금지되고 있던 매치였다. 하지만 콜로세움측의 대부들이 돈으로 관리들을 매수한 것이었다. 다른 경기장에서의 예로는 모두가 상처가 너무심해서 마지막의 한명도 끝
현재 미로의 경기장에는 단두명의 검투사들이 남아있었다.
한명은 심슨이라 불리는 거구였고 다른 한명은 바로 라시엘이었다.
심슨은 예전부터 초인이라불리우는 괴력을 가진 사나이었다. 거의 60kg이나 되는 배틀엑스를 별 무리없이 휘두르는 녀석이었다. 거기다가 경험도 많아서 검투사로서의 요령도 매우 많았다.
"큭큭큭, 초짜 주제에 처음부터 피의향연에 도전하다니 이거이거 안됐군, 친구. 분명 지금 까지 산 것도 숨어있었던 것이 겠지 큭큭."
마침내 라시엘과 마주친 심슨은 라시엘을 깔보는 듯한 말을 하며 도끼를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하지만 심슨이 한가지 잘못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단순히 피해다닌 것이 아니었단 점이었다. 그는 여태까지 사람을 죽이지못해서 제압만을 해놓고 그자리를 뜬 것이었다. 비록 간접적으로 제압당한 사람을 죽이게 되는 꼴이었지만 어쨌든 그의 실력이 완전초짜는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적을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실력.
그것은 고수만이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제압만으로는 최후의 일인이 될수 없는 것이었다. 즉 진정한 본실력이 나올때가 된것이다. 관중들도 라시엘의 본 실력을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라시엘은 심슨을 보며 좀 겁을 먹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뭘 그리 떨고 있나 애송이 내 도끼가 곧 너를 귀여워 해 줄거야 하하하."
라시엘은 발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왠만한 검술은 다 터득했고 누구보다도 혹독한 이제는 남이 되버린 아버지의 훈련을 무려 10여년 동안 참아내 왔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진검승부를 해본적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목숨이 달린 승부에서 그는 선뜻 공격을 감행하지 않았다. 어릴때부터 단련되왔던 그의 냉철함이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정 공격하지 않겠다면 내가 먼저 하겠다. 어차피 한방감이겠지만 말이야 하하하하."
심슨은 도끼를 들고 라시엘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도끼를 머리위로 치켜든 다음에 찍어내렸다. 피할 수 조차 없는 엄청난 속력이었다.
순간 관중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눈을 질끈 감는 여인, 즐겁게 바라보는 남자, 자신의 내기표에 있는 라시엘의 초상화를 보며 실망하는 남자, 돈을 딸 것 때문인지 곧 있을 라시엘의 죽음 때문인지 기대에 찬 얼굴로 바라보는 노인.
'푹!'
하지만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뼈와 살이 짓무러지는 도끼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 다음 순간 그들은 모두 한결 같이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라시엘의 검이 심슨의 목을 꽤뚫고 있었고 도끼는 라시엘의 뒤쪽 땅을 깨부수고 있었다.
'쓰윽.털썩!'
"커..헉..크..ㄱ..하..하.."
섬찟한 소리를 내며 빼어진 라시엘의 칼. 그리고 심슨은 무릎을 꿇고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라시엘은 자신의 몸에 묻은 피를 바라보고있었다.
"크.....헉."
결구 심슨은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관중들은 모두 뭐가 뭔지 모르고 말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한가운데 절대 무표정이던 그의 얼굴이 조금이 변하고 있었다. 약 10년만의 일이었다. 아무런 감정이 없던 그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고 있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카하하하...하하하하...히히히히"
그는 웃고 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즐겁게, 마치 어린아이가 놀이를 하며 웃는 듯 천진난만히 웃어댔다.
김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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