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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빛
원제 : Splendor in the Grass
1961년 미국영화
감독 : 엘리아 카잔
각본 : 윌리암 인지
출연 : 나탈리 우드, 워렌 비티, 팻 힝글
오드리 크리스티, 바바라 로든, 조라 람버트
프레드 스튜어트, 조안나 루즈, 존 맥거번
잔 노리스, 게리 록우드, 숀 개리슨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
'초원의 빛'은 제 개인적으로 볼때 불멸의 청춘 로맨스 영화입니다. 제가 2007년 11월에 이 영화에 대한 아주 간략한 리뷰를 올린적이 있는데, 제대로 보강 리뷰를 올리려고 합니다. 그 글을 삭제하고 싶은데 당시 네이버 메인에 올랐고, 1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서 그냥 놔둘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보면 저런 빈약한 글이 어떻게 메인에 올랐을까 싶기도 할 정도로 별 내용이 없습니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제대로 된 장점과 주목할 만한 부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감독 엘리아 카잔은 자타가 꼽는 40-50년대 시대의 헐리웃 명감독입니다. '나무는 자란다' '신사협정'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혁명아 자파타' '워터프론트' '에덴의 동쪽' '베이비 돌' 등 그의 작품을 꼽아보면 정말 주옥같은 리스트입니다. 각각의 영화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관계와 심리묘사가 탁월했습니다. '초원의 빛' 역시 그런 그의 재능이 정점을 이룬 작품입니다.
이루지 못한 첫 사랑의 아픔을 다룬 영화로 이러한 소재의 교과서 같은 영화입니다. 1920년대 후반 금주법 시대의 미국 캔사스 시티가 배경입니다. 아직 고등학생인 디니(나탈리 우드)와 버드(워렌 비티)는 서로 불같은 열정으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단순히 표현한다면 그냥 죽고 못하는 사이입니다. 서로에게 미쳐 있지요. 남녀가 너무 뜨겁게 미치도록 사랑하면 그건 기쁨을 넘어서서 집착이 되고 아픔이 되기도 합니다.
근사한 폭포를 배경으로 시작하는 영화
버드에게 미소짓는 후아니타가
영 신경쓰이는 디니, 버드에 대한 사랑은
디니를 무척 예민하게 만든다.
디니의 예민함에 짜증내는 버드
너무나 뜨겁게 불같이 사랑하는 디니와 버드
겉으로 보면 디니와 버드는 정말 걱정없고 속 편한 젊은 연인처럼 보입니다. 둘 다 어느정도 여유로운 집에서 살고 있고, 부모님들도 그들의 교제를 굳이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니 매일 만날 수 있고. 그런데 그들에게 왜 시련이 다가온 것일까요?
이렇게 표면적으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차근차근 잘 풀어나간 것이 엘리아 카잔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윌리엄 인지의 탄탄한 각본이 큰 힘이 됩니다. 그의 명 시나리오속에 녹아있는 탁월한 심리 묘사는 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별로 어렵지 않은 가이드 역할이 됩니다.
1920년대 후반, 1차대전 이후의 미국은 경제적으로 대 호황기를 누렸고, 석유사업으로 큰 돈을 만지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아메리칸 드림 시대가 만개했고 월 스트리트의 증권가를 중심으로 한 주식시장의 호황, 여기에 금주법 시행으로 인한 주류 밀매사업의 득세 등 여러가지 시대적 특징이 있는 시기였습니다. 세상은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시대에서 변화하는데 구세대들은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정숙한 여성을 강요하는 디니의 집안도 그렇습니다. 부모시대, 조부모 시대, 그 이전 시대부터 물려 내려온 전통적인 관습은 그대로 디니에게도 대물림되는데 현대 여성의 뜨거운 가슴을 지닌 디니는 그런 속박이 무척 괴롭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자상하고 헌신적인 엄마지만 늘 일찍 들어오라고 얘기하고 여성은 정숙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엄마에게 디니는 조금씩 질려가고 있었습니다.
버드 역시 디니와는 다르게 아버지와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석유사업과 주식 급등으로 농부에서 부자가 된 아버지는 외아들 버드에게 엄청난 기대가 있고, 별로 공부와 친하지 않은 버드를 명문인 예일대학에 보내고자 합니다. 운동, 공부에서 모두 최고를 기대하는 아버지의 과도한 기대와는 달리 버드는 2년제 농업대학을 나와서 소박한 농부로 살아가고 싶어합니다. 이런 아버지 탓일까요? 버드의 누나 지니는 일찌감치 아버지를 떠나서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면서 문란함 행동 때문에 아버지의 속을 썩입니다.
아버지의 지나친 큰 기대가 부담스러운 버드
당시 23세, 24세 였던 나탈리 우드와 워렌 비티
선남 선녀의 로맨스 청춘영화
즐거워야 할 신년 파티에서 누나의 문란함 때문에
엉망이 되어 버린 버드
자녀에게 엄청 잘해주고 전폭 지원해주고 자상하기도 한 부모, 실제로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불편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요즘 우리나라 시대에도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부모의 경우는 남들에게 문제점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폭력 아버지, 가난한 부모, 방탕한 부모, 뭐 이런 경우야 남들도 쉽게 문제점을 알지만. 디니와 버드가 더 뜨겁게 서로 사랑하는 것도 일종의 이런 탈출구가 필요한 심리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더구나 이런 부모일수록 자신들 때문에 생긴 문제를 자녀의 탓으로 돌리기 일쑤지요.
디니는 버드에게 엄청 예민합니다. 버드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쉽게 상처를 받고, 버드가 다른 여학생과 몇 마디 대화만 나누어도 엄청 민감합니다. (연애해보신 분들은 다들 이해할 것입니다. 아주 무딘 여성도 연애를 하면 엄청 예민해진다는 것을) 디니에게 버드는 하늘같은 존재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늘 상처를 주는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버드 역시 디니를 목숨이라도 내놓을 정도로 사랑하지만, 가벼운 스킨십만 허용하는 디니를 향한 욕정을 견디기 힘들어 합니다. 한참 뜨거울 나이에 '정숙함'을 강조하는 디니는 버드에게는 인내심을 요구하는 상대였습니다. 더구나 무척 예민하기까지 하니.
이렇게 너무 행복한듯 하지만 조금 위태로워 보이는 둘의 관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균열이 생깁니다. 버드는 예일대학에 진학하라는 아버지의 강요 때문에 디니와 무려 4년이나 헤어져서 지내야 하는 사실이 괴롭습니다. 신년 파티에서 누나 지니가 문제를 일으키고 그로 인하여 버드는 싸움에 휘말리고 다치게 되면서 즐거워야할 신년 파티는 엉망이 됩니다. 그 사건 이후로 버드는 디니를 멀리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디니는 크게 상처받고, 학교까지 쉬게 됩니다. 모처럼 댄스파티에서 버드와 오랜만에 재회한 디니는 예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그를 유혹하고, 그런 디니의 변화에 당황한 버드, 디니는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고 자살까지 시도하게 되고, 결국 정신과 요양원에서 장기 치료를 받게 됩니다. 버드는 디니와 결혼하겠다는 결심을 굽히지 않지만 디니가 버드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한 부모들은 둘의 만남조차 금지시킵니다.
정숙함을 강조하는 디니에 대한 버드의 참지 못한 욕정은
결국 동급생인 후아니타의 자유분방한 유혹에 끌리게 되고....
워즈워드의 초원의 빛 시 구절을 읽다가
갑자기 감정이 북받치는 디니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너무나 서로를 사랑했던 두 젊은 연인의 관계는 이렇게 끝나게 되고 디니는 부모와 헤어져서 정신병원에서 요양하면서 오히려 안정을 찾고, 버드는 마음에도 없는 예일대학에 진학하면서 공부와는 담을 쌓고 자포자기하다시피 지냅니다. 디니가 자살을 시도하고 입원한 날 버드가 아버지에게 한 한마디 대사가 의미심장합니다. "저들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 원인 조차 아직 몰라요"
이 영화를 보면서 두 집안의 부모님들이 조금만 더 영리했다면, 조금만 더 자녀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 충분히 행복한 커플로 만들어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디니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이후에 부모 및 지인들은 아무도 버드에 대한 뻥긋조차 하지 않았는데 피하고 멀리 하는 것만이 상책이라는 근시안적인 생각이 앞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일반 사람들이 늘상 보편적으로 하는 행동이지요. 몇 달 만에 아주 먼 거리를 일부러 디니를 만나러 온 부모에게 디니는 별로 오랜 시간을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니에게는 정신병원이 부모보다 더 편한 존재가 된 것이죠.
이 영화의 배경이 왜 1920년대 후반이었는지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1929년에 시작된 경제 대공황, 월 스트리트의 많은 사람들을 파산하게 하고 자살하게 만든, 역사적인 경제 대공황, 영화에서 초반부터 주식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데 이건 이미 주식으로 부자가 된 버드의 집안에 대한 비극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다 일시적으로 외부의 요건으로 헤어진 연인은 언제든 다시 만나거나 재회할 수도 있는데 버드 집안의 몰락은 그걸 가로막는 결정적 요인이 됩니다. 기껏 예일대학에 보냈더니 낙제하여 퇴학 일보직전의 아들, 문란함의 극치로 이미 버린 자식이 되어 버린 딸, 거기에 폭락해서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주식, 그렇잖아도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주장만 강한 독선적 성격의 버드의 아버지는 사업도, 자식도 마음대로 되지 않은 상황으로 그야말로 삶의 코너에 몰려 버립니다. 이 상황에서 그의 선택은?
달라진 디니의 자유분방함에
오히려 당황하는 버드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삶의 낙이 없던 버드에게 위안이 되어주던 피자집 딸 안젤리나, 정신병원에서 외롭게 요양하던 디니에게 같은 동지(?) 로서 위안이 되어 주던 존 이라는 청년, 두 사람 모두 버드나 디니에게 거의 유일하게 위안이 되어주는 존재가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 죽을 만큼 아프고 사랑하는 상대는 따로 있지만 닿을 수 없는 멀리 있는 그 사람보다 당장 옆에서 위안이 되어 주는 상대와 둘은 결국 결혼하게 되지요.
이 영화의 백미는 그 유명한 라스트 시퀸스, 결혼하여 농장에서 가난한 삶을 살고 있는 버드를 결혼을 앞둔 디니가 찾아와서 오랜만에 어색한 재회를 하는 장면, 두고 두고 봐도 그 짧은 재회는 잊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너무 애틋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장면이었고, 이루지 못한 첫 사랑의 아픔과 그걸 안으로 삭여내는 감성은 이 영화의 이 장면처럼 잘 표현된 경우가 없었습니다. 정말 오래 여운이 탐는 애틋한 재회장면입니다. 이 영화에 분명 영향을 받았음직한 프랑스 고전 명작 '쉘부르의 우산'에서도 눈이 펑펑 오는 날 주유소에서 재회하는 남녀의 엔딩씬을 통해서 깊은 여운을 남긴 바 있습니다. 이루지 못한 첫 사랑의 재회장면, 두 영화 외에도 한국 영화 '클래식'에서도 등장하고, 아예 이 소재 자체를 영화의 한 이야기로 꾸민 '길소뜸' 이나 '건축한 개론' 같은 영화도 있었고, 최근에 '라라랜드'도 있었습니다. 각각의 작품에서는 각자 다른 표현으로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재회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재회한 디니
이미 유부남이 되어버린 버드를 만나러 가는 디니
이제는 정면으로 부딫쳐서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 된 버드의 존재
너무나 애틋하게 처리된 디니와 버드의 재회
어린 유년기 시대부터 배우로 활약한 나탈리 우드는 성인이 되어서도 성공적으로 청춘 스타로 자리잡았고, 23세가 되는 1961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초원의 빛'을 통하여 세기의 연인으로 등극했습니다. 이미 스타였던 나탈리 우드와는 달리 버드 역의 워렌 비티는 TV에서만 모습을 보였던 풋풋한 신예였는데 이 '초원의 빛'으로 혜성처럼 데뷔하게 되고, 같은 해 관록의 여배우 비비안 리와 공연한 '로마의 애수'에도 출연합니다. 두 편 모두 우리나라에 개봉되었지만 이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개봉까지 그의 영화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60년대에 그를 '초원의 빛'으로 갑자기 등장했다가 확 사라진 배우 라고 묘사하는 분도 있습니다. 나탈리 우드는 당시가 최고 정점이었고, 워렌 비티는 이후 감독, 제작, 배우 로서 다방면에서 활약하면서 재능있는 영화인으로서, 또한 둘째 가라면 서러울 헐리웃의 바람둥이로서 유명세를 치루었습니다. 별로 다작활동을 하지 않은 것도 특징이고.
버드의 아버지로 출연한 팻 힝글의 다소 과장스런 연기가 인상적이었고, 디니의 헌신적인, 그렇지만 구세대적인 엄마를 연기한 오드리 크리스티도 좋았습니다. 디니와는 달리 적극적인 대시와 유혹을 하는 화니타 역의 잔 노리스, 피자집 딸이었는데 버드와 결혼하게 된 착한 여인 안젤리나를 연기한 조라 람버트 등 조연, 단역 등의 역할들이 대체적으로 무난했습니다.
이후에 여러 영화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지만, 이 '초원의 빛'이 일종의 모범적인 메뉴얼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장 식상하고 틀에 박힌 '집안의 차이로 인한 부모의 반대'나 '죽음이 갈라놓은 것'이라는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이 영화가 빛을 발한 경우가 되었습니다. 순전히 시나리오와 설정을 통해서 서로 사랑하는 젊은 남녀의 아픔과 좌절을 탄탄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디니와 버드의 재회장면은 두고두고
여운이 남는 애틋함 그 자체였다
"디니, 널 봐서 정말 반가웠어"
"고마워, 버드"
나탈리 우드는 일생일대의 열연을 보여준다.
제목 '초원의 빛'은 윌리암 워즈워드의 시 에서 인용한 제목인데 극중 수업시간에 디니가 읽는 시 였지만 절묘하게도 영화의 내용과도 제법 부합되고 있습니다. 디니가 버드와 짧은 재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차안에서 쓸쓸한 얼굴로 그 시를 되뇌이는 엔딩 장면은 이 영화를 위해서 나름 어렵게 고른 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에는 두 번이나 수입해서 상영했고,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으며 공중파 TV에서도 70년대, 80년대, 90년대에 계속 방영했을 정도로 우리나라 관객들과 매우 친숙한 영화입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헐리웃 감성 청춘 멜러 고전영화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실제로 잘 만들기도 한 영화입니다.
ps1 : 두 사람은 과연 이후에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아마도 요즘 시대라면 굳이 속편을 만들어서 원작의 여운을 훼손할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사별한 버드와 이혼한 디니의 재회 같은 진부한 스토리를 만들거나 해서. 이런 경우가 '비포 선라이즈' 이후에 등장한 비포... 속편, 3편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 경우는 속편들을 꽤 잘 만들었지요. 속편이 없어야 원작의 여운이 더 길게 남는 법입니다.
ps2 : '로마의 애수'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사이의 워렌 비티 20대 시절 영화는 이상스러울 만큼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진 바 없습니다. (기껏 진 세버그와 출연한 '릴리스' 정도만 알려졌죠) 헐리웃 고전은 거의 파헤치는 우리나라 영화골수들이 왜 워렌 비티의 60년대 영화들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요. (70년대만 해도 '맥케이브와 밀러부인' '달러' '암살단' '샴푸' '천국의 사도' 등 몇 편 안되는 출연작인데도 거의 알려져있는데)
ps3 : 이 영화가 나탈리 우드의 '인생의 영화'라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엘리아 카잔으로서는 거의 마지막으로 주목할 만한 수작인 셈이고.
ps4 : 윌리암 워즈워드의 '초원의 빛' 중 영화에서 읽은 구절 내용입니다.
초원의 빛' (원제 Splendor In the Grass)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e in what remains behind
초원의 빛, 꽃의 영광
다시 그 시간을 돌이킬 수 없어도
슬퍼하지 말고
그 속에 숨어 있는 힘을 찾아 내리....
[출처] 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 61년) 이루지 못한 첫사랑 영화의 교과서|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