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전신마비의 잠수종에 갇힌 남자. 왼쪽 눈꺼풀로 인생을 돌아보기 시작하다
이건 실화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잠수종과 나비>를 보고 눈물 흘릴 준비가 된 관객도 있을 게다. 프랑스 패션지 <엘르>의 편집장 장 도미니크 보비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은 1995년 12월8일 금요일 오후였다. 20일 뒤 장 도미니크는 눈을 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왼쪽 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신체에서 움직이는 부위는 오직 왼쪽 눈꺼풀뿐이었다. 장 도미니크의 몸은 이미 무거운 잠수종에 갇힌 신세였다. 의식은 멀쩡하나 전신은 마비상태인 ‘록트인 신드롬’(Locked-In syndrome)이 찾아온 것이다. 파리 상류사회의 빛나는 나비였던 장 도미니크는 절망으로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몸부림이라는 행위 역시 타인의 사치일 따름이었다. 그는 (거의) 죽었다.
하지만 장 도미니크는 절망 앞에서 쓰러져내릴 만큼 나약한 인간은 아니었다. 아니, 넘겨짚어보건대 그는 나약한 척 울부짖기에는 에고가 지나치게 강한 남자였다. 하긴 프랑스판 <엘르>의 편집장이라면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자신의 간병인들이 얼마나 재치있고 현명하고 예술적인 남자의 배설물을 치우고 있는가를 어떻게든 알려야만 했을 것이다. 장 도미니크가 세상을 향해 부르짖는 방법은 책을 쓰는 것이었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왼쪽 눈꺼풀밖에 없었기에 방법은 고통스러울 만큼 지루하고도 간단했다. 출판사 직원이 알파벳을 외우기 시작하면 자신이 원하는 단어에서 왼쪽 눈을 깜빡이는 것이다. 15개월 동안 20여만번 눈꺼풀을 깜빡거린 장 도미니크는 130페이지의 수기 <잠수복과 나비>를 1997년 3월에 출간해냈고, 책이 출간된 바로 그 주에 그는 (정말로) 죽었다.
<잠수종과 나비>가 전형적인 할리우드영화였다면 장 도미니크의 삶은 <씨 인사이드>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반씩 섞은 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양념을 살짝 끼얹은 평범한 멜로드라마로 탄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포 나잇 폴스>의 줄리앙 슈나벨은 전통적인 드라마투르기의 관습을 피해가며 아예 관객을 장 도미니크의 머릿속으로 던져버리는 길을 택했다. 슈나벨의 예술적 야심에 촬영감독 야누스 카민스키(<뮌헨> <쎄븐>)가 가세한 결과는 기겁할 만하다. 카메라는 (거의) 장 도미니크의 눈을 통해서만 모든 사물을 보여준다. 심지어 장 도미니크의 오른쪽 눈이 점점 꿰매지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순간에는 거의 <클로버필드>가 떠오를 정도다. <빌리지 보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건 이미지의 ‘난교’에 가깝다. “흐릿한 이미지, 명멸하는 노출, 일그러진 와이드 앵글과 익스트림 클로즈업의 시각적 난교.” 카민스키의 기교에 더해지는 또 다른 기교는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8월말 9월초>에서 예민한 프랑스 남자의 어떤 절정을 전해줬던 마티외 아말릭의 연기다. 그는 <오아시스>의 문소리보다도 더욱 제한된 육체적 자유를 부여받고 있지만, 최소한의 자유(오로지 눈꺼풀 하나!)만으로 장 도미니크의 고통과 비애를 스크린에 바른다. 이건 정말이지 본질적인 연기이거나 연기의 본질 그 자체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완벽하고 예술적으로 기교 넘치는 <잠수종과 나비>는 종종 지나치게 계산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슈나벨이 아말릭과 카민스키의 서커스에만 지나치게 심취해 있는 탓이다. 우리는 진정한 장 도미니크의 삶을 느끼는 것처럼 여기게 되지만 모든 것은 한치의 오차도 없는 슈나벨의 기술적 계산을 통해 보여지는 것일 따름이다. 장 도미니크 보비의 책은 일상의 삽화들로부터 뻗어나온 마음의 흔들림에 대한 기록이었다. 하지만 슈나벨은 원작의 일상적 삽화들을 60년대 아방가르드영화 같은 시적인 이미지들, 부서지는 빙산과 가라앉은 잠수종으로 완벽하게 대체하고픈 욕구를 도무지 참지 못한다(심지어 언어 치료사를 비롯한 영화의 모든 여자들도 하나같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그 이미지들은 꿈을 꾸듯 아름답지만 장 도미니크의 세계라기보다는 슈나벨의 세계일 뿐이다.
책 <잠수복과 나비>의 마지막에 장 도미니크는 말한다. “열쇠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내 잠수종을 열어줄 열쇠는 없는 것일까. 다른 곳에서 구해보아야겠다. 나는 그곳으로 간다.” 결국 인간 장 도미니크는 나비처럼 날아올랐다. 그러나 줄리앙 슈나벨의 장 도미니크가 날아올랐는지는 알 길이 없다. 오히려 슈나벨은 자신이 날아오르는 길을 택했다. 이카로스의 날개 같은 예술적 허영에 대한 대답은 칸영화제, 골든글로브의 감독상과 오스카 노미네이션의 영광이다. 글 김도훈 2008-02-13
제작 노트와 이런저런 이야기
Hot Issue
2008 골든글로브 최우수 감독상.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수상!!
2007 칸 영화제의 선택!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적인 스토리와 섬세한 연출력이 조화를 이룬 <잠수종과 나비>는 2007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으로 전세계 평단과 영화 팬들의 기대와 찬사를 받았다.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담담하면서도 감각적인 영상을 선보인 줄리앙 슈나벨 감독은 이 영화로 2008년 1월 13일(미국 현지 시간) 열린 제 6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최우수 감독상의 영예를 안았다. 또한 파격적이고 자극적인 영상으로 국내 관객에게도 유명한 영화 <색, 계> 등과 같은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제 65회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까지 수상하면서 뛰어난 작품성에 대한 자신감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최고 권위의 칸 영화제에 이어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골든글로브의 인정을 받은 <잠수종과 나비>는 2008 아카데미 수상까지 유력해지면서 또 한번 전세계 관객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프랑스 패션 전문지 ‘엘르’ 편집장 ‘쟝 도미니크 보비’의 감동 실화!!
15개월 동안 20만 번의 깜박거림으로 13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펼친 기적!!
<잠수종과 나비>는 잠수종에 갇힌 것처럼 침묵에 빠진 육체를 이기고 자유로운 비상을 위해 도약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쟝 도미니크 보비’는 1997년 사망한 실존 인물이다. 프랑스 유명 패션 전문지 ‘엘르’의 최고 편집장이었던 ‘쟝 도미니크 보비’는 일과 생활에서 부족함이 없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뇌졸중으로 왼쪽 눈을 제외한 신체의 어떤 부분도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의식은 멀쩡했지만 말을 할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던 그는 유일하게 자유로운 자신의 왼쪽 눈꺼풀에 의지해 세상과 소통했다. 당장이라도 죽고 싶다고 소리 없이 외치던 그는 육체를 가둔 한계를 이기며 완벽한 듯 보였던 사고 이전의 삶을 돌아보았고, 언어 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15개월 동안 20만 번에 달하는 한 쪽 눈의 깜박거림으로 알파벳을 하나하나 짚으며 130페이지에 달하는 책 [잠수복과 나비]를 완성했다. 비록 책이 발간된 지 10일만에 세상을 떠났지만, 뒤늦게 깨달은 ‘쟝 도미니크 보비’의 꿈과 희망이 담긴 이 책은 프랑스를 넘어 전세계인의 마음에 나비처럼 자유로운 몸짓으로 남았다.
‘쟝 도미니크 보비’의 꿈과 희망을 담은 책!! [잠수복과 나비]
영화가 되어 다시 찾아온 감동!! <잠수종과 나비>
영화 <잠수종과 나비>는 ‘쟝 도미니크 보비’가 남긴 책 [잠수복과 나비]를 최대한 참조했다. [잠수복과 나비]는 상상과 현실의 혼재 속에 ‘쟝 도미니크 보비’의 살아있는 의식을 담고 있다. 원작 그대로 영화화하는 여타 자전적 영화와는 달리 <잠수종과 나비>는 책의 기본적인 구조를 유지하되 움직이지 않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조화롭게 담겨있고, 실제 그가 느꼈을 매 순간의 감정들이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온 몸이 멈춰있는 현실 속에서 한쪽 눈과 과거의 기억, 그리고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쟝 도미니크 보비’의 기적과도 같은 업적인 [잠수복과 나비]는 영화 <잠수종과 나비>가 되어 보다 사실적인 감동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Production Note
‘쟝 도미니크 보비’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주인공의 시선에 맞춘 파격적인 촬영 기법!!
<잠수종과 나비>는 전적으로 ‘쟝 도미니크 보비’의 시선에 맞추어 촬영되었다. ‘쟝 도미니크 보비’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을 침대 위에 혹은 휠체어 위에 올려둔 채 왼쪽 시야가 닿는 곳만을 바라볼 수 있었다. 화가이자 감독인 줄리앙 슈나벨은 원치 않는 모든 상황을 언제든지 외면할 수 있는 ‘쟝 도미니크 보비’의 눈과 카메라 렌즈를 하나로 만들었다. 카메라 렌즈에 감독 자신의 안경을 입혀 ‘쟝 도미니크 보비’가 움직일 때 마치 그가 안경을 쓰고 있는 것처럼 테두리가 화면에 잡히게 했고,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쟝 도미니크 보비’의 오른쪽 눈을 의사가 꿰매는 장면에서는 카메라 렌즈 위에 라텍스를 올려 놓고 그것을 꿰매며 조금씩 화면을 암흑 속에 가두었다. 그의 파격적인 시도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잠수종과 나비>는 전반적인 영화가 마치 한 사람의 신체인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철저하게 캐릭터를 따르는 <잠수종과 나비>의 평범하지 않은 시각 처리는 ‘쟝 도미니크 보비’의 심리적 여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쟝 도미니크 보비’의 실제 삶을 따라간다!!
<잠수종과 나비> 프랑스 로케 촬영 스토리!!
줄리앙 슈나벨 감독은 ‘‘쟝 도미니크 보비’의 실제 삶이 담긴 장소들이 아닌 곳에서 촬영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잠수종과 나비> 속 ‘쟝 도미니크 보비’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병원은 실제 그가 치료를 받았던 프랑스의 Berck Maritime 병원에서 촬영되었다. ‘쟝 도미니크 보비’가 병실에 누워 바라보았던 천장과 시선이 닿는 병실 안 구석구석, 휠체어를 타고 시간을 보냈던 전망 좋은 테라스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배경은 당시 그를 둘러싸고 있던 상상과 현실의 장소였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오히려 자유로운 꿈을 얻은 ‘쟝 도미니크 보비’의 이야기와 아름답고 따뜻한 풍경의 화면이 어우러져 <잠수종과 나비>를 더욱 감동적으로 만들었다.
매튜 아맬릭, 엠마뉴엘 자이그너, 마리-조시 크로즈
프랑스 연기파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연기!!
<잠수종과 나비>의 영화화가 결정된 후 쟁쟁한 헐리우드 배우들이 ‘쟝 도미니크 보비’역의 물망에 올랐지만, 줄리앙 슈나벨 감독은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프랑스 배우들과 프랑스어로 제작할 뜻을 밝혔다.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게 된 샌 세바스찬 영화제에서 접한 <8월 말 9월 초>를 통해 매튜 아맬릭을 발견한 줄리앙 슈나벨 감독은 ‘쟝 도미니크 보비’ 역에 맡는 배우를 찾았다고 생각했고, 2~3년 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뮌헨>에서 매튜 아맬릭을 만난 제작자 캐서린 케네디의 지지를 얻어 캐스팅을 확정했다. 매튜 아맬릭은 표정, 몸짓, 언어 그 어느 것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치 ‘쟝 도미니크 보비’인 것처럼 완벽하게 배역을 소화해냈고, 주인공의 마음을 대신하는 나레이션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매튜 아맬릭 외에 <잠수종과 나비>에서 ‘쟝 도미니크 보비’의 ‘부인’이 아니라 쉼 없이 흔들리는 ‘쟝 도미니크 보비’를 마지막까지 사랑으로 감싸 안는 ‘아이들의 엄마’가 된 엠마뉴엘 자이그너는 <피아니스트>의 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부인으로 여러 영화에 출연해왔지만 <잠수종과 나비>를 통해 비로소 배우로서의 진면모를 보여주었다. 또한 <야만적 침략>으로 제 2003년 제 56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마리-조시 크로즈는 <잠수종과 나비>에서 ‘쟝 도미니크 보비’를 세상과 이어주는 언어 치료사로 등장한다. 마리-조시 크로즈는 ‘쟝 도미니크 보비’의 자유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왼쪽 눈꺼풀의 느릿한 움직임을 희망으로 만들어 누구도 믿지 못한 기적을 이루게 한 이 캐릭터에 꼭 맞는 듯한 연기를 선보였다.
제작부터 촬영까지!!
아카데미의 시선을 빼앗은 화려한 제작군단!!
<잠수종과 나비>의 프로듀서 캐서린 케네디는 , <인디애나 존스>, <백 투더 퓨처>, <쉰들러 리스트>, <쥬라기 공원>, <식스 센스>, <뮌헨> 등 제목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는 영화들의 프로듀서였다. [잠수복과 나비] 책에 대한 제작권을 구입한 캐서린 케네디는 틀에 박힌 구성에서 벗어난 스토리 구성을 위해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로 2003 제 75회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시나리오 작가 로널드 하워드에게 극본을 맡겼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쟝 도미니크 보비’의 심리적인 여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로널드 하워드의 극본을 영화화할 수 있는 감독으로는 줄리앙 슈나벨을 선택되었고, 캐서린 케네디의 안목은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감독과 함께 파격적이지만 아름다운 영상을 완성한 이는 <쉰들러 리스트>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1994년과 1999년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한 촬영 감독 야누즈 카민스키였다. 줄리앙 슈나벨 감독의 실험적인 시도에 동참한 야누즈 카민스키는 종종 초점이 안 맞지만 가끔씩 멋지고 때로는 균형이 잡히지 않은 화면을 통해 <잠수종과 나비>가 표현하고자 했던 ‘쟝 도미니크 보비’의 심리를 정확하게 그려냈다.
지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