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카 마니아다. 차에 대한 지식과 정비기술이 프로급이다.
공부하는 틈틈이 이론과 기술을 익혀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졸업 후 귀국할 예정이라는 소식에 선후배들의 첫마디가 이랬다고 한다.
"야, 네가 가고 나면 내 차는 어떡하라고."
미국에서는 차가 없으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시장에 가려면 20분, 외식을 하려면 30분 정도는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그러니 처음부터 차를 장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엔 가난한 유학생 신분에 맞는 중고차를 탔다.
중고차는 값은 저렴하지만 고장이 잦고 수리비가 만만치 않은 단점이 있다.
작은 고장이라도 서비스센터에서 수리를 받으려면 인건비가 비싼 미국에서는 그 엄청난 수리비에 놀란다고 한다.
궁여지책으로 인터넷에서 이론과 기술을 습득하고 장비를 갖춰 직접 수리하기 시작했단다.
이런 작업이 거듭되다 보니 기술이 늘어 친구들 사이에 차에 대한 문의도 받게 되고 가벼운 고장은 직접 해결해 주기에 이르렀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문방구에서 파는 로봇 프라모델을 사서 본드로 붙여 완성하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시험 만점을 받으면 상으로 프라모델을 사달라고 할 정도로 좋아했다.
3학년 때 전과목 만점을 받았을 때였다.
기분이 좋은 남편이 "상으로 무엇을 사줄까?" 했을 때, 그 당시 유행하던 "건담 로봇이요."했다.
이튿날 남편은 퇴근길에 백화점에 들러 가장 크고 비싼 건담 로봇을 사왔다.
아빠가 사오는 선물을 기다리던 아들의 얼굴이 경악과 실망으로 급기야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이게 아니란 말이에요." 프라모델을 기대했던 아들에게 아빠는 완성품을 사왔던 것이다.
만드는 재미를 아는 아들의 취미성향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헤프닝이었다.
그 후로는 과학상자 만들기로 취미가 발전했다.
중학교 때는 학교 대표로 선발되어 과학상자 만들기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수상 작품이 근사하고 멋진 프로펠라 비행기였다.
어린 시절부터 과학에 대한 관심과 손재주가 많더니 그 관심이 차로 옮겨간 것이다.
3년 전, 그곳 생활에 익숙해지고 정보통신부에서 주는 장학금도 받게 되어 마음에 드는 새 차를 장만하게 되었다.
코발트색 스포츠카를 보는 순간 바로 필이 꽂혔단다.
차에 대한 사랑이 다시 불붙었던 것이다.
귀국하면서 배로 부친 짐의 반은 차에 관한 것이었다.
차에 필요한 소모품과 정비도구들이 소규모 카 서비스센터를 차려도 될 정도였다.
차에 대해 문외한이면서 운전만 하는 남편은 이런 아들을 보고 잔소리를 했다.
"쓸데없이 이런 건 뭐 하러 잔뜩 사 왔냐? 놔둘 데도 없는데..."
'쓸데가 있으니까 사 왔겠지.'라고 짐작하는 나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 집에는 이렇게나 많은 차에 관한 물건들을 놔둘 마땅한 장소가 없다.
아직 박스를 풀지 못하고 쌓아둔 것도 있고 현관의 신발장 두 곳 중, 한 곳을 다 비워 정리했는데도 아직 자리가 태부족이다. 아파트 지하에 창고를 만들어 주겠다던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건설사가 괘씸하게 생각되는 요즘이다.
미국에서 배로 부친 차를 관세청에 가서 운반비와 통관세 내고 아들이 차를 찾아갖고 왔을 때였다.
구청 가서 등록하고 번호판 받는데 몇 시간이 걸렸다.
통관세 운반비도 목돈이었지만 등록비도 만만찮게 많이 들었다.
이 일은 아들 대신 내가 처리했다.
번호판은 하얀 바탕에 검은색 글씨를 일렬횡대로 쓴 것으로 깔끔하게 바뀌었다.
번호판은 앞과 뒤 두 군데 붙여야 한다.
그런데 중대한 문제가 생겼다.
미국 번호판 나사 위치가 한국 번호판 위치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번호판에 두 개의 동그란 구멍 위치가 안 맞으니 다시 뚫어야 한다.
지하주차장에서 아들과 나는 번호판 부착 작업을 했다.
나는 옆에서 잡아주는 정도고 아들은 종이 펀칭하는 도구로 쇠로 된 번호판에 구멍을 뚫었다.
나사구멍 네 개 뚫는데 땀이 비 오듯 했다.
결국 구멍 뚫는 데는 성공했지만 펀칭은 못쓰게 돼버렸다.
세차도 주유소에서 해주는 공짜 세차는 차가 긁혀서 못쓴다고 동전 넣고 직접 호스로 물 뿌려가며 하는 셀프 세차장에서 했다. 나는 그런 세차장이 있는 줄도 몰랐다.
한 번은 세차를 하고 온 아들이 하얀 타월과 노란 타월이 따로 든 비닐봉지를 주며
"이 건 색깔별로 따로 세탁해야 합니다. 섬유 유연제를 넣으시면 안 되고요. 건조할 때도 먼지가 없는 깨끗한 곳에서 말려야 합니다." 이건 차를 닦는 걸레가 아니라 아기 옷을 세탁하는 것보다 더 했다.
아들에겐 차가 교통수단이 아니라 금지옥엽 보물단지다.
지하주차장에 주차할 때도 비교적 한산한 지하 4층까지 내려가서 주차한다.
주로 차를 아끼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다.
쓰윽 둘러봐도 고급차가 대부분이다.
아들의 차 사랑은 어디까지일까? 상상이 안 된다.
재작년 방학 때 열흘간 집에 머물면서
"집에 오니 참 좋은데, 내 차가 잘 있는지 궁금해요." 할 정도다.
회사에 입사 후에는 동료의 외국산 차 수리를 자처해 휴일에는 지하주차장에서 보내는 일이 자주 있다.
기름 묻은 작업복에 차 수리하느라 고생하는 아들을 보노라면 엄마인 나는 애처롭다.
하루 종일 걸리는 고된 작업으로 보답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한 끼 식사대접이라고 한다.
너무 어이가 없어 뭐하러 그런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했다가 '유구무언' 꼼짝 못 하고 말았다.
"엄마는 어깨, 손목 아프다고 하시면서 수세미 떠서 나누는 일을 왜 하세요?"
2007.4.22
첫댓글 아드님 손재주가 선배님한테 물려 받았네요.
남자애들은 원래 어릴때 부터 차를 좋아하지만, 아드님은 특별히 좋아하나 봅니다.
어릴때 같이 앉아 로보트 조립하고, 작은차 시리즈로 모으고 참 아득한 옛날일이 생각 나네요. 요즘 애들은 모두 공부만 한다고 이런 추억
거리도 만들지 못하고, 아마 이런 얘기하면 딴세상 같을거예요.
참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따뜻한 얘기입니다...
어릴 때부터 만든는 걸 좋아했어요.
일단 완성하면 관심이 없어요.
동생에게 주더군요.
아빠 쪽은 재주가 메주라 엄마를 닮았다고 봐야죠. ㅎ
지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더 이상 말리지도 못 해요.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가 있어 행복해 하고 또 타인 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취미라면 인생의 즐거움은 훨씬 배가 되겠지요 미치도록 좋아하고 미치도록 즐거운것 만큼 행복 한게 또 있을까요? 저는 아드님 마음 알아요 아무리 좋은게 있어도 요리 할때보다즐거운것이 없는 제 마음 같으니까요 그래서 삶이 즐겁습니다~~~
맞아요.
좋아서 하는 일은 어렵지도 않고 즐겁고 행복하겠지요.
왼종일 걸려서도 큰보람을 느끼나 봐요.
휴일에 쉬어야 하는데 쉬지 못하니 나는 마음이 아프지요.
결혼하기 전이고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