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江日記 26
서천 이 해 범
26. 황학루(黃鶴樓) 1995.7.26(수). 맑다.
중국 지방정부가 우리 취재진에 대해 오해가 생긴 듯, 내무성 공안요원이 호텔로 찾아와 구강 시에서 퇴거하여 달라고 하여, 새벽에 쫓기듯이 호텔을 나와 백 거 이가 시를 짓고 놀았다는 감 당 호(甘 堂 湖) 가의 연수정을 우물쭈물 찍고, 무 한(武 漢)행 배를 타기 위해 허겁지겁 부둣가로 향하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
각자의 짐을 들고 진땀을 흘리며, 서둘러 부두에 와보니 다행히 배는 도착하지 않았다. 부두의 매 점 같은 곳에 우선상선(優先上船)이라는 팻말이 붙어있기에 저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 매점은 음악다방인데, 그곳에 입장하면 배를 탈 때 특별히 우선적으로 배를 태워 준다는 뜻인바, 말하자면 VIP실이란 의미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한 듯 별도의 대가를 치르고 그 음악다방에 입장했는데, 그 곳은 참으로 별 볼일 없는 곳으로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한마디로 여행객의 주머니나 털려는 속셈으로 만든 꿍꿍이 공간이다.
원래는 8시30분 승선하여 10시간 뒤 무한에 도착하기로 했던 것인데, 한 시간이 넘어서야 배가 도착했다. 무거운 짐을 겨우겨우 추스르며 배에 올라보니, 배 안은 너절하게 어질러 져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쉬어갈 특실의 냉방시설은 잘 돌아가고 있었다.
잠시 후 배는 무한으로 가기 위해 장강의 상류로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배가 무한에 도착하기 2시간 전쯤, 난데없이 방 청소를 한다고 손님을 몰아내는 승무원들을 보고 기가 막혔다. 물론 나중에 그 방에 다시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손님을 위한 서비스치고는 한심했다.
오후 7시경 부두에 도착하고 호 빈 화 원 주 점(湖 賓 花 園 酒 店)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의 안내서를 대강 훑어보니, 무한이란 도시는 장강의 북쪽에 있는 한 구(漢 口)지구와 그 서남쪽에 있는 한 양(漢 陽)지구, 그리고 강남 쪽에 있는 무 창(武 昌)지구를 통 털어 말하는데, 예로부터 무 한(武 漢)을 백 호 지 도(百 湖 之 都), 호 북(湖 北)을 천 호 지 성(千 湖 之 省)이라 하는 까닭은 호수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라 한다.
또 이곳에는 중국에서 제일 긴 다리 무 한 대 교(武 漢 大 橋)가 있는데 그 길이는 1674m 로 이 다리가 준공되었을 때 모 택 동 주석이 친히 와서“ 이 다리로 인해 중국의 남과 북이 연결되었다”라고 하며 건설관계자들의 공로를 치하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완성된 무한 제2교는 392가닥의 쇠줄에 의해 지탱되는 현 가 식(懸 架 式) 다리로 자그마치 4670m로 아시아에서 제일 긴 다리라고 한다.
한편 무한대교의 동쪽 야트막한 사 산(蛇 山)언덕에 중국 건축미의 전형이라는 황 학 루(黃 鶴 樓)가 있는데,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면 복을 받는다는 내용의 전설이 있었다.
옛날 장강의 동쪽 사 산 언덕에 강을 건너는 길손을 상대로 음식과 술을 파는 주막을 경영하는 가난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이 주점에 남루한 옷차림을 한 백발의 손님이 와서 먹을 것을 시켰다. 주인은 그 행색이 돈을 낼만한 사람이 아닌 것을 한 눈에 알아봤으나, 아무 군소리 없이 한 상 잘 차려 주었다. 예상대로 손님은 돈이 없다고 하며 미안해하며 쩔쩔매었다.
그런데 하룻밤을 묵고 떠날 줄 알았던 손님은 강 건너 가는 나룻배를 타려는 기색이 없이 하루 종일 뭉그적거림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주인은 그가 오갈 데 없는 늙은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채고, 우리가 가난하지만 끼니걱정은 하지 않으니, 함께 지내자고 말했고, 노인은 못이기는 척 주저앉았다.
그러기를 몇 달. 어느 날 노인이 초라한 봇짐을 추스르며 떠나겠다고 하였다. 부부는 자기들이 박대한 것 아닌가 하여 떠나는 것을 말렸으나 노인은 꼭 가야한다며, 그동안의 정표로, 황 학 한 마리를 그려 놓았으니, 손님이 오면 손뼉을 쳐보라는 것이었다.
몇 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떠났고, 며칠 후 일행을 많이 거느린 귀인이 주막에 들어섰다. 그들은 한동안 술과 고기를 먹고 거나해지자 벽에 그려진 황학을 쳐다보게 되었다. 마침 그 귀인은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든지 주인을 불러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정신없이 손님접대에 바쁘던 주막집 주인은 그제야 노인이 그렸다는 황학을 쳐다보면서 그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없으나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또 그 노인이 떠나면서 일렀던 말이 생각이 나서 손뼉을 쳐보았다.
잠시 후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주인이 손뼉을 치자마자, 노인이 귤껍질로 벽에 그려놓았던 황학이 술청으로 사뿐히 날아 내려와 훨훨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이리하여 이 주점은 그 일대에 유명한 주점이 되었고,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다투어 이 주점에 모여들었기 때문에, 매일 갈퀴로 돈을 긁어 담게 되었다 한다.
이제 황 학 루의 주인은 옛날의 가난뱅이가 아니었다. 마음씨 착한 부부에게 복이 내렸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초라한 노인이 찾아와서 “이제 살만 한가?”하고 물었다.
부부는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며 “ 살만 하구 말 굽쇼. 대인의 은덕입지요”라고 대답했다. “ 그렇겠군, 이제 너무 돈을 많이 벌면 그로 인해 화가 닥칠 것 일세 그러니...”하고 노인은 황학을 불러 그 잔등이에 올라타고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황학을 탄 노인은 주점을 한 바퀴 빙 돌며 주인내외에게 손을 흔들고는 장강의 북쪽 하늘로 까마득히 날라 갔다. 일설에 의하면 그 선인(仙人)은 바로 여 동 빈(呂 東 貧) 이라는 도인(道人)이었다고 한다.
각설하고 황 학 루는 높이가 55.5m로 중국 루각가운데 가장 높고 장대하다. 따라서 기둥이나 기와집의 덩치가 크기 때문에 까닥하면 미련하고 둔 중(鈍 重)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루각을 설계한 건축가는 처마의 곡선을 날렵하게 치켜 올림으로서 그 무거움을 경쾌함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마치 황학이 날개를 치며 솟구쳐 오르는 기분을 표현한 듯하다. 또 이 루각의 기와는 모두 황색 유 약(油 藥)을 발라 화려함을 더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황 학 루는 중국 건축미의 백미(白眉)라고 보여 진다.
한편 무한의 안내 지도에 실린 황 학 루에 대한 소개를 보면, 무 창의 사산 언덕에 있고, 누의 북쪽으로는 장강이 잔잔히 동으로 흐르며, 루의 좌우 그리고 남에도 화려한 시가지가 깔려있고, 또한 황 학 루 안에는 중국 역대의 허다한 시인 묵객의 영 탄(詠嘆)의 글이 있는데, 일제히 천하절경임을 말하고 있다고 한다.
하여튼 이 황 학 누는 호남의 악양루, 강서의 등 왕 각과 더불어 강남 3대 명 누(名 樓)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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