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은 1사 1루에서 구원등판해 첫 타자를 삼진으로 삼았으나 다음 타자인 박진만을 볼넷으로 내보내 주자 1,2루인 상태에서 대타 최익성과 대결하게 된다
1구 - 헛스윙
이제까지 이상훈의 투구 스타일로 보아 초구는 패스트볼로 스트라익을 던질 확률이 백 퍼센트였다. 이전 타자를 볼넷으로 내 주어 1,2루로 몰려 있는 상황이었고 타자 역시 최익성이었기에(만약 심정수라면 약간의 변수가 있다) 초구는 백프로 스트레이트였다(이전 경기에서 몇차례 브레이킹볼이 홈런으로 연결된 이후부터는 아예 브레이킹볼은 유인구로만 쓰는 배터리의 습관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타석에 들어선 최익성 역시 '감'으로 패스트볼이 들어올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타로 들어온 최익성은 스트라익존을 통과하는 145키로 이상의 빠른 볼에 타이밍에 맞지 않는 엄청난 헛스윙을 하고야 만다.
2구 - 헛스윙
자기의 생각보다 훨씬 빠른 패스트볼에 타이밍이 전혀 맞지 않았던 최익성은 초구의 상황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의 머리속엔 오직 패스트볼만 가득 차 있었고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는 조바심에 초조해진다. 반면, 엘지 배터리는 최익성의 큰 스윙을 의식하고 두번째 공은 체인지업(스플리터였다고 보여진다)으로 가져간다.
사실, 최익성(중간레벨의 고수)이 아닌 하수와의 승부였다면 이상훈&조인성 배터리의 볼배합은 여지없이 패스트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초구 최익성의 엄청난 헛스윙에 몸을 사린 게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동상이몽이다)
여하튼, 초조한 최익성은 볼이 시야에 들어오자 평상심을 잃는 바람에 평소보다 한템포 앞서 스윙을 나가기 시작하고 배트는 볼과 전혀 상관없이 허공을 힘껏 가른다. 최익성의 엄청난 해드업은 그가 볼을 전혀 안 보고 패스트볼을 공략하기 위한 빠른 스윙에 초점을 맞췄다는 걸 알 수 있다
3구 - 볼
서로 호흡 고르는 시간이다. 정확히 보지 않아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다음볼이 몸쪽 직구였다면 바깥쪽 높은쪽의 코스를 던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물론, 이건 너무나 스탠다드한 볼배합이지만 안전을 생각하면 이런 볼배합을 가져가는 게 좋다. 바깥쪽 공을 본 후 다음 공을 몸쪽으로 바싹 붙이면 대개 알고도 배트가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4구 - 볼
사실 이번볼이 승부구였다. 이상훈은 맘먹고 몸쪽으로 패스트볼을 붙였고, 최익성은 알고도 배트가 움찔하며 미처 나가지 못했다. 알고도 배트가 못 나간다는 말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텐데 정말 타석에 서면 몸쪽으로 빠르게 볼이 오면 뻔히 보면서도 배트가 나가지 않을때가 종종 있다. 최익성이 볼을 고른 게 아니라 운 좋게 볼이 된 것이었다. 이번 공은 승부구로 아주 좋았다. 다만, 심판의 카운터에 대한 운이 안 좋았을 뿐이다(스트라익 선언해도 별로 할 말 없었음)
5구 - 볼
이번 승부는 충분히 예측가능한 볼배합이었다. 빠른 공을 던져 승부를 내지 못했는데 다시 빠른 공으로 스트라익을 꽂을 배짱은 사실 모험이나 마찬가지였다. 배터리는 최익성을 2구째 유인했던 스플리터로 다시 한번 유인했고, 이미 평상심을 되찾은 최익성은 반템포 늦춰 볼을 좀 더 지켜본 후 스트라익 존에서 떨어지는 걸 확인하고는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여기서 투 쓰리까지 가지 말고 다시 몸쪽으로 붙는 패스트볼로 승부를 하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투 쓰리에 대한 부담은 브레이킹볼이 제구가 잘 안 되는 이상훈에겐 너무 크니까 자신의 장기로 다시 빠르게 붙이는 역볼배합을 가져 가는 게 좋은 결과를 가져갔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마 최익성은 배트가 늦게 나왔을 것이다(이건 최익성 뿐이 아니다. 이상훈 정도의 패스트볼을 치기 위해선 처음부터 예측하지 않고서는 거의 배트가 밀리거나 헛스윙을 하게 된다. 반사적으로 쳐 낼만큼 만만한 공이 아니다)
그리고, 이상훈이 풀카운터로 몰리면 던질 수 있는 공이 너무 뻔하기 때문에 (결과론을 떠나) 차라리 맞더라도 로케이션을 타이트하게 가져갈 수 있는(풀카운트에선 로케이션을 세밀하게 하기 힘들다) 투앤투에서 승부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6구 - 외야 플라이
이번 승부는 전적으로 최익성의 미스였다. 일단, 엘지 배터리로써는 선택할 수 있는 볼은 패스트볼로 스트라익 승부하는 단 한 가지였다(만약 심정수라면 유인구로 승부했을지도 모르지만 최익성이라면 힘대힘 승부가 뻔했다). 특히, 결정구를 스트라익 승부로 할 때, 절대 브레이킹볼을 던지지 않는 요즘의 이상훈으로써는 백이면 백 패스트볼 승부였다. 그런데, 최익성은 변화구를 예상하는 타격을 가져갔다...
사실 최익성의 예상은 어느 정도 올바른 판단이었다. 패스트볼로 들어오는 건 너무나 뻔한 승부라서 그 뻔한 승부를 하지 않을거라는 예상... 이건 당연한 예상이었다. 그러나, 최익성은 공부를 하지 않았다. 왜냐면 배터리는 그 뻔한 승부를 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최익성은 속으로 생각한 '설마...' 하는 긴장감 때문에 패스트볼을 맞출 수 있었지만 배트 타이밍도 느렸고 공에도 밀려 외야의 얕은 플라이로 물러나고 만다
내가 항상 박용택에게 강조하는 '공부해라'는 말은 바로 상대 배터리에 대한 연구였다. 박용택은 공 맞추는 재주도 좋고 타격폼도 무리가 없는데 변화구 유인구에 속수무책이다. 볼배합을 예상하면서 유인구 타이밍 땐 볼을 반템포 늦춰 타격해야 되는데 공이 시야에 보이면 무턱대고 스윙을 하니 속수무책인 것이다. 실질적인 타격훈련도 좋지만 상대배터리의 볼배합을 연구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아울러, 이상훈같이 뻔히 알 수 있는 볼배합을 헛스윙 삼진 당하는 이유는 그의 공이 상당히 위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공의 위력이 뛰어날 때나 통하는 것이다. 이상훈이 힘이 떨어지면 그 뻔한 볼배합은 장타로 연결된다. 엘지 배터리도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