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7장 1 - 8절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름을 바꾼 사람들이 더러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과 사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외에도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꿔 부르신 것도 있고 시몬을 베드로로 부르신 것도 있습니다. 사울이 바울로 바뀌었다고 주장하시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울은 히브리식 이름이고 바울은 헬라식 이름입니다. 그 당시에는 헬라권에 살았던 많은 유대인들이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바꾸셨다거나 야곱의 이름을 바꾸신 것처럼 사울의 이름을 바울도 바꿨다고 보는 것은 너무 지나친 추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아브람은 존경 받는 아버지라는 뜻이었는데 아브라함으로 바꾸면서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사래도 원래 이름의 뜻은 ‘나의 공주, 나의 여주인’ 이런 뜻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공주, 아브라함의 여주인 정도였는데 사라라는 이름으로 바꾸면서 ‘나의’ 의미가 사라지고 그냥 공주, 여주인이 되면서 여러 민족의 공주, 여주인이 되면서 아브라함처럼 여러 민족이 어머니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이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작명의 필요성을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는데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름을 잘 지어주고 못 지어주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시는 과정에서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만들기 위해서 사용하신 한 방법이지 이름이 좋으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이름이 나쁘면 하나님께 복을 못 받는다는 것은 한낱 무속신앙일 수밖에 없습니다. 노유림이라는 사람이 올려놓은 글을 보니까 있을 유, 수필 림자를 사용하고 있다는데 아버지가 이름을 지으시고 한자를 마음대로 넣으셨다면서 나이가 들면서 몸도 아프고 일도 잘 안 되고 자식도 아프다며 그 이유가 이름 때문이냐고 물어 보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또 성명학을 하는 분, 작명을 하시는 분이 풀이를 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의 이름을 바꾸신 것을 그런 의미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허접한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말의 중요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은 아브람이라고 불릴 때는 존경하는 사람 정도였지만 아브라함이라고 불러지면서부터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축복을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 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 언어의 축복을 받으면서 살게 되니까 그렇게 기다려도 낳을 수 없었던 자녀를 낳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부를 때 이름을 부르지 않고 “야”라거나 “애기야” 이렇게 부르게 되면 그 이상의 존재감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야” 이렇게 부르든가 축복의 언어로 계속 축복을 해야지 아무렇게나 부르면 그 인생은 아무렇게나 자라나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존스 홉킨스 병원의 소아외과 의사인 벤카슨 박사는 샴쌍둥이 형제의 분리수술을 성공시키면서 일약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의사 5명 중 한명이 되었습니다. 샴쌍둥이란 태어날 때에 건강한 몸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하고 서로의 몸이 붙은 상태로 나온 쌍둥이를 말하는데 어떤 쌍둥이는 서로의 배가 붙어있기도 하고 또 다른 쌍둥이는 서로의 등이 붙어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벤카슨이 수술한 쌍둥이는 그들의 머리가 서로 붙은 쌍둥이었습니다. 팔도, 다리도 모두 정상인데 그들의 머리 뒷부분이 서로 붙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수술을 하는데 엄청 위험할 수밖에 없었고 이 수술을 잘 마쳤을 때 정말 힘든 수술이었기 때문에 신의 손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유명해진 벤카슨 박사의 이야기가 자서전으로 출판이 되었는데 놀라운 것은 샴쌍동이의 분리수술보다 그가 쓴 책이 더 큰 영향을 세상에 미쳤던 것입니다. 벤카슨은 편모슬하에서 자라면서 불량소년들과 어울려 싸움을 일삼는 흑인 불량소년에 불과 했습니다. 흑인이었기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구구단을 암기하지 못했으며 수학시험을 한문제도 맞추지 못해 학생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신의 손’이라 불리는 유명한 의사가 된 것입니다. 어느 날 기자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오늘의 당신을 만들어준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벤카슨은 “나의 어머니 덕분입니다. 어머니는 내가 늘 꼴찌를 해도, 흑인이라고 따돌림을 당할 때도 언제나 ‘벤 넌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노력만 하면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려주면서 내게 격려와 용기를 주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격려와 용기가 자신을 이렇게 유명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고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언어의 축복을 받게 되면 복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도 입을 열어 자랑하고 서로를 축복했을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교회가 되는 것이지 긍정의 언어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 교회는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축복의 언어! 긍정의 언어! 마치 이름을 부르듯이 날마다 그렇게 입으로 시인을 해야 서로 복을 받고 하나님의 형통함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인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언어의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 부르고, 사래를 사라로 부르는 것! 얼마나 간단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 간단한 일이 하나님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불가능한 일이 가능한 일로 변하고 인간으로써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는 일들이 너무 쉽고 편한 일로 변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내뱉은 언어에 그런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고 긍정의 언어, 축복의 언어, 믿음의 언어를 가지고 사는 복된 하루가 되시고, 말한 대로 복을 받고 형통함을 누릴 수 있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