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다치지 마라!
저는 "첫째니까 무조건 잘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그 이유는, 동생들이 보고 배우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노력해서,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가야 한다는 부모님의 간절한 소망은, 우리도 너를 위해서 있는 힘껏 노력하고 있으니, 더 분발하라는 징표였습니다. 그 사랑과 관심에 벅차서 눈물이 날 때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키웠다는 그 말의 무게에 짓눌려서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죽어라 노력하고 애써도 안 되는 게 많다는 걸 배운 상처투성이 성장기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너무 애쓰지 말고 살아!”라고 말하는
문제적 어른이 나타났습니다. 저의 시어머니였습니다. 평생 열심과 최선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듣고 자란 저에게 그 말은 정말 충격적이었는데, 더 놀란 것은 그 말에 터진 저의 눈물이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때 제가 느낀 감정은 거대한 안심이었습니다. 12월의 크리스마스는 늘 불행했습니다. 크리스마스에도 당선 전화가 오지 않으면, 그해의 신춘문예는 또 낙방이었습니다. 10년째 낙방하던 신춘문예, 갚을 길이 멀어 보이는 대출금, 자주 반려되던 기획서에 짓눌려서 언제든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던 저에게 “너무 잘하려고, 무슨 일이든지 금방 다 하려고 애쓰다가,
마음 다치지 마라!”는 그 말씀은 큰 나무 밑의 그늘처럼, 기대어 쉴 수 있는 안전판 같았습니다. 심윤경 님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에는, 치열한 교육관을 가진 부모님과는 달리, “그려, 안뒤야, 뒤얏어, 몰러, 워쩌?”와 같은, 순하고 단순한 할머니의 말씀을 곁에 두고 산 소설가의 유년기가 등장합니다. 이 아름다운 책에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서, 나는 내가 그렇게 많은 것을 받은 줄도 몰랐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저는 그 말의 의미를 20년이 넘도록 아흔의 시어머니로부터 배웠습니다. 때로는 격려와 기대가 자식을 숨 쉬지 못하게 하는 부담과 죄책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통달한 어른이 주는, 그 ‘무심한 다정’을 원 없이 받은 것입니다. 비싸고 좋은 물건이니, 아껴서 조심히 쓰라는 말보다, 깨져도 괜찮으니, 마음껏 쓰라고 말씀하는 어른은 얼마나 희귀합니까? 알아도 모르는 척, 묻지 않는 배려는 또 얼마나 귀한가요?(백영옥)
복음서엔 “유대인지도자들은 자기들도 할 수 없는 무거운 짐(613개나 되는 율법)을 남의 어깨에 지우고, 자기들은 손끝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네 보통 어른들도 흔히 그런 실수를 합니다. 자기들은 마치 모범생이고 우등 장학생이었던 것처럼 자녀들을 닦달하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글쓴이의 시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너무 잘하려고, 무슨 일이든지 금방 다 하려고 애쓰다가, 마음 다치지 마라!”라고 하셨답니다. 이 시어머니 말씀은 “큰 나무 밑의 그늘처럼, 기대어 쉴 수 있는 안전판 같았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