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 혜근 (懶翁惠勤 )– 고향 가는 길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나옹 혜근(懶翁惠勤, 1320~1376)의 어록에는 없지만, 오래전부터 그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시다.
이 시에 곡을 붙인 노래들이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탐욕과 성냄, 사랑과 미움으로 얼룩진 복잡한 세속을 떠나 바람처럼 물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담긴 노래다.
특히 도시 생활에 지쳐 ‘자연 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 시는 위로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시의 주인공인 나옹은 과연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았을까?
▶ 대중 속으로…
나옹은 경북 영해(寧海) 출신으로 속명은 아원혜(牙元惠), 호는 강월헌(江月軒)이다.
어려서부터 출가에 뜻을 두었으나, 부모의 반대로 이루지 못한다.
그런데 스무 살 무렵 가까운 벗이 죽는 모습을 보고 그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삶과 죽음이라는 실존적 고민에 빠진 나옹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모른다는 대답 뿐이었다.
그는 이 해답을 찾기 위해 공덕산 묘적암(妙寂庵)에 주석하고 있던 요연(了然) 선사에게 나아가 출가를 청한다.
그때 요연이 ‘무엇 때문에 삭발 하려느냐’고 묻자 나옹은 이렇게 답한다.
“삼계를 벗어나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합니다.”
친구의 죽음을 보고 출가한 사문과는 어울리지 않는 대답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벗의 죽음을 통해 삼계의 고통을 맛보고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출가를 결심한다.
대개 위대한 종교가들은 이러한 실존적 고뇌를 느끼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종교에 귀의한다.
붓다 역시 사문유관(四門遊觀)을 통해 생로병사(生老病死)에 대한 문제 의식을 느끼고 출가했다.
그리고 치열한 수행 끝에 그 문제를 해결하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붓다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깨친 진리를 중생들에게 전하기 위해 45년 동안 고군분투했다.
나옹 역시 출가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평생 동안 중생을 위한 삶으로 일관했다.
그러니까 삼계를 벗어나 중생을 이롭게 하겠다는 대답은 불교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온 세상이 고통 속에 있으니, 내가 마땅히 평안하게 하리라(三界皆苦吾當安之)”는
붓다의 탄생게와 뜻이 통한다 할 것이다.
간절한 발심(發心)을 하고 출가한 만큼 그는 치열하게 정진을 이어갔다.
그래서 한 소식 깨치는 체험을 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중국으로 건너가 자신의 공부를 점검하는
기회로 삼는다.
그는 지공화상(指空和尙)의 문하에서 10년 간 수행한 끝에 인가를 받았으며,
임제종을 대표하는 평산처림(平山處林, 1279~1361)에게도 인가를 받게 된다.
특히 지공은 서천 108조라 불리는 석가족 출신의 승려로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석가모니 붓다의 화신으로 추앙 받을 만큼 당시 고려의 민중들에게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런 지공에게서 인가를 받고 돌아왔으니, 나옹은 그 자체로 엄청난 프리미엄을 얻게 된 셈이다.
나옹이 귀국하자 공민왕은 그를 극진히 모시고 왕사(王師)로 추대한다.
하지만 나옹은 왕사 니 국사니 하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출가할 때 발심한 것처럼
자신이 깨친 진리를 중생들을 위해 회향하는 삶으로 일관한다.
그는 선사이면서도 대중들이 불교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토 신앙과 염불을 강조했다.
특히 염불 수행을 통해 정토 왕생을 바라는 <서왕가(西往歌)>와 같은 불교 가사를 지어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나옹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 많고 그와 관련된 여러 설화가 남아있는 것은
그만큼 나옹이 대중 속으로 들어가 불법(佛法)을 전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는 중생들을 위한 삶을 살다가 여주 신륵사(神勒寺)에서 입적하게 되는데,
당시 오색 구름이 산 꼭대기를 가득 덮었으며, 신비한 광채가 일어났다고 전한다.
이뿐만 아니라 그가 타고 다니던 말은 3일 전부터 슬피 울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다비식이 끝나고 수많은 사리가 나오자 많은 이들이 집으로 가져가 모셨으며,
나옹이 살아있을 때보다 더욱 추앙하게 되었다고 역사는 말하고 있다.
다음은 그가 남긴 열반의 노래다.
칠십팔 년 고향으로 돌아가나니,
천지 산하 온 우주가 다 고향이네.
삼라만상 모든 것은 내가 만들었으니,
모든 것이 본래 참 고향이네
(七十八年歸故鄕 天地山河盡十方 刹刹塵塵皆我造 頭頭物物本眞鄕).”
(칠십필년 귀고향 천지산하 진심방 찰찰진진 개아조 두두물물본진향)
출처 : 불교신문
향상일로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