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증과 늑대 공포증으로 지크문트 프로이트에게 정신 치료를 받은 러시아의 귀족 세르게이 판케예프가 그린 그림. 창밖의 호두나무에 하얀 늑대들이 앉아 있는 모습의 꿈을 그린 것인데, 이는 그의 공포를 반영한다.
■ 늑대인간
인간과 동물 사이의 비식별 지대에 갇혀버린 신세…법에 의해 버려지고도 법의 지배를 받아
여러 민족 신화에 보편적 등장…프로이트 꿈의 분석에서도 이성적 세계 이면의 진실 가리켜
노진구는 도라에몽을 졸라 미래의 장난감을 하나 얻는다. 손전등인데, 전짓불이 아니라 달빛을 쏘는 이른바 ‘월광등’이다. 월광등의 빛을 받으면 보름달이 뜰 때의 효과가 나타난다. 빛을 쪼인 사람이 ‘늑대인간’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월광등을 가지고 진구는 늑대 사냥을 위해 늑대로 변신하지만, 결국 늑대의 친구가 되고 사냥꾼들에 맞서 늑대 가족을 지킨다. ‘도라에몽-늑대 가족’ 편의 이야기다.
‘젤다의 전설-황혼의 공주’ 편에서 주인공 링크는 늑대로 변할 땐 평소와 다른 비범한 능력을 보여준다. 이 두 작품은 인간이 가진 가장 오래된 이야기들의 주인공 ‘늑대인간’의 성격을 충실히 계승한다. 달빛을 받고 변신하며, 평범한 인간과는 다른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 말이다. 시대가 바뀌고 만화와 비디오 게임이 탄생해도, 인간을 매료시키는 이야기는 하나밖에 없다는 듯 늑대인간의 전설은 반복되고 반복된다.
늑대인간은 곳곳에서 출몰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기원전 420년경 작품으로, 페르시아 전쟁 같은 동서문명충돌을 기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의 수많은 민족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도 담고 있다. 놀랍게도 이 책의 4권엔 늑대인간에 대한 기록도 있다. “네우로이인은 마법의 힘을 가진 민족 같다. 스키타이인들과 스키타이에 사는 그리스인들에 따르면 모든 네우로이인은 일 년에 한 번씩 며칠간 늑대가 된다. 그러곤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이렇게 변신하는 늑대인간 이야기는 당시 발틱과 게르만 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 나아가 로마는 늑대인간을 그들의 시조로 가진다. 로마의 창시자 로물루스는 늑대 가족의 일원으로, 늑대 젖을 먹고 성장했다.
고대 이래 늑대만큼 인간 정신에 깊이 파고들어 온 동물도 없다. ‘라이칸트로피(lycanthropy)’는 늑대를 뜻하는 그리스어 ‘lykos’와 인간을 뜻하는 ‘anthropos’가 결합한 말이다. 이 말은 문자 그대로 늑대인간을 뜻하며, 또 자신을 늑대로 여기는 정신 장애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런 질환이 가능한 배경에는 인간 정신의 회로처럼 자리 잡은 늑대 변신 신화가 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늑대 변신 신화는 여러 국가와 민족에 퍼져 있는 매우 보편적인 것이다. 늑대는 신이 돼서도 출현하는데, 늑대가 많은 아르카디아에서는 늑대 제우스를 숭배하기도 했다.
인간 정신 깊이 늑대 변신의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면, 현대 정신분석과 철학이 늑대인간을 통해 사상을 전개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먼저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있다. 그의 ‘늑대인간’(김명희 역)은 강박증과 늑대 공포증을 가진 한 러시아 귀족에 대한 수년간의 치료 기록이다. 이 환자는 네 살 때 어떤 꿈을 꾸고부터 늑대 공포증을 앓기 시작했다. 공포와 환상적 아름다움이 교차하는 꿈은 이렇다. 겨울밤 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갑자기 창문이 저절로 열렸고 창밖에 큰 나무가 보였다. 나무에는 하얀 늑대 여러 마리가 앉아 있었다. 늑대들은 큰 꼬리를 가지고 있었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그는 무서워졌는데, 늑대들에게 잡아먹힐까 봐 그랬을 것이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고, 자신이 본 장면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환자는 이 꿈을 당시 보던 동화책 속 늑대 그림과 연결 지었다. 그 동화는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였는데, 동화책엔 늑대가 사람처럼 두 발로 서 있는 삽화가 들어 있었다. 환자는 어린 시절 그 그림이 너무도 무서워 보지 않으려 했으나, 영리한 그의 누나는 꼭 그 그림을 환자가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그를 소스라치게 했다.
동화책의 늑대 그림과 늑대 꿈은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어린 시절 그는 자신이 좋아하던 유모 앞에서 성기를 가지고 놀곤 했다. 유모는 그런 일은 좋지 않고, 그곳에 ‘상처’가 생긴다고 말했다. 성기에 상처가 생긴다는 이 경고는 ‘거세’의 위협에 해당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사건은 그의 아버지와 연관돼 있다. 환자는 늘 커서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할 만큼 아버지를 존경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거세의 위협과 연결돼 있었다. 예컨대 아버지가 산책 중에 지팡이로 뱀을 동강 내 버린 사건이 바로 거세를 상징한다. 거기에다 아버지는 다소 위협적인 면모가 있었다. “내 환자의 아버지는 ‘애정이 넘치는 학대’를 좋아하는 특징이 있었다. …한 번 이상은 이 작은 소년을 얼싸안거나 혹은 소년과 함께 놀다가 놀리느라고 그에게 ‘먹어버린다’고 위협했을 수 있다.” 아버지는 동화 속의 늑대처럼 ‘잡아먹어 버리겠다’고 했고, 유모에게서 발아한 거세의 위협은 늑대처럼 말하는 아버지에게 그대로 옮겨가 버렸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아버지가 늑대와 연관되는 과정이다. 환자는 한 살 반 무렵 부모의 성관계를 목격한다. 또는 목격했다고 상상한다. 이때 아버지는 ‘서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후에 환자가 동화책 삽화 속의 ‘서 있는’ 늑대를 봤을 때 그는 거기서 성관계 중의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곤 거세 위협을 하는 아버지는 늑대의 모습으로 환자의 정신세계 속에 자리 잡았다. 환자의 꿈으로 돌아가 보자.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나무 위의 늑대들은 위협적인 아버지를 상징한다. 그리고 늑대의 꼬리가 탐스러운 이유는 거세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보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가 아버지에 대해 늑대 공포를 가지는 것은, 집단의 차원에서 토테미즘이 형성되는 방식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아이가…아버지 대신 늑대를 무서워한다는 것에는 이상할 것이 없다. 그는 세계에 대한 태도의 발달 단계 중 토테미즘으로 돌아가는 단계에 있었던 것이다.” 집단 차원에서 아버지가 투영된 동물인 늑대는 공포와 숭배를 불러일으키며 토템 신앙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언제 늑대는 등장하는가? 바로 이성의 영역으로부터 ‘추방된 것이 등장하는 방식’이 늑대인간이다. 환자의 이성적 삶 속에서 아버지는 그가 닮고 싶어 하는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런 이성의 영역 속에서 등장할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 거세의 공포로서 아버지의 모습은 꿈속의 늑대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정신분석과는 별개로, 우리는 사회·정치적인 맥락에서도 늑대인간을 발견한다. 늑대는 사회 안에 적합한 자리를 가질 수 없는 자가 등장하는 방식이다. 아감벤이 ‘호모 사케르’(박진우 역)에서 밝히듯, 고대 게르만과 앵글로색슨 법에는 의미심장한 ‘늑대’가 등장한다. 이들의 말로 각각 바르구스(wargus), 베오울프(werwolf)라 불리고, 라틴어로 가를푸스(garulphus), 프랑스어로 루 가루(loup garou)라 불리는 늑대인간이 있다. 고대 법률에서 이 늑대인간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우리는 실마리를 영국의 고해 왕 에드워드의 법률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법률은 사회로부터 추방된 자를 ‘울프스헤드’, 즉 늑대 머리라 부르며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는 추방당한 날부터 늑대의 머리를 뒤집어쓰고 다니며, 그래서 잉글랜드인들은 그를 늑대 머리라 부른다.” 늑대 머리는 말 그대로 늑대 머리를 한 인간, 곧 늑대인간이다. 그는 “반은 인간이고 반은 짐승이며, 반은 도시에 그리고 반은 숲속에 존재하는 잡종 괴물”이다.
저 법조문이 알려주듯 잡종 괴물 늑대인간은 ‘추방’을 통해 생겨난다. “늑대인간의 인간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삶이 바로 추방된 자의 삶인 것이다.” 추방에서 생겨나는 이런 반인반수의 의미를 잘 알려주는 것이 ‘호모 사케르’에서 보듯 마리 드 프랑스의 ‘비스클라브레’다. 12세기에 쓰인 이 작품의 이야기는 이렇다. 왕과 매우 친밀한 사이인 남작이 있었다. 그는 매주 자신의 옷을 돌 아래에 숨기고는 3일 동안 늑대 인간으로 변신해 숲에서 야수의 삶을 살다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간다. 단 인간의 옷을 잃어버린다면 영원히 늑대로 남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남작의 부인과 그녀의 정부(情夫)가 공모해 남작이 벗어둔 옷을 가로채 버린다. 결국 남작은 인간 사회로부터 쫓겨나 늑대로 남게 된다. 그는 야생동물로서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일까? 전혀 반대다. 그는 인간 사회로부터 ‘추방’된 늑대고, 또 완전한 야생이 되지도 못하는 인간이다. 요컨대 남작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비식별 지대 속에 갇혀버린 신세다. 이 이야기는 ‘추방’을 이용하는 통치의 한 근본적인 면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추방’은 인간 사회와 그 사회 구성원을 지배하는 법으로부터 배제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일이 아니다. 추방된 자는 법과 무관해지는 것이 아니라, 법에 의해 버려지는 방식으로 법의 지배를 받는다. 이에 대한 극단적인 예를 우리는 고대 게르만법에 대한 예링의 연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추방령을 받은 자를 재판 없이 그리고 법과 상관없이 죽이는 일이 고대 게르만 사회에서는 명백한 현실이었다.” 늑대 남작도 인간의 법으로부터 방면(放免)됐지만, 바로 이 방면 때문에 살해 위협에 처할 수도 있는 대상이 돼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런 법의 작동방식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늑대인간에게 집중하자. 늑대인간은 합리적인 법적 질서의 바깥 지점에 법의 진실이 있음을 표시한다. 사실 법이란 자신의 명시적인 통치 바깥에서, 즉 법으로부터 추방된 법적 예외의 자리에서 통치한다는 것을 늑대인간은 몸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에게 늑대인간은 이성적 세계 이면의 진실을 가리켜 보이고 있었다. 그러니 늑대 변신 이야기에 대한 동서고금을 막론한 보편적 관심이란, 인간이 자신의 숨겨진 진실을 바라보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다.
서동욱 서강대 철학과 교수
■ 용어설명
늑대인간을 다룬 주요 작품들 : 프로이트의 ‘늑대인간’은 러시아 귀족 세르게이 판케예프에 대한 정신분석 치료의 결과물이다. 환자 자신이 자신의 치료 경험을 책으로 펴내기도 했고, 수많은 연구자가 이 사례를 프로이트와 달리 분석하기도 했다. 아브라함과 토록이 쓴 ‘늑대인간의 마술적 말’이 그 한 예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에 수록된 ‘늑대는 하나인가 여럿인가’는 프로이트의 분석을 정치적 차원에서 비판한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는 추방과 예외를 정치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마리 드 프랑스의 단시(lais)인 ‘비스클라브레’는 본문에서 다룬 이야기 외에 왕과 늑대인간의 동성애 등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영화, 카드 배틀 RPG 게임의 캐릭터 등으로 폭넓게 재생산되고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