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의 500년 역사
골프의 기원은 1500년대 초의 영국 스코틀랜드 중동부 지역인 세인트앤드
루스 양치기 목동들이 잔디위에 홀(구멍)을 만들어 놓고 양털을 뭉쳐 적당
한 작대기로 쳐서 홀에 양털 뭉치를 넣는 놀이가 발전 해 지금의 골프가
되었다 합니다.
그래서 영국이 골프의 종주국이 되었습니다.
1500년대의 양털을 뭉쳐 치던 양털 뭉치에서 많은 사람들이 좀더 멀리
칠 수 있는 공을 만들게 되었는데 [깃털볼]이 만들어 졌습니다.
양털에서 새의 깃털을 뭉쳐서 공 모양으로 만든 후 겉을 실과 가죽으로
꿰매어 만들었고 양털 뭉치보다 좀더 안정적으로 멀리 공을 날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진으로 보아도 공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100% 수제품으로 한
사람이 6시간에 한개 정도 만들었다니 지금의 대량 생산의 공보다 웬지
운치가 있고 나름 멋이 느껴지네요)
1500년 초 영국의 메리 여왕은 남편(국왕)이 사망하고 6일만에 골프를 쳐
구설수에 올랐습니다.(쫌.. 심했죠 완전 골프 중독자...)
메리 여왕의 일화는 골프 구설수의 시초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많은 정치인들도 골프 때문에 옷을 벗은 일화가 있듯이 골프의 매력은
재미를 넘어 중독을 불러 일으키는 스포츠인걸 아는 사람은 이해가
될 것입니다.
1500년대 골프 복장이 예술이네요. 드레스를 입고 공을 치다니 지금과
많이 다르지만 나름 기품이 있습니다.
1754년 최초의 골프장인 세인트앤드리스에 [ The Royal and Ancient ]
골프장이 세워졌습니다
The Royal and Ancient 골프장은 최초의 근현대적 골프장의 기틀을
만들었습니다.
The Royal and Ancient 골프장에서 개최하는 [ The Open ]은 현재 세게
4대 메이져 골프 대회 중 하나로 그 역사와 전통에서 단연 최고로 꼽 힙니다.
스타 골프 선수들의 골프 인생의 로망이기도 한 [ The Open ]의 우승컵은
그 만큼 가치를 인정 받는 대회 이기도 합니다.
처음 문을 열었을때 9홀의 골프코스로 1홀에서 9홀까지 다시 9홀에서
1홀까지 돌아 오는 인코스 아웃코스의 라운딩 개념이 이때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The Royal and Ancient 골프장은 현재는 세인트앤드리스골프장 으로 개명이
되었습니다.
현재의 세인트앤드리스골프장의 모습은 자연을 그대로 살린 원시적인 골프
코스지만 그 옛날 골퍼들의 동선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정말 고궁같은
골프장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돌다리는 많은 골퍼들이 저 다리위에서 기념 사진을 꼭 한번
찍어 보고 싶어하는 유명한 돌 다리입니다.
올해 디 오픈에서 양용은 최경주도 저 돌다리에서 기념 사진을 찍더군요^^
많이 부러웠습니다..
뒤쪽에 보이는 건물이 클럽 하우스인데 박물관 건물같죠..1954년 세계
최초의 클럽 하우스랍니다.
1954년이면 우리나라는 조선 영조시대인데 얼마나 오래된 건물인지
역사와 전통이 대단하죠.
초창기 여성 골퍼의 모습 사진의 복장을 보니 귀족 부인쯤 되는 그런
여성들일 거라 생각이 됩니다.
퍼팅를 하는거 같은데 지금의 퍼터 보다는 지금의 아이언의 모습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초창기 캐디의 사진 입니다.
골프 클럽을 드는 일은 기본이고 잘 못 친공을 찾는일과 망가진 골프 클럽
수선도 캐디의 몫이 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훗날 프로 선수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귀족들이 운동 선수로 나와 돈을 버는걸 천하게 생각하였기에
캐디중에 공을 잘 치는 사람을 골라 뒤에서 내기를 했던게 지금의 프로
골퍼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프로 골퍼들은 스타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지만 그 옛날 프로
골퍼들은 경마에서 뛰는 경주마 쯤 비유 되곤 했습니다.
사람들은 공 잘 치는 캐디 몇을 뽑아 서로 경쟁을 붙여놓고 뒤에서는
와인을 마시며 돈을 걸고 내기를 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래서 캐디들이 클럽 하우스에 들어 오는걸 엄격히 금 하는 클럽
이 많습니다.
물론 위너 골퍼는 도박사들의 뒷돈을 많이 받았죠. 보너스로 그것도 골프
시상금의 원조라 할 수 있겠네요.
1860 캐디 출신인 톰모리스가 유명세를 타며 당시 프로 골퍼중에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사진의 톰모리스는 스타급 프로 골퍼의 시초 쯤 됨니다. 브리티시 오픈을
4번이나 우승을 하면서 신문 기사에 자주 올라오며 영국 골퍼들은 그의
골프 경기를 주목하게 됩니다.
톰모리스는 골프 프로이면서 골프장 관리 설계등 다 방면에서 이름을
날립니다.
골프 역사가들은 그를 전설의 톰모리스라 부릅니다.
세인트앤드리스 골프장 입구에 톰모리스 골프샵 1860년 영업을 시작한
톰 모리스의 골프샵인데 지금이 2010년이니 무려 150년이 되었군요.
톰 모리스는 골프채를 잘 만들기로 소문이 나서 그의 샵에서 최신 골프채를
살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지금의 겔러웨이 / 타이틀리스트 / 나이키 / 혼마...등등 유명 골프채의
원조 쯤 될듯 합니다.
사진은 2010년 디 오픈 경기 당시 나왔던 톰모리스샵 사진입니다.
400년 가까이 써 오던 깃털볼의 시대는 가고 1940년 아프리카 고무를
이용한 [ 구타페르차 볼 ]이 만들어 졌습니다.
고무 원액을 열을 가해 진액으로 만든 후 공 모양의 틀에 넣어 식히면
고무공이 되었다. 이 구타페르차 볼은 당시 깃털볼의 단점을 모두 보안해
주며 2세대 골프공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깃털볼의 단점은 수명이 짧다는것과 수작업으로 시간이 많이 걸려 단가가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데 구타페르차 볼이 나온 후 그런 단점이 모두
해결이 되었고 비거리 또한 깃털볼 보다 멀리 나가게 되었습니다.
1888년 스코트랜드 이주민 존리드가 뉴욕부근 자신의 목장에 3홀짜리 골프장
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1888년은 드디어 미국에 골프가 처음 시작한 해 이기도 하지요 이들은 골프장
중간에 큰 사과 나무를 클럽 하우스 삼아 스카치를 마시며 골프를 쳤습니다.
골프를 모르는 미국인들은 첨 보는 스포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가르켜
"사과나무갱"이라 불렀습니다. (회원중에 깡패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암튼)
이들은 영국식 골프 클럽과 다른 우드3개 아이언3로 구성된 골프 클럽을
사용하였습니다.
영국의 딱딱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인 아주 편안한 골프를 즐겼습니다.
훗날 미국 역사가들은 존리드를 " 미국골프의아버지" 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골프장은 엄격한 복장 규제가 있었습니다. 트위드 코트 / 넥타이 /
정장바지 이런 복장을 가추지 못하면 골프장에 못 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더 강한 샷을 위해 현실적인 복장으로 시작을 하였죠..헐렁한
바지 편안한 스웨터 긴 양말속에 바지 아랫단을 넣었습니다.(모 심는 복장..)
사진에서 초기 미국의 골퍼는 작업복 복장에 가까운 골프 복장인걸 볼 수
있습니다.
1890년 미국은 막대한 자본을 축척한 신흥 부자들이 대거 등장을 합니다.
그들은 골프 발전을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합니다. 록펠러 카네기도 골프 광
으로 미국 최고의 부자였던 록펠러는 자신의 집 마당에 9홀의 골프 코스
를 만들었습니다.
사진은 록펠러의 아이언샷 장면 입니다. 록펠러는 고질적은 왼발 오픈과
헤드업이 문제 였지만 수행원을 시켜 한명씩 왼발 머리 잡으라고 공을 칠
때마다 뒤에서 외치게 했습니다....( 사장님 왼발 머리 잡으세요~~ㅋ~!)
지금도 변하지 않는 왼발 오픈과 헤드업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 하네요...
1892년 스코틀랜드 신흥부자 벤더밀턴이 여러 부자들과 함께 쉬네콕 인디언
들의 땅을 매입해 쉬네콕 필드 골프장을 만들게 됩니다.
미국 최초의 현대적 골프장으로 롱 아일랜드를 따라 그린 주위에는 블루베리
나무를 심어 당대 세계 최상의 골프장을 미국이 건설하게 됩니다.
막대한 자본과 기술이 받침이 된 미국의 골프는 종주국인 영국을 위협하며
점차 영국과 미국으로 양분화 되는 상황이 만들어 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쉬네콕 골프장의 의미는 크다 생각이 됩니다.
1896년 미국은 산업 혁명을 맞이하며 모든 기술에서 비약적 발전을 합니다.
골프채 기술도 영국의 골프채 기술 만큼 발전을 하였고, 새로운 3세대 골프
공이 탄생 합니다.
골프광 코번 헤스컬이 우연히 고무줄을 말아서 공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을
했죠 그는 고무줄을 말아 그 위에 고무액을 씌워 새로운 [고무코어볼]을
만들게 됩니다
고무코어볼은 일반 고무볼 보다 덜 단단하였지만 부드러우면서 뛰어난 반
발력이 있었습니다.
부드러운 반발력은 안전적인 비거리 향상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고무 코어볼이 탄생 된 후 미국에서는 고무공 보다 부드러운 코어볼을 제어
하기위해 아이언에 흠집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아이언과는 좀 달라도 사진에 보이는 흠집을 이용해 스핀을 주었던거
같습니다.
초창기 골프 클럽의 샤프트는 나무로 만들어 졌군요 당구채 비슷하네요ㅎ
미국은 초창기 아이언3개 우드3개로 쳤던 골프에서 1900년 과학의 발전으로
클럽 페이스의 각도와 샤프트의 길이를 나누어 총 30개의 골프채로 세분화
시켰습니다.
사진의 큼지막한 우드로 공을 치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합니다.
400년을 넘게 골프에서 [ Tee ]란 말이 없었고 물과 모래를 뭉쳐서 골퍼가
드라이버를 치기전 즉석에서 반죽한 모래위에 놓고 공을 쳤습니다.
골프장마다 티존에는 두개의 양동이에 물과 모래가 있었습니다.
골퍼는 자기에 맞는 모래 반죽을 만들어 사용을 했다 합니다.
1900년대로 넘어 오면서 모래 반죽은 없어지고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나무티가 만들어 지게 되었습니다.
관심없이 보았던 나무티도 깊은 히스토리가 있었네요.
각 홀에서 언더 파가 새의 이름으로 만들어 지게 된 유래는 1900년 초
어느날 조지크럼프란 사람이 공을 쳤는데 지나가던 새를 맞고 홀컵 바로
옆에 떨어져서라 하는데 당시 아이언의 구조상 스핀을 먹여 홀컵에 정지
시키는 일은 매우 어려웠을 생각이 듭니다.
1언더파는 버디 2언더파는 노블버디에서 이글로 3언더파는 더블버디에서
알바트로스(신천옹과의 바다제비) 바뀌게 되었습니다.
모두 새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첫댓글 네 정보 감사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