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암리에서 야마구치, 싸리밭골까지
이정환
1.
여든 여섯 누님 집은 아래채만 남아서
홀로 기거하며 봄을 다시 맞는다
산밭에 볕살이 내린 이월 늦은 날에
지팡이를 짚어야 길을 나설 수 있는
싸리밭골 누님은 야마구치 떠올리며
현해탄 건너지 못한 아버지를 그린다
2.
오미네에 묻어놓은 꿈은 몹시 검어서
불길이 닿지 못한 그 꿈 여태 검어서
아버지 현해탄 건너 시모노세키로 향한다
학암리를 등지고 죽어서도 살아나서
월순 유순 승자 업고 다시 찾은 야마구치
검은 꿈 불 지르기 위해 오미네에 닿는다
* 학암리: 경북 군위군 삼국유사면 삼국유사로 ‘신비의 소나무’가 있는 고향마을.
* 야마구치: 오미네(大嶺) 광산이 있는 현 이름이다. 아버지는 오미네 광산에서 1937년부터 여러 해 동안 광부로 일했다. 나중에는 십장이 되었다. 1940년 어머니는 세 살 된 월순 누님과 부산에서 연락선을 타고 야마구치 현으로 아버지를 찾으러 갔고, 그 후 둘째 셋째 누님이 그곳에서 출생했다. 해방 되던 해인 1945년 가을에 귀국하여 고향 땅을 다시 밟았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어찌 야마구치 오미네 광산 탄부 시절을 한시인들 잊었으랴?
* 싸리밭골: 월순 누님이 살고 있는 경북 군위군 삼국유사면 낙전동 산꼭대기 마을.
《시조시학》2023.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