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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완 시모음
성기완 시인
1967년 서울 출생. 서울대 대학원 불어불문학 박사과정 수료. 1994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쇼핑 갔다 오십니까』『유리 이야기』『당신의 텍스트』. 산문집『장밋빛 도살장 풍경』『홍대앞 새벽 세 시』 『모듈』, 번역 『아스테릭스』시리즈,『히피와 반문화』, 솔로 앨범「나무가 되는 법」「당신의 노래」등을 가진 음악가로서의 성기완은
록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의 리더였으며 SSAP 프로젝트로 활동하며 뮤지션이자 라디오 DJ, 문화평론가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솔로 앨범 [나무가 되는 법]. [당신의 노래] [ㄹ] 등을 발표했다. 2015년 김헌문학패를 수상했다.
날티 - 푸슈킨, 릴케, etc. / 성기완
단지 생활을 이유로 그대가 남들을 속일지라도
생활은 여전히 그대를 속일지니
슬퍼하지는 말고
그대와 전혀 상관없는 별이 저 높이 빛날지라도
그 별은 그대처럼 정해진 별자리에 붙들려
수억년을 공전하고 있을지니
슬퍼하지는 말고
묘비에 쓰여진 "장미여!"가 권태롭게 뛰는
그대의 맥박보다 더 붉을지라도
손목을 꾾지는 말고
여전히 묘비는 손톱만큼도 표정을 바꾸지 않을지니
슬퍼하지는 말고
새벽 두 시의 편의점에서 황토색 국물을 마시며
바글바글 붐비는 인파의 눈초리, 눈초리
그들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일지니
여전히 슬퍼하지는 말고
오늘의 메뉴 / 성기완
오늘 점심엔 뭘 드실 건가요?
카레까스 정식 아니면
나를 드세요
내 살은 포동포동
내 뼈는 아닥아닥
저녁으로는 내 맘을 드세요
사주실 건가요?
야 신난다
우리 둘이 방실방실
저 달처럼 살쪄요
서로서로
먹고
먹여주고
내가 준 영양분으로 니가 토실토실
니가 준 영양분으로 내가 오동통
서로의 밥으로 서로가 예뻐져요
늦지 않았고 기다린 건 사실이에요
당신이 좋아하는 날씨를 나도 좋아해야지
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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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텍스트 6─수신확인 / 성기완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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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확인 2007-10-26 13:50
헤어졌습니다
당신의 텍스트 1
-사랑하는 당신께
성기완(1967~ )
당신의 텍스트는 나의 텍스트
나의 텍스트는 당신의 텍스트
당신의 텍스트는 텍스트의 나
나의 당신의 텍스트는 텍스트
나의 텍스트는 텍스트의 당신
텍스트의 당신은 텍스트의 나
당신의 나는 텍스트의 텍스트
텍스트의 나는 텍스트의 당신
당신의 나의 텍스트는 텍스트
나의 당신은 텍스트의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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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책은 나를 온통 사로잡은 책. 나라는 책은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바로 그 책. 그러나 당신이라는 책은 책으로서만 내 것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라는 책은 절대적인 책. 내가 읽는 책은 오직 책이라는 이름의 당신. 책에 든 당신은 그것을 읽는 바로 나. 당신에게 속한 나는 책 속의 책, 이를테면 각주와 같은 것. 책에 사로잡힌 나는 책에서 당신의 흔적만을 좇을 뿐. 그러나 당신에게 속한 나라는 책은 한갓 책일 뿐.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책 가운데 으뜸인 책인 것과 같이. 사랑은 강박. 사랑은 당신과 나 사이에서 펼쳐지는 모든 일. 혹은 그것의 기록. 당신을 다 읽고 나서, 내게는 군데군데 접히고 밑줄 쳐진 낡은 책 하나가 남았다.
권혁웅 (시인)
당신의 텍스트 6
—수신확인
성기완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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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확인 2007-10-26 13:50
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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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쁜 사람입니다. 당신에게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한 줄 한 줄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마음을 적었습니다. 메일의 전송키를 눌렀을 때 나는 마음이 홀가분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당신의 답장이 오기를 내내 기다립니다. 당신은 내 메일을 보았나요? 한 시간 후 수신확인을 해보니 당신은 아직 열어보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확인안함. 한 주 두 주 세 주 네 주 확인안함. 드디어 확인했군요. 그러나 당신은 답장하지 않습니다. 결코 그럴 수 없노라는 당신의 거절을 나는 기다립니다. 롤랑 바르트는 말했어요.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이별의 순간까지 나를 기다리게 하고 헤어진 뒤에도 영원히 기다리게 하는군요. 당신은 정말 나쁜 사람입니다.(진은영 시인)
ㄹ / 성기완
도르레 가리비 너러바위 라르고
괜스레 나란히 부리나케 사르고
너스레 가랑잎 대구지리 쓰리고
콘트랄토 리비도 아무르 아름다운
알레그로 이리도 쿠랑트 사라방드
살어리 어리랏다 리랏다
이러쳐 우렁남친 뎌러쳐
어강됴리 비취오시라
다롱디리 드리오리다
동동다리 뿌리오리다
시리잇고 욜세라
아랫꽃섬 녀러신
흘리오리다
꼭그렇진않
얄라리얄라
어름우희댓닙자리
구름나라로맨티카
더듸새오시라
졸라마시리라
러둥셩
링디리
두어렁셩 괴시란대 아즐가
도란도란 크레이지 날라리
노래불러 우러곰
사랑살이 잠깐새리
주물러라 다리좀
딩아돌아 더러둥셩
떼끼에로 알러뷰
래일이또 업스랴
민들레 도라지 바리바리 드리고
발그레 다랑어 부리부리 슈르고
물푸레 미란다 소리소리 지르고
말랑말랑 발랑발랑
찰랑찰랑 살랑살랑
다롱디우셔 마득사리
렌토보다 더느리게
리드미컬 멜로디컬
이렁구러 아련했
년뫼랄 거로리
아련했
아련했
사랑
사랑
리을
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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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시 속에 ‘ㄹ’이 소나기처럼 많이 등장하네요. ‘ㄹ'이 주인공인 시입니다. 빗소리처럼 아련한 리을……. 사랑해 사랑해요 사랑한다니까요 사랑해줘요 사랑밖에 난 몰라요! 울고 웃는 리을의 목소리. 리을의 음악. 리을의 다르마(法). 허공에 슝슝 날아다니는 리을의 빨주노초파남보. 리을들의 사랑과 이별. 리을들의 청춘과 노쇠. 리을들의 맥박과 부정맥. 리을들의 당뇨병과 티눈. 티눈조차도 당신을 사랑해요. 중독된 사랑의 황홀과 쓸쓸함. 리을을 따라 달리는 리을의 욕망이 울다 지친 음악으로 거리에 흘러요. 당신은 리을을 만났나요. 사랑이…… 그렇게…… 당신을 관통했나요. 사랑 따위라고요? 사랑에…… 관통당해 본 적 없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요…… 라고, 리을이 묻네요, 리을의 이미지들이 낄낄거리네요.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정말로 듣고 싶은 게 시이기도 하거든요. 가끔은 이렇게 놀아줘야 자음과 모음들이 신선해지거든요.(김선우 시인)
빗속에서내옆을달리는마야코프스키 / 성기완
하얀물보라를달고비오는고속도로를전속력으로달리는
빨간마야코프스키
마야코프스키는진정한물보라진정한불꽃이었다
진정한정신의질주
진정한은유의폭죽
진정한절망의혁명
타성을뒤집는전위
모래바람영하60도
진정한죽음의질타
빨간마야코프스키
무의식의총알
간판들의과녁
시의정수리
피
잠 / 성기완
누워있는인형이사람같아보이는것은
눈을뜨고있기때문이고
누워있는사람이시체같아보이는것은
눈을감고있어서다
실로그는자고있다
죽음은문밖의잠이고
잠은문을열지않은죽음이다
기억할수있는꿈은생활의거울이고
기억할수없는꿈은죽음의그림자다
흩어지는구름에서찰랑이는소리가나는것은
몸과마음이삶과죽음처럼
믿음과배반이사랑과증오처럼
노력과방탕이뼈와살처럼
오해와이해가피고름처럼
욕설과교성이타이어와콘돔처럼
이것과저것이모든것과nothing처럼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수갑을차고동행하는형사와죄수의운명은
장가방과아랑드롱의그것처럼결국같아진다
사람의옷은동물의거죽보다단연코보잘것없다
다다다단연코
강아지에게시달린양인형은진짜양처럼온순하다
인기척을느끼고개가벌떡일어나면
공기는그냄새를맡고도망질을친다
공기는고양이처럼쉬고있었던거다
개가연방드센기세로어둠을향해짖는이유는
달아난공기를추구하기 때문이다
내가내됨됨이와관계없이시인인이유는
니가시인이아니기 때문이다
단지니가
나의이유다
황혼, 멱라수 / 성기완
1
안녕, 은빛 강물
다발로 엮여 흘러가던
금빛 머리칼
니 속으로 뛰어들어가 적시던 내 몸
황혼의 둑에 말리고
나는 너를 그리며
붉게 잊으리
밤이 시작되면
그렇게 노랠 부르리
2
종이학 모양의 꽃이 핀
죽음의 세계
긴 휘장 두 장이 은하수를 타고 내려와
노을 가득한 강물에 다리를 적셔
향기가 나고
그 향기를 돛 삼아 떠나는 사람
오 기쁜 탄식이여
즐거운 비가여
널 보고 싶어 하고 싶지 않다
너의 표정은
멜로디처럼 지척에 있는데
반짝이는 별들 속엔
눈물이 출렁
술 달린 장식들과 하얀
살을
꿈꿔도 되니
————
* 멱라수(汨羅水) :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미수이 강’을 이르던 말. 중국 초나라의 굴원이 투신한 강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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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완의 시는 제도화된 언어의 성(城)을 내부에서 무너뜨리려는 잡음이 새로운 리듬과 화음과 선율로 거듭나는 순간을 꿈꾼다. 불협화음의 충돌이 이 세상에 없는 음악을 예고하듯, 기존의 말이 비틀리고 뭉개지고 엇갈려 반죽되는 소란한 난장. 그 속에서 기묘하고도 강렬한 감각의 진동은 그의 시를 불현듯 기묘하지만 아름다운 노래로 밀어 올린다.
성기완은 일상적 금기를 뛰어넘는 이질적 상상과 이단적 시선으로 거침없는 파격과 모험을 주저 않는 시인이다. 그의 또 다른 변신을 엿볼 수 있는 [당신의 텍스트]의 화두는 사랑이다. 인간사의 영원한 고민거리이자 해답 없는 질문인 사랑을 이야기한 이 시집은, 그러나, 여성적 화자의 숙명적 슬픔에 익숙한 이들의 기대를 단번에 배반한다. 그의 사랑 노래는 ‘세상 밖의 남자’가 되어 남성적인 것의 바깥에서 사랑의 진부함과 통속성을 날것의 형태로 분해한다. 내밀한 욕망의 판타지가 몽롱한 리듬을 따르는 무의식의 풍경으로 대체되면서 사랑을 둘러싼 낭만적 신화는 해체된다. 남는 것은, 추하고 더럽지만 그것 없인 애초부터 불가능한 사랑의 육체, 육체의 사랑이다.
‘황혼, 멱라수’는 그러한 사랑의 정체가 소멸을 운명으로 한다고 고백한다. ‘너’라는 존재로 뛰어든 ‘나’의 사라짐, 그런 ‘나’를 안고 떠나가는 ‘너’의 부재는 사랑을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랑으로 증명하고 확증한다. 그 사랑의 남김 없는 소진이란 결국 죽음으로의 투신이자 치명적 도약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애도한다. 죽음의 세계로 건너는 일의 위험과 쾌락을 “오 기쁜 탄식이여/즐거운 비가여”라고. 사랑의 한복판을 흐를 때는 사랑의 바깥도 없고 사랑 아닌 것도 없다. ‘너’를 그리워하고 싶지 않은 ‘나’의 바람은 멱라수 속에 잠겨 있고, 되풀이되는 황혼의 시간을 따라 기억의 물길은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것은 지척을 떠도는 ‘너’라는 멜로디의 공간이기도 하다. ‘나’는 그곳에서 벗어나야 할까? 죽음과 소멸이 두렵다면, 사랑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는 역설이다. ‘세상 밖의 남자’가 되려는 ‘나’의 욕구는, 그러므로 사랑을 생성하고 실현하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이다.
- 강계숙 / 문학평론가, 계간 <문학과사회> 편집위원
나뭇잎과나 / 성기완
나뭇잎과나사이에
젖은머리바람결네온이
떨리듯사인을건네요
후드득
우리사인지나가는사이인걸
이처럼친한연둣빛우정인걸
우산들은즐겁게떠들고
물은모두를비추며흘러
다니면서실이되고
실풀리면길이되고
길이되면언제그랬냐는듯
당연해지고
눈물이나고
밤은검은턱시도를입고
젠틀하게언어를아끼며
음악을감상해요
미스터밋나잇은
모든취미의애호가
영원의목젖으로
낮게흥얼거려요
미소띤그입술
나뭇잎과나사이에
젖은초록춤을추고
외로움이오고가요
우리
사랑해요
지금만큼만
딱지금만큼만
게으른기타리스트 / 성기완
나는흥얼거렸지
배위에기타를얹고
귓가에떠오르는
오래된노래를
나는 노래하며
어떤여행을떠올렸다네
여기에서저기가아니라
지금에서어느때로
아주먼옛날로
어쩌면영원으로
볕좋은겨울
오후였네
장독대의항아리들은
눈이부셔도말이없고
배안에서사각사각
김치가익어가는날
언땅을덮은눈물은
반짝이며사라지네
어린눈동자가바라보았지
저빠른빛은어디로가는지
나는기타치네
시간의배위에누워
눈을감고영원을보네
할머니할아버지아버지
모두참하게머리를빗고
살도없이포동포동하시네
내머리를쓰다듬어주시니
마음의마당이부풀어올라
무한한들판이되네
나는기타가되네
기타를만든나무가되네
그나무밑의이파리를
질겅질겅씹으며
소가되어앉아있지
바람이속눈썹을스쳐
서늘한꿈속에서눈을뜨네
푸르른언덕이었네
젖을마시고행복하여
끝없이노래하네
엄마 우주 / 성기완 (1967~)
이름을 내던질 때
엄마는 우주가 된다
엄마 우주
자아 순도 0kgf
엄마라는 이름 없음
Mother Universe
안아주고 싶을 때
우주는 엄마가 된다
우주 엄마
저항 0Ω
우주라는 저항 없음
AΩ Universe
―시집 『빛과 이름』20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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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엄마가 되기란 쉽지 않다. 본의 아니게 아이의 냄새, 웃음 소리, 종알거리는 목소리로 대가를 받아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엄마로 살기는 쉽지 않다. 엄마의 기준은 ‘좋은 엄마’ 혹은 ‘훌륭한 엄마’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보통의 엄마들은 죄책감과 부채감에 시달리게 된다. 최선을 다해도 만족스러운 엄마가 되기란 쉽지 않다.
얼마 전 수백 명의 엄마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 함께 있었다. 본능적으로 다정하고 아기를 보면 눈을 빛내는 집단이었다. 우리에게는 이름이 없었고 그저 누구 엄마로만 존재했는데 본명을 잃은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싫지 않았고 나쁘지 않았다. 그걸 정확히 표현하는 시가 있어 소개한다.
시인의 말처럼 엄마는 자기 이름을 내던지고 엄마가 된다. 그런 엄마에게 자기 자신은 없고, 중요하지 않고, 중요할 수 없다. 나를 비워 아이를 채운다. 이런 엄마를 우주가 안아주면 좋겠다. 저항값이 전혀 없이, 엄마 우주를 우주 엄마가 좀 도와주면 좋겠다. 물론 우리가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