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살이에서 나타나는 커다란 모순 중의 하나가 영원한 게 그 어디에도 없는 데 계속 갈망하며 사는 일일 것이다. 이렇게 실체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여기고 살고 있으니, 세상은 실망과 아쉬움이 차고 넘친다. 흔히 사용되는 영원이란 말은 제가 바라는 길이만큼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한결 수월할 터인데, 영원에는 늘 지나친 욕망이 따라붙으니 탈이다.
인류가 암만 영원토록 살고 싶어도 실상 100년을 채우기도 힘들다. 남녀가 영원한 사랑을 날마다 노래하고 살아봐도, 둘 중 하나가 배신하거나 병이나 사고로 일찍 죽으면, 별수 없이 눈앞의 사랑은 끝나야 한다. 내 자신도 청소년 시절에 아름다운 첫사랑 소녀를 만나 영원한 사랑을 이룰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지만, 채 3년이 지나지 않아 그 소녀는 돌연 언니 찾아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서울에 있는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나는 한참 뒤에야 그 소식을 알게 되었지만 어떤 대응 방안도 찾을 수가 없어 ‘서로 주고받은 사랑의 약속’을 되뇌며 한동안 아파했었다.
또 내가 1987년에 첫 수필집을 내었는데, 책의 수명이 적어도 내 살아생전까지는 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10년쯤 지나고 나니 어느 누구도 손톱만큼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나의 소망이 지인들의 마음속에도 함께 하리라는 엉뚱한 착각이 나를 실망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후 나는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수필 작업을 할 때마다 채찍으로 삼고 있지만, 아직도 결과에는 자신이 없다.
또 돈이 많은 사람이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아무리 소원해도 대를 이어 돈이나 권력이 잘 이어져 주지 않는다. 예부터‘부자(富者) 3대를 넘길 수 없다’라든지,‘권불 10년’이란 금언도 이래서 생겨나지 않았겠는가? 누가 높은 자리에 앉았다 할지라도 시절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면, 다음 대(代)는커녕 당대에서도 곤궁한 처지에 놓일 수 있는 것이 인생살이다.
우리 가요의 가사에도 영원이란 말이 자주 나오고, 사랑하는 사람끼리도 영원이란 말은 최상의 처방으로 쓰이고 있다. 굳은 약속을 서로 나눌 때도 영원을 맹세하고, 제 묘소(墓所)도 영원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노인이 된 나 역시 영원을 생각하면 명치끝이 아려온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오면서 영원을 기원한 게 한 둘이 아니건만, 세월이 한참 흐르니 되려 소원하던 대상은 실제에서 사라져버리고, 오직 바라던 영원만 외롭게 남았기 때문이다. 하여 혼자 남은 영원을 끝까지 지켜 작은 위안이라도 삼아야겠다.
더하여 근래 나는 시간에 대한 생각도 고쳐먹고, 영원을 갈구하던 욕망도 스스로 다스리려 애쓰고 있다. 따져보면 인류가 매달리고 있는 시간이란 존재도 절대적인 기준은 못 된다는 생각이다. 천문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어떤 별에서의 하루는 지구상의 1년에 해당되고, 또 다른 별에서는 10년이 넘는 것도 있다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시간은 절대성을 지닌 게 아니고 상대적 개념이라는 결론에 닿는다. 인류가 사용하는 시간이란 게 단지 지구인들끼리만 통용되는 약속에 불과한 것이다.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동 식물들도 꼭 우리처럼 시간을 재어가며 사는 것도 아니다. 심해나 깊은 동굴 속에 사는 생물들은 아예 시간관념도 없겠지만, 그래도 저들 나름 잘 살아간다.
결국 시간이란 제가 인식하고 지킬 수 있을 때만 의미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런 시간의 속성을 감안하면 천지간 어디서나 공통적으로 통할 수 있는 시간은 제가 살아서 숨 쉬고 있는 지금이란 시간뿐이다. 오직 지금만이 현실적 시간인 반면, 과거나 미래의 시간들은 기억이나 상상 속에 있는 시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몸은 지금에 있지만 마음은 가상의 시간 위에 가있다면, 진정한 지금을 살 수가 없을 것이다. 가장 빼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 해도 어제와 오늘을 함께 살 수도 없고, 오늘과 내일을 같이 살지도 못한다. 모두가 현재를 살고, 지금을 살 뿐이다. 하여 잘 살아낸 순간은 다음 순간으로 순조롭게 이어지고, 그 순간은 또 다음 순간으로 죽 이어져 나갈 것이 확실하다. 이렇게 계속 이어지면 지금이 곧 영원에 가닿지 않겠는가?
내가 영원이란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쓰여온 표현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해줘도, 굳이 영원을 내세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어찌할까? 지금을 어떻게 사느냐가 바로 영원으로 통하는 문이 될 것이라고 충고하고 싶다.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영원을 기약한다면 진짜로 웃기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가족 사랑도 바로 하고, 이웃 사랑도 지금 하면 된다. 봉사를 하고 싶어도 오늘하고, 기부를 하고 싶으면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 한다. 열심히 일하려면 현재 열심히 하면 되고, 운동을 하려면 당장 시작해야 한다. 최선을 다하는 지금은 영원의 또 다른 이름이다.
(김상립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