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나물 양지머리 맑은 탕
오늘 아침, 밥을 먹은 지 두어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문득 국물이 먹고 싶다.
초가지붕 아래 아홉 식구가 살던 시절이었다. 막걸리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아침 밥상이 올라오기 전에 먼저 국물 한 그릇을 달라고 부엌에 이르시고, 어제 남은 막걸리도 한 잔 곁들이셨다. 그 모습이 지금도 마치 함께 생활하고 계신 듯 눈에 선하다.
집 담장이나 지붕 위에는 박 넝쿨이 올라가 있었다. 박이 크면 타서 단단한 부분은 박아지로 쓰고, 연한 박속은 썰어 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했다.
못살던 그 시절엔 초장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었다.
박아지로 쓸 박속은 조금 알싸했지만, 어린 나에게는 그 맛이 참 좋았다. 소박하고 입맛을 당기는 별미였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고향에서는 가끔 누이와 질녀가 합작해서 직접 담근 장아치 몇 가지를 종이상자로 한가득 보내주곤 했다. 거기에 푸른빛이 남아 있는 아담한 식용 박도 두 개씩 넣어 보내왔다. 상자를 열면 고향 냄새와 누이와 질녀의 정까지 함께 따라왔다.
국물을 싫어하는 아내는 박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국물을 좋아하는 나는 혼자 박 껍질을 벗기고 얇게 썰었다. 양지머리를 한참 끓인 국물에 박속을 넣고 마늘과 파를 조금 넣은 뒤 조선간장으로 간을 했다.
보글보글 끓여 한 숟가락 떠먹으니,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시던 알싸한 박속의 맛보다 오히려 더 깊고 구수하고 시원했다.
그때 그 이야기를 글로 썼더니, 남작가 친구가 “김유정의 글처럼 소박한 시골 냄새가 난다”고 칭찬했던 기억도 난다.
내일은 삼산동 농수산물시장에 들러 식용 박 하나를 찾아봐야겠다. 양지머리도 준비해 맑은 국을 한 냄비 끓여 볼 작정이다.
국 한 숟가락에 어린 시절 고향의 맛까지 함께 떠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