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전화 한 통 없는 조용한 명절이었습니다.
마음 한켠에는 처한 명절 분위기에 대한 약간의 우울감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낸 어제 국군의 날 저녁, 잠자리에 들 무렵 전화가 왔습니다.
밤 9시 56분.
“형님, 세이브존 근처에 왔어요. 5분이면 갑니다.”
급히 옷을 챙겨 내려가니 벌써 와 있었습니다.
아마 나를 서두르게 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말했던 모양입니다.
지팡이를 짚은 내 손을 다정하게 잡아주고 어깨동무까지 해줍니다.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할 수 없는 손길이었습니다.
차 안에서 추석은 잘 보냈느냐며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새해 초에는 지금 사는 아파트를 정리하고, 30년 넘게 만나온 두 친구가 사는 동네로 이사해 아내와 남은 노후를 설계하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의 희망찬 이야기가 나도 기뻤습니다.
그런데 헤어질 때 또 봉투 하나를 내 손에 쥐여줍니다.
팔순 생일이었던 정월에 이어… 또.
“형님, 절대 부담 갖지 마세요. 필요한 데 쓰시고, 약주나 차 한잔 하세요.”
이제 곧 열 번째가 됩니다.
80대 중반과 90대 중반인 두 형님께도 명절마다, 또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잊지 않고 인사를 전한다고 했습니다.
차가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구름 위에 떠 있는 사람처럼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천천히 지팡이에 의지해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생각해 보니 명절이란 조상과 자손을 찾아보는 날만은 아닌가 봅니다.
명절이 지난 일주일 뒤, 어둠이 깔린 저녁에
사랑의 마음으로 나를 찾아와 준 사람.
내게는 귀인 그 이상이었습니다.
봉투보다 귀한 사랑과 존경까지 함께 찾아준 것 같아서입니다.
이 얼마나 큰 또 하나의 명절의 의미일까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던 추석이었는데,
이 귀인이 찾아와 준 마음 하나가
이토록 가슴 벅차게 남습니다.
올해 추석도 이만하면 아주 잘 쇠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습니다.
자기 마음만 알아달라는 이 동생의 진심을 알면서도
나는 왜 이리 가슴이 벅찬지 모르겠습니다.
매년 두 큰 명절마다 20만 원씩이라니…….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
그리고 이 동생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요?
제게 가르쳐 주소서.
제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