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로운 외투가 되어 간다. 가만히 서 있어도 외투가 되어 가는 사람의 외투를 벗긴다고 달라지는 사정은 없다. 외투는 벗어도 외투니까. 외투는 입어도 외투가 되어 걸어간다. 어디로 가십니까? 외투는 외투가 되어버린 사람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세로 서 있다. 물론 말은 없다. 필요없거나 소용없는 말을 하려고 외투가 대신 서 있어 주는 것은 아니니까. 한 번 더 질문할 필요도 소용도 없는 외투 앞에서 외롭고 차가운 외투가 되어 서 있었다.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 계절이 바뀌고 있다. 겨울이었는데 봄이었고 여름을 지나고 있었고 가을이 지나고 있었다. 겨울이었는데 겨울이 되어서야 외투는 서 있는 것을 멈추고 서 있는 외투에게 이제 그만 갈까 하는 자세를 취해 보였다. 그것은 부드러운 권유 같아 보였으나 거부할 수 없는 외투를 껴입고 있는 사람의 외투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외투는 외투의 뜻을 따른다. 외투는 외투가 가자는 대로 가고 있다. 저곳이 겨울이라면 아직도 겨울인 곳으로 더 갈 수 있다. 외투는 움직이는 데 불편함이 없다. 없어야 한다. 없을 때까지 외투는 외투의 형상만 유지해 주면 된다. 그 안에 어떤 사람이 들어가서 녹더라도.
첫댓글 이종숙 이사님, 좋은 시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