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수돗물을 먹기 시작한 지가 100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세월 동안 수돗물의 장점인 깨끗함과 안정성에 대한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지금 대다수의 시민들이 값비싼 '생수'를 사 먹고 있는 실정에, 서울시에서는 수돗물의 안정성을 홍보하기 위해 페트병에 수돗물을 담아 '아리수'라는 이름으로 판매도 하고 있다.
수돗물에 대한 나의 기억은 또렷하다.
한국전쟁 후 혼란하던 시대에 동네에 몇 개밖에 없는 공동수도가 있었다.
물 한 지게에 얼마, 아니면 월별로 물값을 미리 지불하고 우리는 그 물을 길어다 먹었다.
길게 늘어선 양동이 줄이 진풍경이었다.
급수 시각이 들쑥날쑥했기에 양동이만 갖다놓고 집에 간 사람이 많았던 때, 그래도 물이 나오면 누구든 차례대로 물을 받아주는 인심이 있었다.
물을 받을 땐 꼭 양동이를 헹궈내고 물을 받아야 한다.
그동안 쌓인 먼지 때문이다.
주인 없는 양동이도 누군가 주인을 대신해서 그렇게 했다.
어린 나도 남의 양동이를 곧잘 헹궈주곤 했는데, 이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한 할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하신 칭찬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열 살 무렵이었던 듯하다.
"참 착하구나, 학교 선생님께 상(賞) 주라 해야겠다"
수돗물은 먹는 물로만 썼고 생활용수는 우물물을 사용했다.
집집마다 마당 한쪽에 우물이 있던 시절이었다.
우물물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며 맛도 좋았다.
이런 시절을 살았으니, 수돗물이 귀하다는 것이 일찍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
정릉 꼭대기 10평짜리 서민 아파트에 살다 그 후 평지의 조그만 주택으로 이사하고, 다시 방배동에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40년쯤 전이다.
마당에는 잔디를, 집 둘레에는 나무를 심어 철마다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집으로 가꾸면서 우리 집에 대한 애정이 한껏 고조된 때였다.
그런데 한가지 나쁜 점이 있었다. 수도였다.
지금은 방배동이 부촌이지만, 40년 전에는 모든 것이 불편한 신도시였다.
비가 오면 물웅덩이가 생기고 신발은 진흙투성이가 되었고, 집도 겨우 띄엄띄엄 한 채씩 들어서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점이 낮에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한밤중에 아기 오줌 줄기처럼 가늘게 졸졸거리다가 그마저도 여러 집에서 동시에 수돗물을 받기 시작하면, 정을 똑 떼고 가버리는 야멸찬 사람처럼 미련만 남기고 끊어졌다.
잠을 설치며 받아야 했던 수돗물, 식수도 안되게 나오는 수도를 어찌 수도라 할 수 있겠는가?
생활용수는 모두 마당에 있는 펌프 물을 사용했으나, 깊게 묻지 않은 펌프 물은 쓰면서도 께름칙했다.
새로운 시가지나 주택지를 조성하려면 먼저 토목공사와 기본 상하수도 시설부터 해놓은 다음에 건축 허가를 내주고 집을 짓게 하는 것이 순서인데 제대로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밤잠을 못 자며 받은 수돗물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물 한 바가지 떠내려면 손이 떨렸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이렇게 고생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수도 사정은 곧 좋아졌고 24시간 언제든지 수도꼭지만 틀면 맑은 물이 쏟아졌다.
이렇게 우리 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궁핍을 겪어봤기에 그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우리와는 달리, 요즘 젊은 사람들은 풍요 속에서 무엇이나 귀한 줄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물 쓰듯 한다'라는 말처럼 특히 물을 너무 헤프게 쓰고 있다.
자연 상태의 물이 수도관을 통해 우리 가정에 오기까지는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내 돈 내고 내가 쓰는 것이라고 큰소리칠지 몰라도, 수돗물은 우리 모두의 것인 나라의 공공재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되어 있다.
아직 절실하게 와 닿지 않아서 그런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을 아주 헤프게 쓰고 있다.
세면대에 물을 먼저 틀어놓고 손이나 얼굴에 비누질하는 순간에도 아깝고 귀중한 물은 쉬지 않고 흘러 버려진다.
개수대에서 설거지할 때도 흐르는 물보다 그릇에 받아서 하면 많은 양의 물을 아낄 수 있다.
공중목욕탕에서의 광경은 마음이 아플 정도이다.
아예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채 돌아다니고 딴짓을 하는 사람의 속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요즘 공중목욕탕에서는 이런 생각 없는 사람들의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 수도꼭지를 절수용으로 교체한 곳도 있다. 아주 잘한 일이다.
심각한 물 부족 국가인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물사정을 텔레비전에서 보며 우리 모두는 마음 아파하고 있지 않은가. 물을 헤프게 쓰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물 부족으로 인한 곤란을 우리는 겪지 않아야 한다.
미리미리 아껴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물론, 적절하게 물을 확보하는 대비도 해야 할 것이다.
2008.10.10
첫댓글 물을 사용할때는 진짜 많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외국에 나가 보면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좋은 물을 언제나 어디서나 풍부하게 쓸수 있는 우리는 행운입니다. 언젠가 남편이 이런말을 했어요."
우리나라는 "물부족 국가" 보다 "물관리 부족국가"가 더 맞다고...
이제부터라도 물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될것 같습니다.
"물관리 부족국가"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충남 보령지방에선 저수량 부족으로 다음 달부터 단수를 시행한다고 합니다.
극심한 가뭄으로 저수량이 25%로 저조해서 내린 조치인가 봅니다.
앞으로 보령에만 국한 된 이야기가 아닐 것 같습니다.
모두 물 절약하는 생활습관을 가져야만 합니다.
뮬, 전기, 어느것 없이 부족하여 고생 안 해 봤는 것이 없는데 나부터도
그 때를 다 잊고 왜 이렇게 사는지 자책할 때가 있어요. 나는 안 아끼면서
다른 사람이 물 해푸게 쓰는데는 잔소리가 절로 나온다
풍족한 요즘 옛날에 궁핍했던 시절을 잊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오랜 습관이 하루 아침에 바뀌기는 어렵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