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무가치하게 태어난 인생이 어디 있겠는지요? 자기 존재의 이유를 발견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세상의 모든 고통은 남과 비교하면서 일어나지요. 자기 잘하는 일을 살려서 성실하게 열심히 살면 다들 행복하게 살 수가 있는데 태어나면서 부터 남과 비교하면서 지옥으로 떨어지지요. 이숍이 개와 당나귀를 비교하여서 우화로 남겨 놓았지요. 당나귀가 개처럼 주인에게 귀염 받으려고 꼬리를 흔들며 앞발을 들고 기어 오르려다가 매를 맞았다는 우화.
“빛나는 것들끼리 빛나는 세상 만들어봐라. 하나도 안 빛난다.”
이런 표현은 "빛나는 것들"이라는 이분법적인 틀을 자기 맘 속에 이미 만들어 놓은 심리 상태라서 소통이 불가능해요. 요즘 젊은 세대들과 대화 해보면 이런 식이지요. 부모와도 소통이 안되지요.
이런 생각에 고착된 사람들이 권력욕은 아주 강하지요. 권력을 쥐면 잔인하게 행사하지요. 자기 증오의 분풀이를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인생 칠십 넘게 살아 오면서 수도 없이 경험한 인간군상이지요. 어릴 떼 제 할아버님이 일자 무식이었지만 참 근면 검소하셨는데, 어린 제게 하시는 말씀이 "짐승은 구제하면 은혜로 갚지만 인간은 구제하면 원수로 갚는다"고 하셨지요. 자기보다 좀 더 나아 보이는 사람에 대한 증오심 때문인데, 힘이 없을 때는 선량한 척, 착한 척 하다가, 힘을 가지게 되면 가장 가까운, 자기에게 은혜를 배푼 사람에게 부터 자기 증오심을 드러내면서 잔인하게 복수하게 되지요. 그건 형제 간에서 부터 그러합니다. 가인과 아벨이 그러했고, 야곱과 에서가 그러했고, 야곱의 열두 아들들이 또 그러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수도 없고.
가게무사(影武者/ かげむしゃ )라는 말이 있는데 일본말로, '대역'인생 '그림자 무사'를 뜻합니다. 모자무싸는 최근 방영된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순수한 한국어 앞 글자 줄임 말인데, 제 생각에는 가게무사에서 불거져 나온 창작어가 아닌가 생각 합니다. 가게무사는 비선실세라는 말로도 쓰입니다. 실제로 권력을 쥐고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는 자. 가게무사나 모자무싸나 꼭두각시 인형이긴 마찬가지 입니다. 자기 생긴대로 살자라는 표현일 수도 있는데, 자기가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면서 지 마음대로 사는 겁나는 인생들을 많이 봅니다. 예를 들어 친구들 앞에서 일부러 방귀를 "뿡" 하고 힘주어서 뀌는 무례한 자들.
모자무싸 역시 가게무사의 대역인 단어로 보이네요. 떳떳지 못하고 진실하지도 못한 비틀린 언어가 진정한 위로를 주지는 못합니다.
물론 작가의 의도는 "세상 모두가 일등, 최고, 스타(빛나는 것)만 되려고 하면, 그 세상은 오히려 아무도 빛나지 않는 삭막한 세상이 된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일등이 아니어도 평범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존재도 그 자체로 가치 있다는 '반(反)이분법적' 위로이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의도일지라도, 진정한 위로의 말은 비틀린 말장난이 아니라 진지하고 당당한 언어로 건네는 것이 옳습니다.
첫댓글 기왕 드라마 이야기가 나왔으니, 드라마로 한번 풀어 보겠습니다. 오해영의 작품 중에 ‘나의 해방일지’라고 있습니다. 여기 나온 대사 중에 ‘끼리끼리는 과학’이란 대사가 나옵니다. 그 대사를 듣는 순간 픽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을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이듯 비슷한 인간끼리 모이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한 세상 사는 거지요. 나이 칠십을 앞둔 지금까지 그렇고 그런 부류들이랑 음담패설이나 하고 살아온 인생입니다. 그래서 괜히 고상한 척하는 짓은 제 체질에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기 나름의 틀을 만들어 놓고 모두가 그 틀 안에서 살아달라고 강요하면서 그게 정답이라고 우기는 사람을 보면 정말 답답해서 미칠 것 같거든요.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세상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ㅎㅎㅎㅎ
유당 선생님께서 모르시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사람의 대화는 '끼리끼리 과학'이 아니고 대화에 참여한 인물 중에 가장 낮은 정신레벨 수준에 맞춰주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건 헤르만 헷세가 소설 <데미안>에서도 그려 보여 주고 있지요. 싱클레어가 프란츠 크로머라는 거칠고 낮은 수준의 인물에게 휘말려 자신의 세계가 오염되고, 그의 수준에 맞춰 쩔쩔매는 장면이지요.
거기에 못 맞춰주는 성격도 있는데, 그런 분은 대게가 침묵하거나 다음에는 절대로 함께 자리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프란츠 크로머 같은 자들이 권력자가 되면 언어의 마술 효과 그걸 잘 아니까, 분위기를 제압하려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내 뱉지요. 그러면 나머지는 전부 알아서 기게 되지요. 그런 인간들 많이 봐 왔습니다. "지록위마"고사 아시지요? 나는 그런 인간들 대할 때 바로 면전에서 "너 말 조심해!" 하고 쏘아 줍니다. 그래도 계속 육두문자 쓰면서 떠들면, "일체 코피가 터지고 갈비뼈가 부러지더라도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쓰고 깨끗하게 주먹으로 붙자고 격투 신청을 하지요. 그 정도로 세게 나가면 말로 한몫 보려는 자들은 대게 수그려 들지요.
농담이 아니고 경험 사례 입니다. ^^
[언뜻 생각나는 한 사례}
초년 팔자가 매우 사나웠던 한 여인이 마침내 와인 바를 열었습니다.
'아무리 술을 팔더라도 인테리어는 고급스럽게 와인 가격은 높게 하면
손님들도 저절로 걸러져서 분위기도 우아해지지 않을까?'
이게 와인 바를 연 주인장의 의도였는대,
막상 판을 벌이고 보니,
이게 전혀 아니었다는 겁니다.
'내가 돈을 많이 버는 건 좋은데,
어째 멀쩡하게 생긴 작자들이 와서
기껏 한다는 이야기가 연예인 스캔들 또는 음담패설....
비싼 술을 마시고 내내 시시껄렁한 잡담이라니!'
업주가 비천한 생활상에 넌더리를 내며 자괴감에 한동안 시달리다가 문득 안 거죠.
'아하! 이 양반들이 저마다 가면을 쓰고 그럴 듯한 행세를 하다가
그나마 숨 돌릴 구석을 찾아 와서 이러는구나.
이게 딴에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달래는 방식이구나.'
사정을 이렇게 알고 나니 그 사람들이 새롭게 보이는 거죠.
이리하여 야차(夜叉)가 순식간에 보살(菩薩)이 되었답니다.
*최근 제가 한 반성.
'내가 어쩌다가 여태껏 이런 생각을 한 번도 못했을까?'
선배 한 분이 잡지사를 차렸습니다. 한참 '아리랑'이나 '명랑'같은 대중 잡지가 유행할 시기에 정말 멋진 사람들, 고상한 사람들을 위한 잡지를 만들고자 없는 돈 있는 돈 다 끌어모아 잡지를 창간했습니다. 일 년을 못 버티고 폐간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중 잡지가 왜 필요한 지를 몰랐습니다. 뭐라고 유식한 척하며 말하고 있지만 듣는 사람이 뭔 소리하는 지도 모른다면 그건 그냥 허공에다 잘난 체하면서 남을 업신여기는 행위 이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하! 이 양반들이 저마다 가면을 쓰고 그럴 듯한 행세를 하다가
그나마 숨 돌릴 구석을 찾아 와서 이러는구나.
이게 딴에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달래는 방식이구나.'
김인기 선생님의 촌철살인같은 한마디가 저를 반성하게 만들고 고개 숙이게 만듭니다.
고맙습니다. 우매한 저를 항상 깨우쳐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