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둘째 주 그룹큐티나눔
형식주의에 빠진 예배
열왕기상 13:1-10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기뻐하며 경배하세(찬송 64장, 구 13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형식을 갖춘다고 저절로 참된 예배가 되지는 않습니다. 여로보암 왕은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북이스라엘의 절기를 제정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대신해 제사드릴 수 있는 제단을 벧엘에 세웠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예언자를 보내셔서 벧엘 제단의 불법성과 한계를 지적하십니다. 하나님의 책망에도 여로보암은 형식뿐인 가짜 제의를 놓지 않습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예언자가 불의한 벧엘 제단을 규탄하며 심판을 예언합니다(1-6절).
1)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 제단을 향해 선포한 예언은 무엇입니까(1, 2절)?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여로보암은 솔로몬 왕 생전에 선지자 아히야로부터 신탁을 받았다. 즉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열 지파를 솔로몬으로부터 빼앗아 여로보암에게 줄 텐데 여로보암이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면 그의 나라가 견고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왕상 11:30-38). 하지만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 제사를 드리러 남유다로 내려가려는 것을 막기 위해 금송아지 상을 만들어 벧엘과 단에 두었다. 그리고 ‘이 금송아지는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한 신’이라고 선포한다(12:26-30). 벧엘 제단은 출애굽 광야 백성의 불신앙을 계승한 것이며(출 32:1-6), 바알과 여호와를 혼합시킨 혼합주의의 산물이다. 게다가 여로보암은 레위 자손이 아닌 일반 백성을 제사장으로 삼고 초막절도 7월 15일에서 8월 15일로 멋대로 바꿔버리고(왕상 12:31-32), 제사장이 해야 할 분향도 왕이 직접 한다(13:1). 하나님께서 이 모든 불신앙을 심판하기 위해 선지자를 파송하신 것이다. 선지자의 예언은 360년 후 요시야 왕이 일어나 제단을 헐고 산당 제사장을 불사르면서 온전히 성취된다(왕하 23:20).
2) 벧엘 제단을 향한 예언이 확실히 성취될 것을 보여주는 징조는 무엇입니까(3, 5절)?
예언자의 말대로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졌다.
제단이 갈라지고 재가 제단에서 쏟아진 건 ‘하나님의 사람’이 물리적 힘을 행사했기 때문이 아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을 뿐이고 그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이 일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징조’(‘sign’, 히, 모페트)이다. ‘모페트’는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입증하는 기적적인 표징이다(참조. 출 7:9). 그러므로 현재 벧엘 제단이 무너질 거라는 말씀이 성취되었다면 여로보암 왕국은 물론 우상숭배자들이 몰락할 것이라는 미래의 예언도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3) 여로보암은 예언자의 예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합니까(4, 6절)?
자기 손으로 예언자를 막으려 했다. 그러다 하나님이 그의 손을 마르게 하시자 예언자에게 자기 손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나눔 1 벧엘 제단을 통한 예배는 비록 형식은 갖췄을지 모르지만, 생명력이 없는 껍데기 예배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신 예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기쁘게 받으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우리가 유념할 점은 무엇입니까?
나눔 2 여로보암이 손을 펴서 예언자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손을 마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힘으로 막으려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맞서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런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자세는 무엇입니까?
2. 예언자는 왕이 베푸는 환대와 회유를 단호하게 거부합니다(7-10절).
1) 예물을 약속하며 회유하는 왕에게 예언자는 어떻게 반응합니까(7, 8절)?
아무리 많은 재물을 준다 해도 왕과 함께하지 않을 것이며, 왕의 나라에서는 떡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겠다며 단호히 거절한다.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히, 알) 외쳐 말했다는 것은 제단을 ‘대적하여’(against) 심판을 선언했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의 사람은 불법 제단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전달하고 있는데 왕은 그 하나님의 심판을 자기 손으로 막아보려 한 것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왕의 손을 마르게 하여 다시 손을 거두어들일 수 없게 하였다. 그러자 왕은 다시 선지자에게 하나님께 간구해서 자기 손을 회복시켜달라고 요청한다. 그때 왕의 손이 예전처럼 회복되었다. 하나님은 심판하기도 하시고 긍휼을 베풀기도 하신다. 그 모든 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여로보암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와야 마땅했다.
2) 예언자가 단호하게 왕의 요구를 거절한 이유는 무엇입니까(9, 10절)?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려 애쓴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다른 길로 돌아가고 벧엘에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벧엘에서는 떡도 물도 마실 수 없었다. 이는 선지자가 벧엘에 잠시라도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는 하나님의 철저한 제한 명령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벧엘을 거부하신 이유는 여로보암을 통해 시작된 왜곡된 벧엘 제단이 불법이라는 걸 분명히 말씀하시려 했기 때문이다. 선지자의 사명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말씀에 순종하고, 세상의 달콤한 유혹에는 단호히 거부하는 것이다.
나눔 3 여로보암은 예언자를 돈으로 매수하려 했지만, 그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눈에 보이는 안락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순종의 길과 성공의 길이 어긋나는 경우를 이야기해봅시다. 또 순종하기 위해 성공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면 나눠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세상에서의 성공을 추구하기보다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하소서.
공동체 _ 제 만족을 위한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