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독서의계절이라고책을읽으라고독려하던때가있었다.그땐사람들이버스에서도열차에서도공원벤치에서도독서삼매경에빠져있었다. www.kyilbo.com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책을 읽으라고 독려하던 때가 있었다. 그땐 사람들이 버스에서도 열차에서도 공원 벤치에서도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참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지금은 지하철을 타면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다. 거기에도 볼거리 읽을거리가 많이 있으니 나름대로 마음의 양식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지하철에서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보았다. 외국인은 핸드폰에 빠져 있었고 한국인 남학생과 여학생은 나란히 책을 읽고 있었다. 외국인도 우리나라에 와서 살다 보니 한국 문화에 물이 들었나 보다. 나는 책을 읽는 모습이 하도 신기해서 몰래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가 생각해보니 또 초상권침해에 걸릴 것 같아서 얼른 지워 버렸다. 몇 정거장을 지난 후 그들은 하차했다. 그리고는 마음속에만 그 모습을 간직하기로 했다.
어린 시절 가을이면 독서 경연대회나 글짓기 대회가 있었다. 초등시절 미영이라는 친구는 동시를 잘 썼고 해경이라는 친구는 산문을 잘 써서 상을 받았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가슴에는 늘 한 줄의 문장을 다듬으면서 살아 온 날들을 아름답게 가꾸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글 쓰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나는 글짓기만 하라고 하면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을 남에게 드러낸다는 것이 너무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늘 말로 표현도 잘 하지 않고 눈치만 보고 느낌으로만 말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나의 모습이다. 그땐 참으로 순수했던 때였던 거 같은데 성격은 안 바뀐다고 하지만 살아가면서 환경에 의해서든 자의에 의해서든 스스로 바꿀 수도 있는 것 같다. 지금은 그렇게도 부끄러워했던 글을 써서 발표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두 가지였다. 중학교 시절 한문 수업 시간에 배운 인사유명 人死留名 호사유피 虎死留皮를 배우면서부터였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태어나서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는 뜻이다. 그 뜻은 나의 마음에 깊이 각인 되었다. 살아오면서 나는 그것을 잊지 않고 살았다. 또 하나는 시골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오니 아는 사람도 없고 너무나 심심해서 밤마다 글을 끄적이다 보니 문학상에 응모도 하게 되고 유명 심사 위원에 의해서 수상도 하다 보니 이것이 내가 갈 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또한 누군가 글을 읽으면서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타인의 삶을 통하여 나를 반추해보고 공감하면서 어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할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생각과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책과 씨름을 하고 장시간 문자와 싸움해야만 문장이 완성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책임감을 느끼고 양질의 글을 쓰려고 애쓴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얼마 전에 대한민국에 낭보가 들려왔다. 물망에 오르던 고은 시인도 아니고 한강이라는 소설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카톡방에서는 난리가 났다. 한강에 대한 소식들을 퍼 나르느라 여념이 없는 문인들의 발 빠른 소식을 보면서 기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축하의 댓글과 꽃다발을 SNS에 날려 주었다.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대한민국이라는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아주 가냘프게 보이는 중년의 여인이 산고 끝에 남긴 “소년이 온다”가 노벨문학상이라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노벨상 소식이 들려온 후 한강의 저서들은 갑자기 풍년이 들어서 재출판을 하게 되고 인쇄소들은 밤을 새워가며 인쇄하느라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됐다. 대형 서점에 널려 있는 책을 사려고 줄을 서는 모습들도 부러운 진풍경이었다. 기쁨은 잠시일 뿐 그 부담은 오랫동안 갈 것이다. 우리는 그녀가 글을 쓰는데 부담이 가지 않도록 아껴 주어야 할 것이다.
한강이라는 소설가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다. 누군가는 사상을 문제로 삼지만, 글은 글로써 이해를 해 줬으면 한다. 노벨문학상이라는 첫 테이프를 끊어 주었으니 훗날 많은 문학도가 그 꿈을 목표로 달려갈 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문학 경쟁력도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독서의 계절 가을에 날아든 낭보에 정신이 번쩍 든다. 자랑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것은 당연한 이치겠다. 책을 멀리하는 한국인들의 손에 책을 손에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되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책을 읽게 만드는 정부의 정책도 간절하고 글을 써도 수입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현실을 새롭게 정비하지 못하면 안 될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오늘도 한 줄의 문장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