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툇마루에 엮어놓은 달걀 있을거야. 구판장에 가지고가서 석유 좀 달란다고 그래~"
" 네~ 아부지."
" 이발소에 들러 쌀도 가지러오라 그러고..."
" 네~"
밤나무집을 돌아가면 마을의 구판장이 있습니다. 옆으로 이발소와 정미소가 있으니 작은 시골마을에선 모든 생활이 이루어지는 마을의 중심지입니다. 구판장에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등잔불이나 남포불에 사용되는 석유에서부터 감기에 걸렸다하면 누구나 찾는 노바킹 시럽도 있고, 배가 아프다면 만병통치약으로 통하는 활명수도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그 중에서도 늘상 구판장 아저씨가 사타구니에 끼고 파는 눈깔사탕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달걀 두개면 아버지의 술, 소주와도 바꾸어주고 다섯개면 석유도 한됫박을 떠줍니다. 심부름을 잘한다고 눈깔사탕을 덤으로 주니 심부름을 가는 재미가 쏠쏠하기 그지없습니다. 석유를 댓병에 받아들고 이발소 문을 드드륵 열고 이발사 아저씨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발소에선 돈을 받지 않습니다. 언제라도 공짜로 이발을 해주는 샘밭이용소, 두개의 의자 중 하나엔 건너마을 돌쇠가 엄마의 코치에 따라 이발사가 스강스강 고품격의 가위질을 하고있고, 다른 의자엔 동네 어르신이 알아들을 수 없는 현대산업개발의 소양댐에 관련된 이야기를 혼자만 아는 것처럼 장황히 늘어놓으며 순서를 기다립니다. 전면이 온통 거울로 붙여진 이발소, 거울에 바짝 얼굴을 디밀고 서슬이 퍼런 면도칼로 구렛나루를 미는 두수 아빠가, 면도칼을 벼리는 가죽띠를 보며 평소에 면도칼을 잘 갈아놓으라고 잔소리를 잊지 않습니다.
평소에 공짜인 이발비는 농산물로 대신합니다. 식구당 쌀이 두됫박이니 우리는 말가옷을 줘야 일년치가 됩니다. 낮에 방아를 쪘으니 저녁이면 리어카아를 끌고 와 세공을 받아가는 모습이 인상깊게 남을 것이 분명합니다.
석유를 담은 소주 댓병을 보니 술을 좋아하시는 김씨 아저씨가 갑자기 떠오릅니다. 아들이 뒷간에서 배변을 보았는데 배설물과 함께 거시(회충)가 상당히 많이 나왔다는 것이고, 거시에는 석유가 직방이라며 아들에게 석유를 먹였다는 것입니다. 그 뒤로는 배변이 말짱했더라는 이야기가 시골길에서 들바람을 타고 솔솔 들려오는 것입니다.
' 나도 한모금 마셔볼까? 저번에 나도 거시가 있던데...석유를 어떻게 먹어? 맛이 없을텐데. 눈 딱 감고 먹으면 되는 거지 머. '
콜크 마개를 열고 냄새를 한번 맡아보니 좀처럼 내키지가 않습니다. 구력질이 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코를 막고 벌컥 들이키고 말았으니 이를 어쩝니까. 니글니글 속이 끓기 시작을 하더니 복통이 급습을 합니다. 달리 방법이 없는 겁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아버지를 부르며 통곡을 하고 말았습니다.
" 왜그러니 상민아~ "
" 석유를 마셨더니 배가 아파요~"
" 석유를 왜 마셨는데...?"
" 거시에 석유가 좋다길래요..."
" 아 이녀석아 휘발유라면 모를까 석유를 왜 마셔!!"
" 거시엔 석유가 직방인 줄 알았어요 아버지....ㅠㅠㅠ:
* 거시에는 석유가 아니라 휘발유라는 것을 잊지맙시다 여러분~~~~
저의 그 때 그 시절 고향 이야기였네요.^^*
첫댓글 구판장...울 시댁가면 아직도 구판장이란 곳이 있답니당^^*
이 곳에도 9개 부락 중에 한 곳이 남아있네요.
옛날엔 석유도 팔고 상비약도 팔고 계란으로는 물물교환이 가능했지요. ㅎㅎ
그시절이 그려집니다..... 유리됫병에 석유 받아오고, 왕겨를 넣어 호야 딲던........ㅎㅎ
좋은 시절 다 갔습니다. 차곡 차곡 과거에 쌓여만 갑니다.
언제고 함 뵈야겠는데 잘 안되네요. 원주에 가본지도 벌써 3년이나 되었어요 ㅠㅠ
휘발유였군요..ㅎ
조상들의 지혜가 아니라 미련곰탱이 들이었지요. 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네여 ^^
재 이름이 상민인데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