深淵 10
^자립^
당신 자신과 무관한 그 어떤 것도 추구하지 마십시오
내가 나를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위하겠는가?
내가 나 자신을 위한 유일한 사람이 아니면,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란 말인가?
인간은 여느 동물과 달리 두 발로 서고 두 발로 걷는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스스로 걷기 시작한다. 비로소 자기다운 삶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이렇게 스스로 바로 서는 이 행위를 '자립'이라고 한다.
나는 과연 홀로 설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육체적으로 두 발을 땅에 딛고 설 수 있느냐는 물음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나아가 영적으로 독립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이다. 인간은 독립적일 때 더욱 빛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독립적으로 서는 법을 거의 배운 적이 없어서 지연, 학연, 혈연에 의존하기 일쑤다. 자기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내용물(contents)이 별로 없다 보니 사회라는 이익 집단이 만들어낸 신용장 뒤에 숨는 것이다. 이신용장을 '엑스트라'라고 한다. 엑스트라는 말 그대로 삶에
서 생략해도 되는 무언가다.
다른 누군가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들, 이 이야기들에는 그것을 들려준 사람만이 갖고 있는 편견과 왜곡이 군살처럼 붙어 있다. 때로 그 군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러나 위대한 혁신가들은 전통이나 관습에 기댄 타인의 생각을 거침없이 잘라버린다. 그러고는 이전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길'을 탐색한다.
새로운 길이란 자신의 삶을 위한 최선의 길이며, 최선이란 내 삶에 있어서 모든 것을 걸고 추구해야 할 나만의 임무다.
우리가 철학이나 종교, 과거 문화나 문명을 공부하는 것은 그것을 만든 이들의 천재성을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천재성을 감지하고, 우리 스스로 자신의 철학과 종교, 삶에 대한 새로운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다.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자립(Self-Reliance)] 이라는 에세이가 있다. 이 글은 '나는 스스로 온전할 수 있는가? 나는 나 자신에게 얼마나 만족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정신적 '독립선언문'이다.
에머슨은 다음과 같은 라틴어 문구로 에세이를 시작한다.
"Nete quaesivetis extra." 번역하면 "당신 자신과 무관한 그 어떤 것도 추구하지 마십시오"다.
자립을 원한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내 삶에서 엑스트라를 분별해내고, 그것들을 제거하는 일이다. 엑스트라를 선별하는 이 과정을 '생각'이라고 한다. 생각은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공식이나 철학으로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생각은 내 삶에서 없어도 되는 것들을 분별해내는 능력이다. 엑스트라를 제거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두 발로 서게 된다.
우리는 독립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같이 철학적이고 영적인 질문들은 자립을 모색하는 첫 걸음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답을 나와 상관없는 과거의 성인이나 철학자들이 남긴 이야기에 의지해 찾으려 한다. 그러나 위대한 사상가들의 글과 그들의 사상을 숭배하는 학파의 이론, 창시자를 신격화한 종교의 교리 속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찾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 길은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 심연 속에서 반짝이는
별을 발견해내는 것, 그것이 곧 내가 추구해야 할 무언가를 찾아내는 일이다.
마음속 깊이 숨어 있는 별을 찾아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신비를 탐구할수록 점점 더 그 안에 숨어 있는 신비에 매료됐다. 이 비밀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그것을 넘어선, 도저히 숫자로나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1930년,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과학 세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새로운 이론을 만난다. 이른바 양자역학 원자의 행동을 설명하는 이 이론은 "우리 시대 가장 성공적인 물리학 이론"으로 불렸다. 이 이론은 이후 트랜지스터, 레이저, 화학 등에 적용되어 현대인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정작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원자에 대한 최종 이론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질의 인과성을 믿었던 그는 우주를 확률적으로 보는 양자역학의 설명과 성공에 당황했다. 그는 인과성을 기초한 예상 가능한 질서를 신봉했고, 그 조화로운 질서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어떤 존재를 신봉했다.
그는 이 존재를 신이라 일컬었다. 우주 속에 숨어 있어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이룬 존재로서의 신.
아인슈타인은 이 신이 특별한 소리로써 소통한다고 믿었고, 그 소리를 '내면의 소리'라고 불렀다. 이 소리는 인간 모두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은 채 우리의 발굴을 기다린다. 이것은 바로 천재성이다.
천재성은 어린아이 같이 서투르고 즉흥적이며, 이성의 논리를 뛰어넘는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가 숭배하는 이성이라는 신전의 반대편에 있는, 우리의 본성을 자극하는 광기狂氣이기도 하다. 내면의 소리란 바로 현대인들이 애지중지하는 신과 신전에 대항하는 광기다. 아인슈타인에게 이 소리는 종교였다.
이 '거룩한 선물(a sacred gift)'은 마음속에 있는 쓸데없는 것들을 제거할 때 미세하지만 맑은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이 소리가 전해주는 내 마음 안의 우주, 그 조화로운 질서 속에서 반짝, 빛나는 나만의 천재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늘 글 ^자립^의 핵심 문장
위대한 혁신가들은
전통이나 관습에 기댄
타인의 생각을
거침없이 잘라버린다.
그러고는 이전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길'을
탐색한다.
생각은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공식이나
철학으로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생각은
내 삶에서 없어도 되는 것들을
분별해내는 능력이다.
<질문>
이 글에서 말하는 여러분의 천재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