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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개의 문
최서윤이 다녀간 다음 날 아침, 강범은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파일부터 찾았다.
"조 사무장님, 어제 그 최서윤씨 서류 정리됐어요?"
"네, 책상 위에 올려놨어요. 근데 하나가 좀 걸려요."
조 사무장은 5년 넘게 강범과 함께 일한 베테랑이다. 강범이 노무사시험에 합격한 후 한 노무법인에서 수습노무사로 일할 때 급여아웃소싱 업무를 가르쳐 줬던 인연이 계속되어, 현재 강범이 운영하는 <노동법률사무소 범아>의 사무장을 맡고 있다(각각 '대표노무사'와 '사무장'이라고 하지만, 사실 사무실엔 이 둘 뿐이다).
"뭐가요?"
"인사팀 검토 결과 통보 메일이요. '특별한 문제는 확인되지 않았다'고만 되어 있는데, 조사 과정 자체가 아예 없었던 것처럼 보여요. 조사했다는 기록이 하나도 없어요. 면담 일지도 없고, 가해자로 지목된 팀장 진술서도 없고."
강범은 서류를 펼쳤다. 조 사무장 말이 맞았다. 인사팀 명의의 통보서에는 결론만 있었다.
과정이 없는 결론. 이건 오히려 좋은 신호였다.
"이게 왜 좋은 거예요?"
조 사무장이 물었다.
"조사를 했는데 문제가 없었다는 것과, 조사 자체를 안하고 없었다고 한 것은 완전히 달라요. 사용자의 조치의무 위반이 명백해지거든요.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는 직장내괴롭힘 신고를 접수한 후 지체 없이 이를 조사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이게 안 지켜졌다는 걸 그쪽 스스로 문서로 증명해준 셈이에요."
강범은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두 개의 원을 그렸다.
"노동청."
첫 번째 원 아래 적었다. <신고, 불리한 처우(해고),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노동위."
두 번째 원 아래 적었다. <해고, 정당한 이유(사유·절차), 근로기준법 제23조>.
"두 사건의 승부처가 달라요. 노동청에서는 이것만 증명하면 돼요 — 신고와 해고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회사의 '고의'. 이 두 개만 서면으로 만들어놓으면 감독관 입장에서는 형사 사건으로 넘길 근거가 충분해요."
"노동위는요?"
"노동위는 조금 더 까다로워요. 해고사유의 정당성, 절차의 적법성, 이 두 가지를 다 봐요. '업무 부적합'이라는 사유가 실체가 있는지, 저성과자 평가가 객관적 기준에 의한 건지, 소명 기회는 제대로 줬는지. 회사가 이걸 다 갖췄다고 주장하면, 우리가 그 하나하나를 깨야 돼요."
잠시 생각하던 조 사무장이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근데 노동청이 먼저 결론 나겠네요. 시간이 좀 다르니까."
"그럴 거예요. 노동청 조사가 보통 1~2개월, 노동위는 접수하고 심문까지 2~3개월은 잡아야 하니까. 노동청에서 유리한 결과가 먼저 나오면 그걸 노동위 쪽에 자료로 낼 수 있어요. 순서가 우리한테 유리하게 짜여요."
강범은 최서윤이 건네 준 타임라인을 다시 훑었다.
3월- 직장내괴롭힘 신고 및 무혐의 종결, 5월- 팀 개편, 6월- '업무 부적합'을 이유로 한 해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흐름이다. 마치 정제된 듯이.
"사무장님, 최서윤 씨 전 직장 이력 확인됐어요?"
"이력서상으로는 두 군데. 첫 직장 2년, 지금 회사 3년. 특이사항은 없어 보이는데요."
"이력서 말고, 혹시 전 직장에서 뭔가 있었는지 알아볼 방법 없을까요?"
조 사무장이 의아한 듯 강범을 쳐다봤다.
"의뢰인 전 직장에서요? 그것까지 확인하실 필요가 있어요? 사건이 너무 명확한데."
강범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 단계에서는 필요 없는 질문이었다. 회사측이 아직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강범은 습관처럼 그 질문을 던졌다.
"명확해 보이니까 확인해두자는 거예요. 나중에 상대측이 뭘 들고 나올지 모르니까, 뭐라도 우리가 먼저 알고 있는 게 나아요."
"알겠습니다. 근데 개인정보 문제도 있어서, 공식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마땅치 않아요.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확실할 거에요."
"하긴. 그럼 그건 다음에 만날 때 자연스럽게 물어볼게요. 지금은 서류부터 완성하죠."
강범은 노동청 진정서 초안과 노동위 구제신청서 초안을 나란히 펼쳐놓았다.
같은 사실관계, 다른 문법. 하나는 형사법의 언어로, 하나는 노동법의 언어로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써야 했다.
그 날 오후 늦게, 강범의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강범 노무사님이시죠. 저는 <성진노무법인>의 장태주 노무사라고 합니다. 최서윤 씨 건으로 연락드렸습니다."
회사측이 벌써 대리인을 선임했다. 최서윤이 다녀간 지 하루 만이었다.
"빠르시네요."
수화기 너머로 짧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저희 쪽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서요."
강범은 그 말의 뉘앙스를 곱씹었다. '준비할 시간'.
단 하루 만에 대리인을 선임했다는 건, 회사가 이 사안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 3화에서 계속 -
(매주 월.수.금. 업데이트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