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대구 시내 한가운데를 달리던 지하철에서 방화로 불이 나 200여명이 숨지거나 부상 또는 실종되는 끔찍한 참사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 희생자들 중 상당수는 사고 직후 휴대전화로 가족들에게 구조를 요청하거나 급박한 상황을 알린 것으로 드러나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 2001년 9·11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갇힌 희생자들이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통화’를 시도한 것을 연상케 한다.
사고열차에 탑승한 것으로 보이는 이미영양(19·경북여고2년)은 갑자기 발생한 불로 객차를 빠져나오지 못하자 아버지에게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구해주세요. 문이 안 열려요”라며 구조를 요청했다. 잠시 후 휴대전화에서 비명과 고함소리,울음소리가 들리면서 통화가 끊겼다. 이양의 온 가족은 화재현장과 대구 시내 병원을 돌아다니며 이양을 애타게 찾고 있다.
장계순씨(44)는 18일 오전 10시쯤 학교에 간다면서 집을 나간 딸 이선영씨(20·영진전문대)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 지하철에 불이 났어.” 장씨는 울먹이는 딸을 달래려고 애썼지만 통화는 자꾸 끊어졌다. “영아야,정신 차려야 돼.” “숨이 차서 더 이상 통화를 못하겠어.” “엄마 사랑해….”
딸의 마지막 인사말을 듣곤 집을 뛰쳐나와 현장으로 나온 장씨는 만나는 사람을 붙들고 “사고난 지 3시간이 지났으니 가망이 없겠지요”라는 말을 되뇌어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지난해 결혼한 새댁 민심은씨(26·대구시 동구 신암동)는 사고 직후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숨이 가쁜 목소리로 “오빠 사랑해”라는 말을 남기고 실종됐다. 사위의 연락을 받고 현장에 달려온 민씨의 아버지 민창기씨(54·대구 중구 계산동)는 “딸이 매일 중앙로역 부근으로 주부교양강좌를 들으러 다니는데 지하철을 타고 가다 사위에게 ‘불이 났다’고 전화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민씨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밖에 정인호씨(51·대구시 동구 방촌동)는 딸 미희양(21)에게 “불이 났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못 나간다”는 긴박한 전화를 받은 뒤 연락이 두절됐다. 비슷한 시각 박남희씨(44)는 고3 딸에게 “엄마 살려줘”라는 다급한 전화를 받고 현장으로 달려나왔다. 또 초등학교 6학년인 조효정양(12)은 친구와 시내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뒤 친구에게 ‘지하철 사고가 나 약속시간을 맞추지 못할 것 같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고현장에서 만난 조모씨(42)는 “사고가 난 뒤 바로 경북사대부속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이 휴대전화로 ‘지하철에 갇혀 있는데 살려 달라’는 연락이 왔다”며 “이후 다시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두절됐다”며 울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