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을 넘어서는 제품개발이 더 중요하다”
최근 한국의 강소수출기업 기산전자(대표이사 장상환)가 일본의 글로리(Glory)와의 중국시장 개척 전에서 일승을 거뒀다. 글로리가 가격대를 많이 낮췄음에도 기산전자가 중국 우체국의 유일한 외산 소형지폐정사기를 공급 기업으로 선정된 것이다. 지점이 3만개가 넘는 중국 우체국은 최근 중국 기업과 해외 기업 각 1개사를 선정, 지폐정사기를 공급받기로 했다. 기산전자는 지난 4월까지 400만달러어치의 2포켓, 3포켓 소형지폐정사기 1000여대를 선적했다.글로리사와 독일의 G&D는 세계 지폐계수기 및 감별기 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쌍두마차다. 두 회사의 연간 매출액은 각각 2조원에 달한다. 기산전자는 두 골리앗이 장악하고 있는 세계시장을 소형지폐정사기로 파고들어가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매출액의 11%를 R&D에 투자
“국내에만 쟁사가 2~3곳에 달한다. 세계시장에는 글로벌기업인 일본의 글로리와 독일의 G&D가 있다. 영국의 데라루(Derelue)도 있다. 우리는 소형지폐정사기에서 세계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을 뿐이다. 자동차로 따지면 1500cc급 시장에서 세계 1등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기산전자 장상환 사장(55세·사진)의 겸손한 말이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기산전자의 매출액은 500억원을 상회하는 고성장세를 이뤘다. 2012년 520억원에 달했던 매출은 지난해 491억원으로 5.6%가 감소했다. 하지만 이 회사의 R&D투자(경상연구개발비)는 2012년 49억원(매출액대비 9.42%)에서 2013년 56억원(11.4%)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2012년도 국내 상장기업의 매출액대비 R&D 투자비율이 평균 1.2%, IT업종 4.72%를 몇 갑절 능가하는 투자를 하고 있다. 이 회사의 연구개발 인력은 전체 인력 185명의 40% 선인 75명에 달한다.
중국수출 스타트로 급성장 예약
기산전자는 올해 매출 목표를 650억~700억원선으로 대폭 늘려 잡고 있다. 지난해 1차 개발이 완료된 ‘K-500’ 후속 시리즈 신제품이 올해 새로 출시될 예정이고, 성장 가능성이 가장 높은 중국과 인도시장에 대한 수출이 새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중국과 인도 시장 수출에 탄력이 붙으면 올해는 최소 650억원의 매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기산전자는 전체 매출액의 90% 정도를 해외시장에서 올리고 있다. 러시아(30%), 이탈리아(10%), 터키(7~8%)가 3대 수출국이다. 수출 국가는 모두 50개국에 달한다.
첫 번째 시련 ‘IMF 외환위기’
기산전자는 1988년 회사 창립이후 두 번의 위기를 겪었다. 1995년부터 2~3년의 연구개발 노력 끝에 1997년 헌 돈과 새 돈을 구분할 수 있는 지폐정사기(모델명: K-100)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신제품을 개발한 후, 장 사장은 시제품을 시연해 보라고 은행마다 쫓아다니며 권유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문전박대하는 곳도 있었다. 정확도가 생명인 업무 특성때문에 업계 반응은 보수적이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던가.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국민은행의 한 지점에서 6개월간 제품을 테스트해 보겠다고 연락이 왔다. 당시 부담과 위험을 무릅쓰고 기산전자의 제품을 선택해준 국민은행 과장은 지금은 지점장이 됐고 당시를 공유하는 사이가 됐다.
어렵게 거래선을 확보해 매출이 늘어나나 싶더니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그 여파로 매출이 떨어졌으나 장 사장은 공격적인 경영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1999년부터 다시 바빠졌다. K-100 모델은 당시 수입 기기에 비해 품질은 뛰어나면서 가격이 4배가량 쌌다. 이 여세를 몰아 국내 소형 지폐정사기 시장의 90%를 기산전자가 석권할 수 있었다.
외국산에 다시 밀려 ‘고전’
정면 돌파로 IMF를 잘 넘기고 있을 즈음, 2001년과 2002년 사이에 K-100보다 뛰어난 외국산 정사기가 밀려 들어왔다.
장 사장은 사옥을 매각하면서까지 외국산 정사기를 능가하는 신제품 개발에 올인했다. 석박사급 고급 연구 인력을 대폭 충원하고 R&D 투자를 늘렸다. 2003년도에 5포켓형 신제품인 ‘K-500’(2포켓 제품 출시 이후부터 ‘뉴톤’이라고 부름)의 개발을 완료했다.
2004년 3월 이 제품을 독일 하노버 정보통신박람회(Cebit)에 출시했다. 10년째 독일에서 기산전자 제품의 판매를 대행하고 있는 NGZ사와의 인연도 이 때 맺어졌다. NGZ사는 1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으로 동전개수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세빗 전시장에서 기산전자가 새로 내놓은 5포켓 제품을 보고 수십만달러어치의 구매 의향을 즉석에서 표시했다. 이 거래가 기산전자의 첫 수출이었다. K-500의 수출호조로 기산전자는 2006년 300만불 수출탑을, 2007년에는 500만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세계시장 진출로 ‘정면돌파’
국내 매출이 감소하는 가운데 수출실적이 늘어나자 기산전자는 세계시장 공략을 위한 신제품 개발에 더욱 매진했다. 지난 2008년 2포켓형 뉴턴-F(모델명: K-250) 제품을 출시했다. 감별 기능뿐만 아니라 계수 등의 모든 업무를 아담하고 귀여운 소형 기계 한 대로 해결할 수 있는 고성능 제품이었다. 윈도 운영체계(OS) 체계를 탑재해 인터넷으로 연계시켰다. 디자인도 개선했다. 4.3인치 컬러 LCD도 처음 채택했다.
2포켓 뉴턴-F는 달러, 유로, 위안, 엔, 원 등 5개국 화폐를 기계 한 대로 처리할 수 있다. 헌 돈과 새 돈을 가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위폐까지 감별할 수 있었다. 이 제품이 출시되자 ‘혁신적인 제품’이라는 칭찬이 쏟아져 나왔다. 세계 최초로 개발된 이 혁신적인 제품은 양산 체제를 갖추고 수출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출시 2년만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2포켓 제품이 됐다. 모두 2만대가 팔렸다.
이 제품 출시후 국내시장 점유율도 다시 90%대로 회복됐고, 2010년도 제47회 무역의 날에 3000만불 수출탑을 수상할 수 있었다. 매출액은 2010년 390억원, 2011년 497억원, 2012년 519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2013년 매출이 491억원으로 주춤하고 있지만 최근 3년 평균 매출액이 502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2013년도 영업이익은 13.5%를 달성했다. 부채비율은 18%로 감소했다.
‘뉴턴’ 2포켓 K-250과 5포켓 K-500의 수출이 승승장구하면서 2011년 11월 ‘뉴턴’은 세계일류상품으로, 기산전자는 세계 일류상품 생산기업으로 각각 선정됐다.
수출통로 열어준 Cebit
1인 기업으로 시작한 장상환 사장은 회사가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보다 공격적이고 해외시장을 지향하는 경영을 펼쳐왔다. ‘기술’을 최우선으로 R&D 투자를 확대하여 혁신적인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물론 해외시장 개척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 부었다.
“지난 2000년도부터 매년 3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리는 세빗 전시회에 참가하고 있다. 올해는 민박집 아주머니께서 10주년 파티를 열어줬다.” 장 사장은 이렇게 험난한 수출시장을 개척했다. 10여년전에는 금융기기를 다루는 전시회로 세빗이 유일했고, 지금도 제품을 구매하는 바이어들이 많이 오는 전시회는 단연 세빗이다.
기산전자는 2010년부터 딜러들을 대상으로 세빗 전시회 현장에서 ‘기산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세미나는 각국 딜러들의 경험담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준비한 자리다. 올해 세미나에는 35개국 60여명의 딜러들이 참가했다.
딜러 선정과 관리가 중요
“신뢰할 수 있는 딜러를 선정하는데 고민을 많이 한다. 정성도 가장 많이 쏟는다.” 장 사장은 재차 파트너인 딜러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한다.
“기술지원을 얼마만큼 잘해 주느냐, 신권 화폐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즉시 수정해서 업그레이드 하느냐, 신종 위폐가 나오면 얼마만큼 빨리 대응하는가도 중요하다.”
독일에 첫 수출을 시작한 후부터 기산전자는 현지 업체보다 2배가 긴 24개월 동안 품질보증을 해줬다. 딜러를 통한 애프터서비스(A/S)를 강화한 덕에 기산전자는 독일 소형 지폐정사기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작년에는 5유로 신권이 나오자마자 경쟁사보다 빨리 지폐 감별기능이 가능하도록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해 딜러들의 호평을 받았다.
세계 1등을 위한 3요소는
“ △내가 하고 있는 업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고객의 요구 사항과 시장의 변화와 흐름을 잘 파악해야 한다 △차별화된 제품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세계 1등 제품으로, 세계 1등 기업이 될 수 있는 무역인이 갖고 있어야 할 3요소다.”
학벌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장사장은 위험을 무릅쓴 투자와 집중력을 갖고, 특히 엔지니어들을 믿고 존중하면서 소형 지폐정사기 시장에서 세계 1등의 신화를 일궈낸 우리 무역업계의 수출영웅으로 주목받고 있다.
<주간무역> 제공
□ 장상환 사장 약력
1959년 경남 밀양 출생
부산고등기술학교 전자과 졸업
경남정보대학교 경영학과 중퇴
신성전자㈜ 10년 근무 개발과장으로 퇴사
1988년부터~현재 기산전자 창업 및 운영 중
지폐정사기란
‘지폐정사기.’ 누구나 한번쯤 은행에서 ‘돈을 세는 기계’를 본 적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식 명칭을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정사기는 간단하기 개수기와 감별기를 합친 기기라고 볼 수 있다. 지폐분류기라고도 부른다. 지폐정사기는 320개의 부품을 조립해 만든다. 핵심기술은 ‘센서’다. 지폐정사기는 단순히 돈을 세는 계수기능 외에 지폐를 권종이나 신권·구권, 훼손, 위폐 여부까지 분류하고 식별해주는 기능을 갖춘 고급 장비다. 이 기기가 위폐를 감식하고 각국의 화폐를 인식하는 기기로 세계에 수출되기 위해서는 초정밀 기술이 필요하다. 정밀한 분류를 위해서는 여러 센서에서 인식한 정보를 종합해야 된다. UV센서는 훼손된 돈을 감별하고, 초음파센서는 테이프로 응급처치(?)한 돈을 식별해낸다. MG마그네틱센서는 99.99%의 정밀도로 슈퍼노트를 찾아내고, CIS이미지센서는 지폐 권 종을 분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