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 아래 있는 여자
원제 : A Woman Under the Influence
1974년 미국영화
감독 : 존 카사베츠
출연: 피터 포크, 지나 롤랜즈, 프레드 드레이퍼
마리오 갈로
제가 가까운 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가끔 합니다.
"인간의 50% 이상은 정신병자다"
"인간의 50% 이상은 애정결핍증이다"
사실 이렇게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신적으로 온전하다는 것이 비정상 일 수도 있지요. 즉 정신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건 어쩌면 특별히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서 대단히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정신과 치료 경험 = 미친놈
이런 것 말이죠. 엄밀히 말하면 인류의 50% 이상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심신을 안정시키고 위안을 얻고 좀 더 나아지면 더 좋겠죠. 그런데 마치 정신과치료는 미친사람이나 받아야 하는 것처럼 많이들 생각하고 있으니.... 이런 인식이 바뀌어서 정신치료=심리상당 이 정도로 인식하면 참 좋을텐데요.
존 카사베츠는 원래 '배우'였습니다. 그가 배우를 한 것은 연출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였다죠. 그런데 배우로 제법 잘 나갔고, 꽤 유명한 영화들도 몇 편 있습니다. 그래도 그는 배우보다는 감독으로서의 역할에 더 흥미를 느꼈고, 그의 아내 지나 롤랜즈를 내세워 영화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1974년에 발표한 '영향 아래 있는 여자'는 그들 부부의 대표작입니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중년 여인과 그 가족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닉(피터 포그)은 노동 현장 인부로 일하고 있는 서민층 남자입니다. 2남 1녀의 아버지이기도 하죠. 그는 모처럼 아이들을 외가집으로 보내고 아내인 메이블(지나 롤랜즈)과 둘만의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시내의 수도관이 터지는 바람에 긴급 소집되어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 소식을 접한 메이블은 좌절하여 혼자 술을 마시다가 뛰쳐나가서 바에서 남자를 꼬셔서 집에까지 데려옵니다. 이튿날 닉은 동료들을 우르르 데리고 집으로 오고 나름 화기애애할 뻔 했던 식사분위기는 메이블의 지나친 오버로 어색해지고, 그렇게 파장됩니다. 어느날 이웃집 남자가 메이블에게 자신의 아이들을 맡기려고 찾아오는데 메이블의 이상한 행동 때문에 주저합니다. 아이들과 메이블의 어수선한 행동으로 집안이 난장판이 될 무렵 닉이 오게 되고, 닉은 이웃집 남자와 심하게 다투고, 그와 아이들을 내보냅니다. 참다 못한 닉은 의사를 부르고 결국 메이블은 정신병원에 장기 입원하게 됩니다. 메이블이 퇴원하게 된 날, 닉은 깜짝 축하파티를 준비하지만 메이블과 별 관련도 없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집안 상황을 보다 못한 닉의 어머니는 사람들을 쫓아 보냅니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속에서 메이블은 6개월만에 집에 오게 되고, 닉은 강압적으로 메이블을 통제하려고 하는데.....
굳이 스토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몇 단락으로 구분되어 각 상황에서 체계적인 각본이나 공식화 된 룰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여러 사람들이 떠들고 행동하는 것을 멀리 혹은 가까이서 카메라로 무작위로 잡아내는 듯한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일상이 그냥 영화가 되는 그런 형식이지요. 대사 하나하나가 굳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요.
표면상으로는 정신나간 여자와 그것 때문에 고생하는 가족들의 이야기지만 가만히 훑어보면 이 영화에서 온전히 제 정신인 사람은 메이블의 친정 엄마 한 사람뿐인것 같습니다. 특히 다혈질이고 권위적인 닉의 행동을 보면 닉이 미친건지 메이블이 미친건지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물론 힘들게 밤낮없이 일하면서 세 아이와 아내를 먹여살려야 하는 힘든 서민 가장으로서의 닉의 입장이 있을테고, 닉이 결혼생활을 하면서 메이블의 이상한 행동 때문에 인내해야 했던 시기에 대한 상황은 생략되었기 때문에 닉이 그렇게 거칠어지고 화를 잘 내고 강압적인 부분에 대해서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닉은 정신이 아픈 여자인 메이블을 헌신적으로 돌보거나 그런 아내에게 가장 적합한 사람은 전혀 아닙니다. 닉이 하는 다혈질적 행동은 늘 상황을 더 악화시키면 악화시켰지 좋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아이들이 닉보다 더 도움이 되는 존재 같습니다.)
메이블이 왜 그런 상태가 되었고, 그들의 과거가 어땠는지는 영화속에서 등장하지 않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정신이 온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 70년대인데, 세 아이를 키우는 노동자의 아내로서의 중년에 접어든 시기의 여성들이 겪는 심적 박탈감과 불안감, 고독 등은 여러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고, 대가족 문화가 있었던 70년대 까지의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자주 하는 이야기중에서 가족간에 불화나 싸움이 벌어지는 이유는 좁은 집에 여럿이 살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이 주장은 상당히 타당성이 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 살펴봐야 할 점은 과거와 미래가 아니라 이런 상황이 벌어져있는 현재입니다. 닉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고 보통인 남자이고, 그런 중년 남자들이 갖는 권위적인 행동, 나약한 인내심, 삶의 피곤함, 가끔 벌이는 민폐행동 등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악한 인물은 아니지만 부족한게 많은 전형적인 인간이지요. 특히 메이블이 정신병원에 가 있는 동안 억지로 아이들을 데리고 해변에 가서 즐겁게 놀려고(사실은 즐거워 하라고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하는 행동은 정작 정신병원에 그도 함께 들어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닉의 어머니는 닉 보다는 좀 더 이성적인 인간이지만, 전형적인 자신과 자신의 가족 위주의 불편한 시어머니같은 존재로 느껴집니다.(대가족 시대에 우리나라에 흔했던 일반 시어머니 같은 존재라는 이야기입니다.) 메이블의 친정 아버지 역시 고리타분하고 대화능력이나 이해심이 함량 미달인 보통의 노년 아저씨의 느낌이고. 이 영화에서 주절거리는 여러 대사 중에서 그래도 의미있게 와닿았던 메이블의 대사가 바로 아버지를 향해서 이야기하는 '제발 제 편이 되어 주세요' 라는 것입니다. 그게 뭔 말인지 못 알아듣는 그를 안스럽게 바라보는 메이블의 친정 엄마, 유일하게 정신이 온전한 캐릭터입니다.
이렇게 어수선하고 요란한 집에서 세 아이들은 나름 티없고 착하게 묘사됩니다. 그들이 부모에게 하는 반항도 아주 온순하고 최소한도 이고, 부모들의 이상한 행동을 진심 걱정하면서도 떼쓰거나 요란하게 굴지 않고, 마치 민폐덩어리 어른들보다 더 철든 아이들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순수한 동심은 유지하고 있고.
존 카사베츠 감독은 이 별로 행복하지도 않고, 별로 구경하고 싶지도 않은 이들 가족의 일상을 통해서 과연 뭘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까요? 그 이전에 60년대 후반, 아메리칸 뉴시네마 시기부터 시작된 '비 낭만적 미국영화'의 경향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게리 쿠퍼, 존 웨인 시대의 영화들은 당연히 낭만적이고 드마라틱하고 권선징악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잘났고 반짝이는 빛나는 존재들이었고, 하지만 60년 후반부터 일탈적인 영화들이 많이 쏟아집니다. 유성영화 1세대 스타들이 대부분 퇴조하고, 스타에 의존하는 영화가 아닌 탈선하는 느낌을 주는 영화들. 은행털이 2인조를 주인공으로 하는 서부극 '내일을 향해 쏴라' 유사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모두 범죄자들이 주인공이지요. 범죄자 남녀를 주인공으로 하여 놀랍게도 크게 한탕을 성공시키는 엔딩으로 끝내는 '겟어웨이' 오토바이 폭주족 이야기인 '이지 라이더', 좀도둑 사기꾼과 허우대만 멀쩡한 촌놈을 등장시킨 '미드나이트 카우보이' 인디언 대학살이나 추악한 주인공을 내세운 수정주의 서부극인 '솔저 블루'나 '헌팅 파티' 등.
이렇게 낭만보다는 일탈적인 사회현상속으로 들어간 영화가 많았고, 그렇게 70년대가 시작되면서 유성영화 1세대의 헐리웃 스타시스템의 사실상의 종말이 오고, 이제 여러 사회물들이 진출하게 되면서 좁은 스튜디오 촬영을 벗어나 카메라는 거리로 나가게 됩니다. 이 와중에 한 가정, 몰락하는 가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결코 행복하지는 않은 가정, 거기서 힘겹게 살아가는 일상을 다룬 영화가 '영향 아래 있는 여자'입니다. 영화 초반부나 중반부 전개를 보면 뭔가 결국 터질 것 같은 불안감이 영화내내 가득하지만 오히려 영화의 엔딩은 가장 '평화로운 장면'으로 끝납니다.
존 카사베츠 감독은 정신이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데 1963년 '기다리는 아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이미 그런 경향을 보여주었고, '얼굴들'이라는 영화에서도 인간군상들의 불편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대표작이 되어 버린 '영향 아래 있는 여자'는 불안정하고 유지 자체가 힘겨워 보이는 가정을 무대로 특정 사건, 특정 시점을 불규칙하게 선정하여 그 상황을 오래도록 보여주는 그런 기법으로 영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현실은 낭만적이지 않고, 특히 서민층 가족의 일상은 이렇게 위태위태 하다는 것, 하지만 그게 가정파괴나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영화의 평온한 엔딩처럼,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영향 아래 있는 여자'라는 제목이 좀 이상한데, 사실 우리말로 해석하기가 좀 어려운 제목입니다. 'Under the Influence'는 원래 술취한, 알콜의 영향을 받은 이라는 의미로 주로 쓰이는 숙어인데, 이 영화에서 그런 해석을 하는 건 적절치 않고, 무언가에 영향을 받야서 비정상적으로 행동하는 그런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데 직역 해석인 '영향 아래 있는 여자'는 좀 부자연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영향 받는 여자'라고 하는게 그나마 더 매끄러울까요? 다른 영화에서 따온다면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가 가장 어울려 보입니다.(페드로 알모드바르 감독의 유명한 작품이지요) '지배를 받는 여인'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존 카사베츠 감독의 영화들이 저예산의 사회물들이지만 이 영화는 2시간 반에 달하는 제법 긴 시간의 영화입니다. 특정 상황을 오랜 시간동안 다큐메타리를 보여주듯이 보여주는 그런 방식 때문에 몇 개의 에피소드 상황이 묶여져서 총 러닝타임이 길어졌습니다. 그만큼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지나 롤랜즈의 열연이 인상적이고 형사 콜롬보로 유명한 피터 포크의 신경질적인 연기도 돋보입니다. 사건은 일어나지만 '영화적인 해결이나 결말'은 없는, 사실상 그냥 일상을 보여주다 끝난 독특한 작품이지요. '관객들아, 미안하지만 삶에 판타지는 없어'라고 일침을 가하는 듯한 영화입니다. 몇 달 죽도록 고생하고 인생의 바닥 직전까지 가지만 마지막회가 될 때 등장인물이 다 착해지고, 주인공은 땡수가 나는 우리나라 일일 드라마의 패턴과는 완전히 상극인 영화지요.
ps1 : 아시다피시 존 카사베츠와 지나 롤랜즈 부부는 1954년 결혼해서 1989년 존 카사베츠가 사망할때까지 35년을 같이 살았습니다. 부부로서도 평생 같이했지만 영화적 동반자로서도 감독과 배우로 여러 영화에서 함께 했습니다.
ps2 : 피터 포크와 존 카사베츠는 꽤 절친한 관계였고, 이 영화에 존 카사베츠와 지나 롤랜즈의 실제 가족,친인척들이 많이 출연했다고 합니다.
ps3 : 지나 롤랜즈는 매서운 눈빛을 가진 여배우라서 그런지 '글로리아'같은 영화가 잘 어울렸습니다.
ps4 : 부부가 나란히 아카데미 감독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지나 롤랜즈는 골든 글로브 드라마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출처] 영향 아래 있는 여자(A Woman Under the Influence 74년)|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