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왔다. 지리산 어느 골짜기 토굴이라며...
늙은 산승인디 정토마을 스님 맞는기요
네 ~ 그렇습니다.내가 시님을 좀 만나야 허는 디 언제 시간 있으면 지리산에 올 일 없소?
무슨일이신지 제가 바로 찾아 뵙겠습니다. 그라믄 고맙제요
물어물어 토굴인지 움막인지 알 수 없는 그곳을 찾았다.
60세 정도 된 노스님 이 누워 계신다.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라곤 찾을 수가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드시고 살았는 지 ... 여기저기 먼지가 소복하다
이게 뭐람...도대체! 움푹 꺼진 눈 속에 눈빛만 초롱초롱했다
늦은 봄이라 토굴 안은 습했다 .
그래서 그런지 깔고 누운 이불에서 곰팡이 냄새가 심하고 짜면 물이 나올것 만 같았다.
스님 어디 아프세요 ? 이렇게 아픈 지 두 해가 간다고 하셨다.
왜 병원에 는 안가시고요...
스님은 그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누가.....말끝을 흐리신며 눈 속이 붉어지신다.
어떻게 저의 전화번호를 아셨나요?
응 내가 맨날 라디오 불교 방송을 듣제
언제 들어본께 시님이 아픈 사람도 거두어 주고 죽으면 송장도 치워주고 헌다고 해서
내가 나중에 쓸 일이 있을것 같아 전화해어 알아놨제
그랬군요 스님 제가 도울일이.... 스님은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워 앉으시더니 베고 있던 베개를 끌어안고 지퍼를 여셨다
내가 이불 밑에 손을 넣어 봐더니
이불이 바닥에 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얼마나 오래동안 깔고 누워 있었으면...
스님은 검게 곰팡이 슨 돈 만원짜리 3백 장을 꺼내 놓으셨다 .
뱅원짓는 다고 했제 나이거 팽생 살고 남은 건디 작지만 시님에게 줄라고... 얼마 못살 것 같아서...
나는 그 순간 미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고 슬펐다.
내 이 육신 덩어리 죽고 난 뒤 누가 와서 보고 돈 한 푼 없이 죽었다고 욕할까봐 그동안 안써고 모아 두었제
가져가시게 ... 그리고 뱅원은 꼭 지어야 허네 꼭
스님은 내 손을 잡고 날 똑바로 쳐다보셨다.
부탁이 있어, 가끔 전화나 주오. 안 받으면 나 죽은줄 알고 .... 뱅든께 외로워 사람이 그립데...
스님 병원으로 같이 가주세요
하고 부탁드렸지만 고개를 흔드신다.
뱅원 의사가 다 틀렸다고 절에 가서 잘 묵고 쉬라고 하데
폐암인가 뭔가 그거래 오래 살았지 뭐. 여한~~없어
이 도둑놈 ! 펭생 부처님 복으로 밥이나 공짜로 얻어 묵고
공부한다고 젊었을 때는 선방에만 앉아 있다 보니 ....
스님 본사가 어디세요 ?
다 소용 없는 일일세 내가 복을 짓지 못하여 요렇제
상좌는요 ? 몇번 보이더만 못 본 지가 꽤 되제
정토마을로 갑시다 스님... 내가 무슨 염치로 ... 나 고마 여기서 죽을라고...
기침을 심하게 하셨지만 정신은 맑으셨다.
폐암은 유독 기침과 호흡곤란이 심한것이 특징이다.
가세요 제가 모시고 살께요. 네? 스님! 멀어서 제가 자주 못온단 말이예요 스님을 이렇게 두고 제가 어떻게 가요
간곡히 애원 했지만 소용이 없어다 그저 고개만 흔드셨다.
이거나 챙기소
이 돈 스님 저 이돈으로 병원 못짓겠습니다 . 스님이 다 쓰시고 가셔야 해요 저는 못해요.
흐르는 눈물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을 돌아보며 이것 저것 살펴보았다.
한 평생 선객이였던 스님은 결제 기념사진과 좋은 시절 찍었던 사진들이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나중에 영정 사진으로 쓸 만한 것으로 하나 골라 챙겼다.
뭐 할려고... 두고 볼려고요 스님
스님과 나는 타협을 봐야 했다. 더 많이 아프시면 내 곁으로 오시기로..그리고
돈은 스님 떠나시고 나면 내가 알아서 쓰기로
대책이 안 서는 이 사항에서 나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 했다 .
스님을 가장 위하는 일이 무엇일까 구례 시내를 다시 나와서 나는 시장을 보았다.
이불 새로 사고 드실 음식 . 휴지. 보리차. 약. 시계. 건전지 수건. 전기팩. 찜질기
등을 준비해 다시 갔다.
스님과 나는 수십 년 알고 지낸 사이처럼 금방 친해졌다.
목욕시키고 면도 삭발을 해드리니 나도 허리가 안 펴져려고 한다.
깊은 산중 병든 육신 속에 묻힌 진리의 보석을 만났다
너무나 순수하시고 고결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나만 느낄수 있는 행복이다...
그 이후로 몆 번 다녀왔고 전화는 매일 드렸다.
나 안죽었구마~~바쁜디 뭐하러...
한결같은 말씀이다.그리고 스님은 34일만에 홀로 돌아가셨다.
전화를 받지 않아 달려갔더니 반드시 누우신 채 이승을 떠나 벌써 시신이 싸늘하게 식어져 있었다 .
지난밤 저녁나절 통화를 했는데 ...밤사이
만 원짜리 3백 장은 한지에 곱게 말아 머리맡에 놓아두시고 그렇게 떠나셨다.
119로 스님을 모시고 청주 장례식장에 모시고 3일 장을 치렀다
텅 빈 영정앞에 나는 사흘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앉아 있었다. 그리고 스님의 흔적을 다 태워드렸다 .
뼈가루 생전에 공부하시던 산천 솔밭 아래 뿌려드리고
바위에 앉아 뭉실 뭉실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스님의 죽음을 통하여 나는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갑자이 힘이 났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가슴에 자신감이 생겼다
입 있고 말할 줄을 아는 사람은 다 말씀해 보시기를....
스님 해 볼께요. 이 몸을 던저 반드시 요양 병원을 지어서 드리겠습니다. 도와주세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스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여 눈물이 흐른다.
죄송하고 송구한 이 마음 ....
나는 스님께 3 백 장이 아니라 3만억 장을 받았다.
텅빈 토굴은 더 치울것이 없었다 .
물질이 난무하고 탐욕의 강물이 흘러 넘치는 이세상에 .... 스님은 그렇게 이슬이 되어 가셨다.
비오는 이 아침 ...스님을 그리며 영전에 정례를 올립니다.
부디 맑은 연꽃으로 이 사바에 다시 오시어 큰 스승이 되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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