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제물포濟物浦가 있었고, 일본에 나가사키長崎가 있었으며, 미국에 뉴욕City of New York이 있다면 중국에는 상하이上海가 있노라고 할 수 있겠다. 외국 문물이 처음 들어오는 개항지는 문화의 충돌뿐만이 아니라 전략적 정치.경제의 충돌이 일어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무력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첫 개항지에는 애잔하고 가슴 아픈 사연들과 함께 국경을 초월한 무심한 낭만이 정처 없이 흘러 다니기 마련이다. 그런 원초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원래는 한적하고 조그마한 바닷가의 포구였던 상하이가 지금은 세계의 한 중심을 이루는 국제도시로 변모해 있다. 상하이는 전통과 현대가, 중국 것과 서양 것이, 그리고 신구세대가 제각각 제 목소리를 토해내고 있는 퓨전 도시이다. 눈에 튀는 비조화非調和가 나름 격을 갖추고 있는 상하이를 지나는 방문객이라면 누구라도 가슴에 쌓이는 감회와 몇 마디 소감이 없을 수 없겠지만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상하이에 장마철 있다면 창 밖으로 먹구름을 내려다볼만한 높이에서 시내를 굽어보면서 초등학교 이래로 해왔던 오래된 습관, 그럼 또 써 볼까? 를 시작한다.
일본 방문 길에 호텔에서 묵어가게 될 때면 곧잘 겪는 일이지만 좁은 룸과 얇은 벽 때문에 옆방의 소음이 신경 쓰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에 비하면 상하이 호텔은 방음이라는 면에서는 아주 쾌적하다. 소리에 민감한 사람은 벽 너머로 들려오는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T.V 소음, 두런두런 하는 대화 소리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그러한 소음으로부터 해방된다면 일단 좋은 숙소의 ⅓의 조건은 갖춘 셈이다. 짙은 자주색이나 베이지색의 이중 커튼을 젖혔을 때 ‘흠~’ 하는 감탄이 나오면 또 하나의 ⅓이 해결된 셈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샤워기의 물줄기가 세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좋은 숙소에 대한 욕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는 몇 가지가 더 추가되지만 그 중 한 가지가 필기구로 연필이 비치되어 있을 때 내 만족감은 급상승한다. 상하이에서 묵은 호텔은 창 밖의 경치나 샤워기의 물줄기는 칭찬받을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머리맡 스탠드 옆과 책상 위에 두 자루의 연필이 놓여 있었다. 그럼 됐다. 9월로 며칠째 들어선 어젯밤, 다시 돌아온 가을을 환영하는 뜻으로 이츠와 마유미五輪眞弓의 고이비토요戀人よ를 흥얼거리다 잠에 들었다.
枯葉散る 夕暮れは 來る日の 寒さを ものがたり
가레하치루 유쿠레와 구루히노 사무사오 모노가타리
마른 잎 흩어지는 황혼은 다가오는 추위를 이야기 하고
雨に 壞れた ベンチには 愛を ささやく 歌もない...
아메니 고와레타 벤치니와 아이오 사사야쿠 우따모나이
비에 낡은 벤치에는 사랑을 속삭이는 노래도 없이...
새벽에 눈을 떴을 때, 생소한 분위기 속에 홀로 있다는 걸 서너 번 반복하면 내가 누워있는 여기가 집이 아니라 낯선 호텔이라고 느끼더라도 더 이상 허전해 하지 않는다. 벌써 익숙한 여행자가 되어 시간을 확인하고 그날 일정을 체크한다. 4시30분. 이중 커튼을 젖히고 야경과 다를 바 없는 새벽 풍경을 내려다본다. 새로 확장되고 있는 시 외곽의 개발 지역답게 질서정연한 블록을 구획 짓는 가로등불 줄들이 기름 발라 빗어 넘긴 가르마처럼 가지런하다. 붉은 등불이 넘실거리는 지붕 아래는 수천 개의 꿈들이 무르익어 가고 있을 테고, 하루가 짧은 가장과 주부들은 밤새 서로를 감았던 팔을 풀고 이른 아침 맞을 준비를 시작하겠지. 움직임이 없는 풍경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으면 구석진 자리에 걸려 있는 정물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가슴 밑바닥부터 조금씩 슬픔이 고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만 그런가?
달릴 채비를 갖추고 방을 나선다. 05시. 규모가 큰 호텔일수록 아침이 빠르다. 일층 로비의 프론트 데스크 안은 7,8명의 근무자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와 더 큰 공기 속을 가볍게 거닌다. 밤을 좋아하는 사람은 새벽도 좋다. 호텔 앞마당에 차려놓은 정원을 지나 가로등 가지런한 도로로 나서니 주위는 번잡하지 않은 도시외곽 풍경이다. 오른쪽 길로 조금 올라가니 큰 대로와 맞물린다. 가끔씩 대형 트럭이 굉음을 내며 달려가는 뻥 뚫린 왕복 8차선은 하염없이 어딘가를 향해 스스로를 내던지고 있다. 저 끝부분이 훨씬 어두운 왼쪽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려 걷기 시작한다. 쑤저우나 항저우에 비해 신선도가 덜 할 것 같은 새벽공기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조금조금 빠르게 걷다가 이윽고 달리기 시작한다. 유한공사有限公司라는 팻말이 붙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길을 따라서 시선을 출렁이며 앞으로 계속 달려간다. 눈길이 가다 멈추는 검은 하늘의 가장자리에는 산의 음영이 없어서인지 스카이라인이라 부르기도 싱거운 키 작은 지붕과 지평선이 이어지는 흐릿한 선이 맞닿아 있다. 낭만과 산업화가 한데 모여 조화를 이루기는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부옇게 밝아오는 기운을 몸으로 느끼며 오늘은 어디만큼 갈까 하고 눈에 힘을 주며 눈의 초점을 멀리 더 멀리 맞춰본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오늘 아침에도 얼마만큼 가든지 돌아와야 할 길을 나는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만큼 왔니 어디만큼 왔니 지금쯤은 어디니
대문 밖에 있니 동구 밖에 있니 더 멀리 왔니
빨리 가면 안 돼 빨리 가면 안 돼 살펴 가며 가야잖니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다치잖니
너무 가면 안 돼 너무 가면 안 돼 돌아갈 땐 멀잖니
돌아가는 길은 슬플지도 모르잖니
어디만큼 왔니 어디만큼 왔니 지금쯤은 어디니
십리만큼 왔니 백리만큼 왔니 더 멀리 왔니
빨리 가면 안 돼 빨리 가면 안 돼 생각하며 가야잖니
함께 가는 길이 틀릴지도 모르잖니
아주 가면 안 돼 아주 가면 안 돼 돌아갈 수 없잖니
마지못해 함께 가는 길은 슬프잖니
<어디만큼 왔니, 남궁옥분>
몇 번을 저기까지 만 저기까지 만하면서 지나쳐온다. 이번에는 정말 저기까지 만이다 하면서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지나면서 바라보니 휘어진 길 끝에 키 큰 검은 건물이 서 있다. 거기까지 가면 휘어진 길 그 너머가 다 보일 것 같아 달려가고 싶지만 막상 그곳에 가고나면 또 가야할 길이 분명 보일 것이므로 그냥 여기서 돌아 서기로 한다.
그렇게 돌아왔다. 마지못해 돌아오기 보다는 내가 돌아오고 싶어 할 만큼의 거리까지 갔다가 노래도 흥얼거리고 주변의 경치도 구경을 하면서 돌아오는 길이 미처 슬플 겨를이 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일부러 흥겹게 돌아왔다.
첫댓글 저는 어제하루 차가워진 거리를 거닐며 '고이비또요'를 내내 흥얼거렸답니다. 우연히도,,오랜만에 말입니다. 가레하찌루 유우구레와~♪~~'
다음엔 나가사키도 써 주시죠...마담 버터플라이의 가슴 아픈 사연과 함께~~ㅎㅎ 초등학교 때 부터의 오래된 습관, 또 써볼까?..이러한 재능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대신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