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17 - 19. 1. 6 서울시의회사무처 중앙홀전시장 (세종대로, T.010-4167-8436)
기억의 단면들 그리고 정체성
김정득 개인전
글 : 김정득 작가노트
개개인의 삶이라는 실존적 명제에서 우리는 매 순간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이것을 기억으로 보관한다. 인간이 숨쉬는 동안 모든 감각들은 자신의 몸에 기억되고, 연속적 일상과 우연의 사건들이 쌓여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정체성이 고정되거나 일관적이지 않다는 개념은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롭게 형성된다는 뜻이다. 정체성은 유동적이면서 놓여지는 맥락에 따라 계속 변형된다. 나의 작업은 사적인 기억과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정체성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다. 또한 정체성은 나의 기억, 경험 그리고 그것을 쌓은 시간의 층위에서부터 시작됨을 알 수 있다.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영화감독인 루이스 부뉴엘(Luis Buñuel)은 그의 저서 「My Last Sigh」에서 기억에 관해 이렇게 서술한다.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면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는 삶은 삶이라고 조차 할 수 없는 것을, 우리의 일관성, 이성과 감정, 심지어 우리의 행동까지도 기억이 있으므로 존재하는 것을.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그의 말처럼 기억이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입고, 어떤 물건을 욕망하는지를 통해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유행분석가인 다비트 보스하르트(David Bosshart)는 “현대인의 정체성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달린 게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소비하느냐에 달렸다”라고 말한다. 즉 소비는 적극적이고 가시적인 삶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구체적인 소비행위가 타인과 다른 ‘나’를 구별지어 주고, 구입한 상품은 ‘나’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21세기의 소비의 형태는 택배상자로 대표될 수 있다. 나는 주관적인 정체성을 대변하는 대상으로 택배상자를 소재로 선택하였다. 택배상자에는 우리의 생존을 위한 필요와 우리가 꿈꾸는 욕망이 담겨있다. 더불어 우리의 허영과 충동도 담겨있다. 그리고 반품상자에는 우리의 후회가 담겨있다. 현대인의 삶에서 집 앞에 매일 배달되는 택배상자에는 바로 ‘나’가 담겨있다
파편화된 기억들을 회화, 사진, 설치 등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하여, 무의식에 존재하는 공간과 시간의 층위를 발견하며, 왜곡시키고 지워졌던 기억들을 회상하면서 그것들이 구성하는 정체성 즉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