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책소개>
1900년대 초 이탈리아 사르데냐의 산골 마을,
일요일이면 행상 할아버지의 짐을 싣고 나타나던 말 한 마리.
그 말은 왜 가짜 꼬리와 귀를 달고 있었을까?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떠올린 유년기의 기억
이탈리아 공산당을 설립하고 국회의원이 되어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에 저항했던 안토니오 그람시. 그는 파시즘 정권에 의해 20년이 넘는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고통을 겪었지만, 30여 권에 달하는 노트에 글을 남기고 떠났다. 이는 그의 사후 여러 권의 책으로 출판되어 많은 이들의 정신을 깨우고 가슴을 울린 대작이 되었다. 그중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 현실과 그람시 개인의 내면이 담긴 에세이 집으로, 아름답고 수려한 문체와 인간애가 넘치는 작품이란 평가 속에 이탈리아 문학상을 받았다. 이 편지 모음집에는 가족과 친지에게 보내는 글이 들어 있다. 그중에 아들 델리오에게 보낸 편지는, 자식을 향한 애틋함이 그의 어린 시절 추억을 불러일으킨 듯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펼쳐지는 현실과 환상의 알레고리
갓 태어난 망아지의 귀와 꼬리를 싹둑 먹어 치우는 여우의 이야기를 듣고, 아들 델리오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 이야기는 아이의 관점으로 들여다보아야 그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의 세계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하고 세상은 마법과도 같은 공간이다. 아이에게 귀와 꼬리가 없는 말은 호기심의 대상이면서 불완전하고 낯선 존재였을 것이다. 마치 아름다운 세계 이면에 존재하는 불완전한 현실의 은유처럼.
잔혹성은 생명의 원초적인 속성이다. 자연의 섭리는 때로 어린아이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섬뜩함으로 남기도 한다. 아이들은 낯선 존재를 경계하며 자기 세계에서 분리하려 하고, 짓궂은 아이들은 귀가 없는 말을 놀려 대는 행동으로 두려움을 숨긴다. 행상 할아버지가 말에게 가짜 귀와 꼬리를 달아준 데에는 아이들의 놀림으로부터 말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순수하고 완전한 아이들의 세계를 지켜주려는 따듯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명에 대한 연민과 경이로움이 공존하는 세계
이야기 후반부에 그람시는 여우를 마주친 순간을 들려준다. 밭에서 여우를 처음 본 순간, 놀라움과 동시에 느껴지던 아름다운 생명체의 모습, 자신에게 아무런 두려움도 보이지 않던 여우에게서 느낀 경외감이 묘사된다. 갓 태어난 망아지의 꼬리를 잘라 먹는 잔혹한 여우지만, 선악으로 재단할 수 없는 생명체의 완전함과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나이 어린 그람시의 시선!
그는 아들에게 선과 악이 대립하는 평면적인 세계 대신, 생명에 대한 연민과 경이로움이 공존하는 입체적인 세계를 보여 주려고 했던 것일까? 이야기 속에서 그람시는 가족과 다름없는 망아지에게 안쓰러운 눈길을 주면서도, 여우의 야성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며 어느 한쪽 편으로 기울지 않는다.
긴 꼬리를 치켜세우고 번개처럼 내달리던 여우의 뒷모습은 그가 어른이 될 때까지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았다. 마법 같은 순간을 남기고 사라진 여우의 이야기는 갑작스레 끝나지만, 백일몽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
비올라 니콜라이의 그림은 투박한 듯한 터치와 강렬한 색채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다. 오래전 기억을 더듬는 내용에 걸맞게, 정교한 묘사보다는 전체적인 인상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꿈속이나 어린 시절 기억이 묻혀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사유하는 느낌이 든다. 사르데냐의 독특한 풍광이나 주변 사물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며, 화폭을 차지하는 대상의 크기나 비중을 마음의 눈으로 파악하는 화가의 그림 스타일 때문일 것이다.
첫댓글 작가가 감옥에서 고통을 받으며 씌여졌던 책이라니 곡 읽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