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카르마란,
인연이 닿아 나타나는 것에 의해,
비로소 사람은 그것을 알아채고,
나타나지 않으면 이해도 할 수 없고,
수정도 불가능하게 된다.
표현의 형태가 크게 발전하면 말법이 되어,
사회가 혼란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카르마를 카르마로서 인정하지 않고,
그냥 넘기고 말면,
새로운 카르마를 만들어
혼란을 더욱 심화시키는 일도 일어난다.
이렇게 해서 말법과 정법의 시대는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과정속에 있는 것 같지만
과거세의 카르마가 그대로 나타나는 일은 없다.
그대로 나타난다고 하면
인류는 옛날에 이미 멸망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일은 절대로 없는 것이다.
우리는 현상계(이승)와 실재계(저승)를 끊임없이 왕복하면서
윤회를 반복하고 있지만,
현상계(이승)의 카르마는
실재계(저승)에서 어느 정도 수정되어,
다시 이 지상에 태어나기 때문에,
남겨진 카르마를 어떻게 훌륭히 수정하는가가
우리의 과제이며,
훌륭히 수정되는 시대를 정법의 시대라고 하고
맹목에 빠진 시대를 말법의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 인간 석가에서 )
; 업은 인연에 닿아서 나타나고,
인연이 닿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아서,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저지른 실수는
인연에 의해서 나타난 업....
내가 수정해야 할 업...
실수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나의 업...
실수를 괴로워하는 번뇌가 수정해야 할 업이구나.
업을 수정하는 것이 바로 번뇌즉 보리의 뜻이구나.
번뇌즉보리란 업을 수정하는 것이구나...
출처: 부처님의실천!팔정도! 원문보기 글쓴이: 오로지팔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