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올해 성장률 또 낮춘다… “1.7% 밑으로”
작년 11월 1.7%전망, 내달 하향… 高물가 속 경기침체 우려 커져
기준금리 3.5%로 0.25%P 올려… “물가 여전히 높다” 7연속 인상
한국은행이 경기 침체 우려를 반영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현재 1.7%에서 또다시 낮추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실상 1%대 초중반의 성장률을 전망한다는 뜻으로, 고물가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성장 전망은 점점 더 악화되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도 더욱 커지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3일 오전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3.50%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지난해 4·5·7·8·10·11월에 이어 7차례 연속으로 금리를 올린 것이다. 미국(4.25∼4.50%)과의 기준금리 격차는 1.00%포인트로 좁혀졌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오름세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0%로 지난해 7월(6.3%)을 기점으로 떨어지고 있지만 한은의 물가목표치(2.0%)를 여전히 크게 웃돌고 있다.
한은은 또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해 11월에는 1.7%로 봤는데, 그 사이 지표를 볼 때 성장률이 그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한은은 2월 발표하는 경제전망보고서에 구체적인 수정 전망치를 내놓을 예정이다.
이 총재는 현재 한국 경제가 경기 침체 ‘보더라인’(경계선)에 있다며 지난해 4분기(10∼12월) 역성장도 기정사실화했다.
이창용 “작년 4분기 역성장 가능성”… 시장선 향후 금리동결 기대
한은 “올해 성장률 1.7% 밑돌 듯”… 수출-소비-투자 부진 ‘침체 그림자’
“금리 더 올릴지 놓고 3 : 3 팽팽”동결 전망에 국고채 금리 하락
한국은행이 기존에 전망한 1.7%보다도 낮은 경제성장률을 예상하면서 한국 경제에 침체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세계 주요국의 경기 부진으로 수출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민간소비와 투자 등 내수마저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기관들이 올해 1%대 중반의 성장률을 예상하는 가운데 해외 투자은행(IB)들은 0%대, 심지어 마이너스 성장의 가능성마저 열어놓고 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한은이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 속에서도 금리를 추가로 인상할지에 쏠려 있다. 5%대 고물가를 생각하면 금리를 더 올려야겠지만 최근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환율도 안정을 되찾으면서 상황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올 연말부터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 올해 성장률 1% 초중반 가능성
이창용 한은 총재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성장률 하향 조정을 시사한 이유에 대해 “중국에서 코로나19 환자 수가 늘면서 경제 상황이 생각보다 더 나빠졌다”면서 “선진국에 대한 수출이 줄고 국내에서도 소비 감소가 예상보다 컸다. 상반기는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작년 4분기(10∼12월) 성장률에 대해 “중국 코로나19 확산, 반도체 경기 하락, 핼러윈 참사 등으로 지표가 나쁘게 나와 음(―)의 성장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한은은 지난해 2월만 해도 올해 성장률을 2.5%로 내다봤지만 이를 계속 낮춰 왔다. 한은이 기존 전망치(1.7%)에서 추가 하향을 사실상 공식화한 만큼 2월에 발표될 수정 전망치는 1%대 중반 이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글로벌 각국의 긴축 등 대외 악재에 화물연대 파업 같은 내부 요인이 중첩된 결과다.
정부의 경기 인식도 악화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물가가 높은 수준을 지속하는 가운데 내수 회복 속도가 완만해지고 수출 감소와 경제 심리 부진이 이어지는 등 경기 둔화 우려가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8개월째 지속된 ‘둔화 우려’ 표현이 이달에는 ‘둔화 우려 확대’로 더 심각해졌다.
자영업자들의 체감 경기도 나빠졌다. 소상공인연합회의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73.8%가 올해 경영 여건이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 시장에선 “앞으로 동결” 기대감
이제 시장의 관심은 금리 종점과 인하 시점에 쏠려 있다. 지난 회의까지는 고물가 대응이 우선이었는데 이번 금통위에서는 경기침체 우려도 그에 못지않게 위원들 사이에서 쏟아져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새해 첫 통화정책회의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이날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연 3.50%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 총재는 이날 “금통위원 중 3명은 최종 금리를 3.50%로 보고, 나머지 3명은 상황에 따라 3.75% 가능성도 열어두자는 의견이었다”고 전했다. 앞으로 추가로 금리를 올릴지, 일단 현 수준에서 지켜볼지 금통위 내부에서도 입장이 팽팽히 갈린다는 뜻이다. 금통위원 만장일치로 금리 인상이 결정됐던 지난 회의와 달리 이번엔 동결을 주장하는 소수의견도 두 명(주상영 신성환)이나 나왔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오랜 금리 인상을 마치고 이제 동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해석이 많았다. 이런 기대감을 반영해 이날 국고채 금리는 일제히 하락했다. JP모건도 이날 보고서에서 “한은이 추가 인상 없이 기준금리 3.5%를 유지할 것”이라며 올해 한국 성장률을 한은 전망치보다 낮은 1.1%로 제시했다.
금리 인하 시점도 관심이다. 이 총재는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면서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앞서 금리 인하를 결정할 가능성은 열어뒀다. 그는 “미국 금리가 굉장히 빠르게 올라갈 때 우리가 반대 방향으로 가기는 어렵지만 지금은 미국이 페이스를 조절하기 시작했다”며 “국내 상황을 보면서 금리 결정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했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하반기(7∼12월)에 물가 상승 압력이 둔화되고 환율 안정세가 유지된다면 한은이 연준에 앞서 선제적으로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박민우 기자, 세종=김형민 기자, 정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