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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5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국전쟁 참전 벨기에군 첫 전사자 70년만에 고향서 영면에 들다 | 더프리덤타임즈 http://www.thefreedomtimes.news/View.aspx?No=2830470
금일 아침 이 기사를 접하고 눈물이 하염없이 나는 것은 저 뿐만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자국의 귀한 청년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식을 그렇게 보내고 난 뒤 70년만에 고향에서 영면하는 모습을 보고 그 국민들은 어떤 마음일 것이고, 그의 가족들은 또 어떤 심정이겠습니까?
벨기에군으로서 6.25사변 첫 전사자인 故 프란스 로티르스의 추모패 제막식을 현지시간으로 지난 26일 거행되었다고 합니다.
로티르스는 1929년 벨기에 레더에서 태어났으며 1951년 1월 한국전쟁 파병에 지원 후 두달 뒤인 3월24일 경기도 의정부에서 중공군의 심야 기습 공격을 받아 전선에서 사망했습니다.
그의 22살 생일 나흘 전입니다.
유엔군 소속으로 참전한 벨기에 보병대대 첫 번째 전사자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렇게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서 오직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산화한 그는 벨기에의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런데 벨기에의 공동묘지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공감 협소 등으로 파묘를 하는 관행이 있다고 합니다.
보통 이럴 경우 유가족들이 직접 새로운 장지를 찾아 이장을 하지만, 로티르스는 미혼자였기에 가족이 없어서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특히 벨기에는 당시 참전용사의유해를 추적 및 관리하지 않아 그렇게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진 전쟁’으로 남아 버렸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 희생자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감되어서 시청이 직접 나서 로티르스의 유해가 처음 안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공동묘지 담벼락에 설치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하지만 눈물이 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국무총리까지 했다는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이 땅의 입법부에서 7선이나 했습니다. 약 40년을 정치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지난 26일 공교롭게도 로티르스의 추모패가 설치되는 날에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우크라이나 득볼게 없는 나라…윤정부, 겁도 없다”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5/26/2023052690141.html
이렇게 따진다면 당시 GDP(국내총생산) 100불 아니 겨우 5~60불 되는 나라를 위해서 로티르스와 같은 청춘들이 죽었을 이유가 있었을까요?
6.25전쟁 1천129일동안 직접 전투 파병을 한 나라는 16개국으로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벨기에, 캐나다,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프랑스, 그리스,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뉴질랜드,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터키입니다. 여기에 의료지원국 5개국인 덴마크, 인도,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이 있고, 물자 및 재정지원국(지금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하고 있는 것)이 39개국으로 한번 열거를 해 보면,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버마(미얀마), 캄보디아, 칠레, 코스타리카, 쿠바, 도미니카공화국, 에콰도르, 이집트,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아이티(지난 2021년 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본 나라), 온두라스, 헝가리, 아이슬란드, 인도네시아, 이란, 이스라엘, 자메이카, 일본, 레바논, 라이베리아, 리히텐슈타인, 멕시코, 모나코, 파키스탄, 파나마, 파라과이, 페루, 대만, 사우디아라비아, 스위스, 시리아, 우루과이, 바티칸 교황청, 베네수엘라, 베트남, 서독(통일 전 독일), 그리고 지원 의사를 표명한 3개국인 볼리비아, 브라질, 니카라과까지 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인 당시 대한민국에 이렇게 많은 나라가 참전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는 ‘UN’이 지지하고 만들어준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다들 알고 계시듯이 이 나라는 36년간 일제강점기에 있었고, 해방은 우리 손으로 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일본 열도에 원자폭탄 2방을 놓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UN이 개입이 되었고 이 땅의 민중들은 뭐가 뭔 지 모른 체 ‘신탁’이나 ‘반탁’이니 또 그렇게 싸우고 있을 때, 스탈린의 소련에 김일성과 박헌영이 전쟁을 해서 한반도를 소련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공산국가를 만들자고 부추겨서 한 전쟁이 바로 6.25전쟁입니다.
스탈린은 중공의 개입 약조를 받고 우리 모두가 다 아는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에 기습 남침을 합니다.
그렇게 기습 남침을 받은 대한민국은 낙동강 전선만 남겨 둔 체 북괴군의 손아귀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1950년 9월15일부터 19일까지 UN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합니다. 성공 확률이 5000분의 1을 극복하고 상륙에 성공한 UN군과 국군은 마침내 9월28일 서울을 수복합니다. 전쟁 발발 후 95일 만입니다.
이어 10월1일 우리 국군이 북으로 진격을 합니다. 바로 보병 3사단이 선두에 서서 말입니다. 그때 UN군은 38선을 못 넘게 했습니다.
그때 이승만과 맥아더는 북진통일을 하지 않으면 전쟁의 향방을 알 수가 없고 특히 이대로 만약 전쟁이 멈춘다면 저들은 언제 또 도발을 할 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을 했습니다. 그렇게 통일을 앞둔 그때 다음해 1월4일 중공군에 의해서 눈물을 머금고 후퇴를 합니다.
그렇게 전쟁은 1953년 7월27일 휴전까지 이어집니다.
이승만대통령은 앞서 말씀드린 GDP 100불도 안 되는 나라의 대통령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이름도 모르는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부족장 정도일 것입니다.
그 부족장이 우리 국회에 와서 유창한 우리 말로 ‘자유’, ‘반공’을 주장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휴전을 주장하는 미국에게 ‘한미방위상호조약’을 강조합니다. 당시 미국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강력한 미국을 상대로 뭐 볼 것이 있다고 이 나라가 이런 것을 강조 하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게 신의 한수였습니다. 그 조약이 없었다면 우리는 끊임없는 내전 혹은 제2의 6.25로 지금과 같은 나라는 애초에 만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람이 이승만대통령이라고, 그리고 무에서 유를 만든 朴正熙대통령이라고…” 그런데 지금 친북, 종북세력들이 ‘진보’라는 용어 선점으로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김일성 주체사상은 성경을 뺏겼다고 봐야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친북,종북 세력들과 함께 하는 크리스찬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한숨이 난다고도 하셨습니다.
글을 길게 쓴 것 같습니다.
정리하면, 만약 우리나라가 이름도 모르는 아프리카 부족을 도왔고 우리의 아까운 청춘들이 그렇게 산화되어서 아픔을 머물고 살고 있는데, 그 아프리카 부족국가가 몇 십년이 흘러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고 이제 와서 막말을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또, 그 부족 국가의 국무총리가 자신들이 어려울 때 도와 준 나라는 잊고 이제 와서 저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어떤 마음일까요?
모르긴 몰라도 이 땅의 사람들은 당장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나서 그 아프리카 부족 국가와 단교를 하고 또 모든 언론과 정치계는 비방 방송과 연일 규탄을 했을 것입니다.
계산을 따지지 않고, ‘자유’를 위해 함께 했던 나라들을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리적 여건을 어쩔 수 없는 위치이지만 지금처럼 우크라이나에 재정이나 무기 지원은 우리가 그렇게 받은 것에 대한 UN에게 감사의 보답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금일 로티르스의 기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줌과 동시에 이해찬의 기사에는 분노와 함께 새로운 역사 인식을 가져다 주는 것 같습니다.
7년 전에 우리 아스팔트에서 뜨겁게 울려 퍼졌던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가 너무 많이 생각나는 하루 입니다. “너네 "역사 공부 다시 해야 돼!, 세상 공부 다시 해야 돼!, 국민 앞에 사과부터 해야 돼!".
바로 벌레소년의 ‘종북의 시대’라는 노래입니다.
종북의 시대 - 벌레소년 https://youtu.be/frDnsA1Eink
로티르스 뿐만 아니라 호국영령과 순국영령들에게 고마움과 감사의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