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맨(The Men)
1950년 미국영화
감독 : 프레드 진네만
제작 : 스탠리 크레이머
음악 : 디미트리 티옴킨
출연: 말론 브란도, 테레사 라이트, 에버렛 슬론
잭 웹, 리처드 어드맨, 아서 후라도
버지니아 파머, 도로시 트리, 하워드 세인트 존
'더 맨'은 명배우 말론 브란도의 데뷔작이며 많이 알려지지 않은 영화입니다. 많은 영화팬들이 말론 브란도 라는 배우를 2번째 영화출연작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알기 시작했습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부터 이후 출연한 영화 10편 모두가 우리나라에 개봉되었는데 그만큼 1950년대의 말론 브란도 출연작들은 우리나라에서도 굉장히 잘 먹힌 셈입니다. 대조적으로 60년대에 그가 출연한 영화중에서 국내에 개봉한 영화는 '애꾸눈 잭' '체이스' '백작부인' 단 세편에 불과했으니 50년대와 60년대의 말론 브란도가 우리나라 관객에게 얼마나 달랐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더 맨'은 즉 말론 브란도가 1950년대에 출연한 영화중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 미개봉 된 작품입니다. 데뷔작이라고 그냥 그런 영화로 생각하기에는 꽤 수준이 있는 작품입니다. 우선 감독이 프레드 진네만 입니다. 다작 감독은 아니지만 '하이눈' '산하는 요원하다' '지상에서 영원으로' '파계' '사계절의 사나이' 등 그의 작품 이력은 그야말로 수작들의 나열입니다. 거기에 사회파 감독으로 활약했던 명 제작자 겸 명 연출가 스탠리 크레이머가 제작하였습니다. 음악은 40-50년대 영화음악의 거장인 디미트리 티옴킨, 그리고 함께 공연한 여주인공 역할의 배우는 40년대 천사같은 여주인공 역할의 단골인 테레사 라이트...... 데뷔작에서 이 정도의 실력파들과 함께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즉 액터즈 스튜디오 출신의 말론 브란도에게 거는 기대가 상당히 높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력파 영화인들이 함께 참여한 영화인데 결과는? 꽤 수작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프레드 진네만 감독이나 스탠리 크레이머의 대표적 영화들에 비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즉 이 영화로 말론 브란도 뿐만 아니라 두 실력파 영화인들도 자신의 커리어 초기를 단단히 굳히는 발판역할이 된 셈입니다.
상이군인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생애 최고의 해'나 제인 폰다, 존 보이트의 '귀향' 그리고 톰 크루즈 주연의 '7월 4일생' 등의 영화들이 비슷한 소재였지요. 켄(말론 브란도)은 2차대전 당시 장교로 참전하는데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고 하반신 마비가 됩니다. 그에게는 엘렌(테레사 라이트)라는 약혼녀가 있었는데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켄은 한사코 엘렌의 면회를 거부합니다. 하반신 마비의 상이군인들을 담당하는 병원으로 온 켄은 그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독방을 쓰며 좌절의 나날을 보냅니다. 엘렌의 끈질힌 요청에 의하여 담당의사인 브록은 엘렌의 면회를 허용하고 엘렌을 보게 된 켄은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하지만 결국 엘렌의 진심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때부터 켄의 삶은 완전히 변하여 그는 적극적으로 재활에 온 힘을 쏟게 되며 병원 동료들과도 친하게 지냅니다. 점차 마음의 안정과 행복을 찾아가는 켄, 하지만 켄은 스스로에게 다리가 회복된다고 속이고 있었고, 가장 적극적으로 활발히 재활에 참여하던 건강한 동료가 갑자기 종양에 걸리는 불행한 사건이 터지고, 병원내에서 카운셀러 역할을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안정적이던 동료 역시 여자친구에게 뒤통수를 맞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런 와중에 엘렌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켄과의 결혼을 고집합니다.
전쟁에서의 부상으로 하반신 마비가 된 군인들과 그들이 재활치료를 하는 병원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2차 대전 이후 상이군인들이나 퇴역군인들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미국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었고, '우리생애 최고의 해' 같은 작품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신체적 장애, 정신적 장애로 방황하는 군인들의 이야기는 비단 2차 대전뿐만이 아니라 베트남전 이후에도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영화는 이런 소재의 영화들중에서 비교적 꽤 사실적이고 진솔하게 끌어나가는 작품입니다. 특히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담당 의사의 내면이나 고뇌가 잘 보여지고 있습니다. '나는 죽음으로부터 환자들을 살려냈지만 그들이 회복하는 것을 볼 수 없네, 마치 그들의 앞길을 망친 느낌이 들지' 같은 대사나, '우리는 하느님께 기적을 행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또한 불가능한 일을 인정할 수 있는 지혜도 달라고 기도한다'라는 대사도 꽤 가슴에 와닿습니다. 병원에서의 삶이나 재활치료 과정 등도 굉장히 디테일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아주 꼼꼼한 영화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결론을 지어야 할 기승전결 이야기는 바로 남녀 주인공 켄과 엘렌의 사랑에 대한 부분입니다. 과연 두 사람은 장애라는 장벽을 극복하고 행복한 결혼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아픔을 갖고 헤어지게 될까요? 헌신적으로 켄의 곁을 지키려는 엘렌, 결코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그에게 동정을 한다는 느낌을 주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배려를 안해서도 안되고... 둘간에 벌어지는 행복과 갈등, 그리고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 의사와의 상담 등 이 문제에 대해서 꽤 깊이있고 진지하게 고민한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판타지나 억지 감동도 없고.
'만약 그녀가 사고를 당했다면 자네는 그녀를 버렸을 건가?'라고 켄에게 묻는 의사의 질문도 매우 인상적인 대사입니다. 말론 브란도는 데뷔작이지만 쉽지 않은 역할을 무난히 잘 해내면서 훗날 괴물 연기자가 되는 배우의 데뷔 모습에 대한 궁금증을 이 영화로 해소시켜주는데, 역시나 포스가 있는 존재감을 나타냅니다. 상대역으로 등장한 테레사 라이트는 전형적으로 이런 부류의 영화에서 천사같은 여인역할 전문 배우라 할 수 있는데 데뷔작인 '작은 여우들'에서도 착하고 순수한 처녀를 연기했고, 이후 '미니버 부인' '양키스의 자부심' '의혹의 그림자' '우리생애 최고의 해' 등의 영화에서 모두 헌신적이거나 착한 여인역을 연기했습니다. 더 맨' 출연 당시에는 32세로 26세의 말론 브란도의 상대역을 하기에는 나이가 좀 많았지만 이런 역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여배우라서 출연하게 된 것 같습니다.
막연한 희망보다 회복되기 힘든 장애에 대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고 있고, 영화는 대체적으로 너무 극단적이지도 않고, 너무 희망적이지도 않습니다. 이런 소재를 다룬 영화중에서는 재미나 완성도, 전달감과 설득력 등 전체적으로 고르게 무난한 작품입니다. 말론 브란도, 스탠리 크레이머, 프레드 진네만, 디미트리 티옴킨 등 추억의 거물들이 함께 작업하여 완성한 수작 영화이고 20세기의 명배우 말론 브란도가 탄생한 의미있는 작품입니다.
ps1 : 이 희귀한 영화가 DVD가 출시되었는데 화질을 매우 깨끗하나 아쉽게도 자막이 너무 엉망입니다. 자막의 길이조절과 크기조절도 엉망이고, 번역의 질도 엉망입니다. 100점 만점에 30점 정도. 출연자들이 상대에게 존대말을 했다가 반말을 했다고 뒤죽박죽이고, 오타 투성이이며 어색한 직역해석도 많고.....더구나 오프닝에 나오는 안내자막에 대해서는 번역도 안되어 있습니다. 돈 주고 파는 물건이라면 최소한의 기본은 되어야 할텐데.....
ps2 : 스탠리 크레이머와 프레드 진네만은 이후 '하이눈'에서도 제작자와 감독으로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
ps3 : 출시제목이 '더 맨'인데 원제는 'The Men' 으로 복수형입니다. '남자들' '용사들' 뭐 이렇게 제목을 붙여도 무난한 듯 싶군요.
ps4 : 이 영화의 오프닝에 의사가 회진을 하면서 환자들 한 명 한 명과 면담하는 장면이 꽤 길고 디테일하게 나오는데 이 장면은 1951년 영화 '안나'의 초반부의 장면과 참 비슷한 느낌입니다. 두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나왔으니(더 맨이 1년 빠름) 다른 영화를 참조한 것은 아닌데 참 우연 같네요.
ps5 : 국가에 충성, 애국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초등학생에게도 전투적 노래를 가르치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소재의 영화들은 사실상 70년대까지는 대부분 수입이 되지 않았고 80년대에도 거의 외면받았습니다. 반전영화인 '지옥의 묵시록'도 뒤늦게 개봉되었고, 존 보이트, 제인 폰다의 '귀향'도 개봉되지 않았고, '풀 메탈 자킷'도 한참 뒤에 개봉했고, '자니는 전장에 갔다'는 더더욱 개봉되지 않았지요.
[출처] 더 맨(The Men 50년) 말론 브란도의 데뷔작|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