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를 연구하는 모임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우리의 전통의상인 한복과 일본의 전통의상인 기모노에 대해서 비교한 내용입니다.
도쿄는 봄꽃이 지는가 하고 느낄때면 어느새 여름의 시작이다. 비와 습기와 더위가 3박자를 이루며 다가온다. 그리고 이제 여름이 갔나 싶으면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이 태풍이다. 그것을 실제로 겪어본 사람은 지난날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자연이란 얼마나 가혹한 것이었을까 하고 느낀다. 그런 가혹한 자연환경이 일본인을 부지런한 사람으로 만들었을지 모른다.
"아프리카의 꿀벌은 게으르다"는 말이 있다. 겨울이 없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아프리카의 꿀벌은 열심히 꿀을 모아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꿀을 모아 놓지 않더라도 주변 어디에나 일년 내내 꽃은 피고 꿀은 있으니까.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굶어죽을 염려가 없는 것이 아프리카의 꿀벌이다. 그러나 한국의 꿀벌은 다르다. 여름에 놀고 나면 겨울에는 굶어야 한다. 부지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생존의 진실이다.
고난에 찬 환경은 오히려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지혜를 깨닫게 한다.
절에서 열린 일본식 차회(茶會)의 한 장면이다. 여인들은 평상복을 입고 절까지 온다. 절에서 모두들 자신이 따로 갖고 온 기모노로 갈아 입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새들이 알에서 부화하여 금새 다 자란 새로 변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한다.
그녀들이 기모노로 갈아입고 새로운 모습으로 바뀔 때, 조금전의 여인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다. 요술쟁이 할머니의 지팡이 닿아서 화려한 변신을 한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이다. 화사하고 단아한 기모노 차림의 여인들. 그 모습은 소리없는 눈부심이다. 그것은 그 땅이 만들어낸 옷과 그 땅이 만들어낸 정원의 황홀한 어우러짐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性의 엑스터시같은‥‥
티셔츠와 청바지. 20세기를 살아가는 전 인류의 제복이다. 기능성만이 강조되는 이 옷과 평상복 또한 남자의 양복과 여자의 양장이라는 서양 출신(?)의 옷이 세계 어디를 가도 누구나 입는 인류 공통의 의상이 되어 있다. 그렇지만 한나라의 민속 의상은 그 옷을 만들어 낸 풍토와 어우러지면 그 어느 옷보다 아름답기 그지없다. 치마저고리와 기모노 두 나라 옷은 다 아름답다. 의상학 적으로도 소매와 몸체와 직선으로 연결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허리의 선을 드러내지 않고 감춘다는 것도 닮아 있다. 그러나 흐트러짐 없이 절제된 긴장으로 몸을 감싸는 일본 여인의 기모노와 달리 한국의 치마저고리는 자유로움과 여유를 그 기본으로 한다. 그 옷의 선이 흘러가는 것을 보아도 선명하게 차이가 드러난다. 수직 수평의 직선을 기본으로 하는 기모노와는 달리 치마저고리는 자유로운 곡선이다. 그리고 체형을 드러내지 않게 풍성한 양감으로 몸을 감싼다. 한복의 아름다움의 하나이다. 외씨 버선발이 드러날듯 치마폭을 차면서 대청마루 위를 끌릴듯이 나아가는 스란치마의 아름다움은 우리 여인의 품격이며 고아함이다. 한복과 비교할, 기모노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걸음걸이를 부자유스럽게 할 만큼몸을 감싸는 옷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몸에 붙인 옷에 또 오비로 허리를 조여 붙인다. 그러나 한복을 옷을 몸에 감싸지 않는다.
젖가슴 밑에서부터 여유 있게 퍼져 나가 발끝까지 흘러내리는 치마의 풍성함과 기모노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젖가슴 위를 감싸서 입는다고는 하지만 치마 저고리는 무엇보다도 몸을 압박하지 않는 옷이다. 그러므로 앉는 자세도 그 넓은 치마폭 안에서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기모노는 다르다.
붙일 수 있는 한 몸에 꽉 붙여 입기 때문에, 몸을 조이고 숨막히게 한다. 입는 사람의 자제를 요구하는 옷이다. 한복의 헐렁함과 여유가 자유를 지향한다면 기모노는 입는 사람의 긴장과 자제를 필요로 하는 옷이다. 다만 하나, 기모노에도 그 팽팽한 긴장감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 있다. 미혼의 젊은 여성들이 입는 "후리소데(길고 넓게 옷소매를 늘어뜨린 기모노)"가 그것이다. 물건을 넣기도 하는 "다모토(소매)"가 길게 늘어져서 장식적인 효과를 낸다. 그러나 이것도 다만 소매의 변형일 뿐 몸을 조이기는 마찬가지다. 풍성함을 넘어서서 한복은 싸이즈로 보자면, L(라지)이나 S(스몰)의 차이가 없는 프리사이즈이다. 키만 어중간히 맞으면 입을 수 있는 옷이 ㅎ나복이다. 누구나가 명절 때나 겨우 입어 보는, 자신이 갖고 있는 한복을 보아도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다. 내 민족의 옷이면서도 그 옷을 입을 때마다 "거 참, 거 참"하고 중얼거리는 경우가 많다. 몇 가지 의문점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왜 그렇게 허리가 넓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한복 바지는 입는 사람말고 또 한 사람이 들어와도 충분하게 허리며 바지통이 넓다. 그러므로 그걸 언제나 처억 접어서 허리띠로 묶어서 입어야 한다. 옷의 품(폭)만이 이렇게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길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발에 밟히는 바지를 올려서 대님을 매어 입는다. 이처럼 노동과 무관하게, 비활동적인 옷이 있을 수 없다. 이 옷을 입고 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자세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는 정도일까. 명절날 이 한복을 입고 나면, 마당에 나가 개밥을 주기에도 불편하고, 운전을 하기에도 불편하고 성묘를 가서 제수를 진설하기에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바지저고리의 이 풍성한 여유는 역으로 활동적인 기능을 그만큼 제한하고 있다. 또한 두 나라의 옷을 바라보고 있자면 다가오는 것이 있다. 기모노는 몸에 옷을 붙이는 것만이 아니다. 옷의 밑 가장자리를 접어넣어 무게를 줌으로써 옷의 선을 아래로 향하게 한다. 옷의 모든 선이 직각에 가깝게 바닥을 향하고 있다. 몸에 조여 붙이면서 어깨와 히프의 폭을 따라 직서으로 흘러내리는 기모노의 선은 그렇게 땅으로 향한다.
이 모습은 입은 사람을 보다 꼿꼿이 선 느낌이 들게 하면서 지면(地面)과 옷을 직각으로 만나게 한다.
긴장감이나 단정한 느낌은 여기서 온다. 땅을 향한 옷인 것이다. 그러나 한복은 땅과 직각으로 만나는 옷이 아니다. 하늘을 향한 옷이다. 한복은 무엇보다도 흩날리는 옷이다. 한점 흐트러짐 없이 몸에 붙여 입어야 하는 기모노는 바람이 불어도 날리는 것이 전연 없다. 그러나 한복은 다르다. 그 풍성한 치마 폭이 바람에 쏠리고 옷고름이 날린다. 여자의 옷만이 아니다. 두루마기 자락을 날리며 표표히 걸어가는 우리 선조들의 모습. 날아갈듯싶은 갓 밑으로는 갓끈이 날린다. 상승 지향, 하늘을 향한 옷인 것이다.
일본의 옷이 착지성이라면 한국의 옷은 향일성이다. 같은 농경민이었으면서도 섬나라는 일본인의 고립과 그 땅에 대한 집착이 옷의 형태를 그렇게 만들게 했다면 한국인은 어떨까. 반도에서의 사이란 언제나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다. 침략의 통로이기도 했지만, 대륙으로 향하는 길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가능성일 수 있었다. 대륙은 이사잉며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하늘일 수 있지 않을까. 한복의 상승 지향이란 그런 뿌리에서 자라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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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ha~ 01/30
첫댓글 보기힘들어....
정말 빼곡히 써 놓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