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지하철 2호선 뚝섬역의 서울숲 쪽 개찰구로 나오면 옆 통로에 사진 한 장이 떡하니 걸려 있다. 엄청 크다. 가로 5.5m에 세로 3.6m 정도. 내설악 사진이다. 문제는 이 사진에 촬영 장소가 설명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명색이 산악회 대장이고, 설악 깨나 다녀봤는데도 이 사진을 어디에서 찍었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5월 정기산행 도중 답을 찾았다
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서북능선 끝청봉 근처에 이르렀을 때 여기에서 찍은 것인가 보다 했는데 23일 저녁 퇴근하면서 다시 유심히 뜯어보니 아니다. 안산 쪽이 아닌가 싶은데 정말 모르겠다. 여기 올리니 누가 명쾌한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오색약수에서 대청봉 오른 경험은 서너 번 되지 않나 싶다. 새벽 산악회 버스에서 내려 랜턴 불빛에 의지해 앞사람 엉덩이만 올려다 보며 답답하게 올랐던 기억만 잔인하다. 한계령~서북능선은 부끄럽게도 한 번도 제대로 타본 적이 없다. 몇 해 전 멍개 총무와 함께 서북능선에 들어섰다가 체력도 안되고 너덜길에 넌저리가 나 원점 회귀한 적이 있었다. 40년 전에 산바람 형과 사니사나 형이 독일 유학 떠나기 전 대학원 원우들과 함께 십이선녀탕에서 장수대 넘은 것도 많이 떠오르는 설악산행 추억 하나다. 집사람과는 가끔 단풍물 들 때 장수대 위 한 시간 거리 안쪽의 전망대까지만 올랐다가 내려가곤 했다. 백담사~구곡담을 거쳐 대청봉 오른 적도 몇 번 있었는데 모두 날이 좋지 않아 뭐 이렇다할 기억이 없었다.
한계령~서북능선~대청봉~오색 등반은 내게 최초의 산행 코스였다. 산에 다닌 지 어언 40년이 됐는데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너무 늦게 이 코스의 아름다움에 홀딱 반했다. 내가 우리 산악회에 몸 담은 지 17년 만에 처음으로 체력이 밑바닥으로 떨어진 시점에 딱 이 코스를 밟았다.
준비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2년 만에 국립공원 대피소들이 문을 연 데다 중청대피소는 곧 철거된다고 해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이곳 숙박을 하며 여유롭게 일박이일 일정을 갖자고 했다. 하지만 지난 2일 예약 사이트는 그야말로 초특급슈퍼울트라 경쟁이었다. 1초 단위로 몇천명씩 대기 인원이 불어났다.
해서 당일치기로 전환해 여섯이 동서울터미널에서 떠나는 고속버스에 21일 오전 6시 30분 몸을 싣기로 했다. 그 뒤 산행 인원 6명 외에 두 분이 더 구경하는 단톡방에서 서로 다른 하산 지점을 희망하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한 사람은 천불동까지 빼서 이슥한 밤 랜턴을 켜고 설악소공원에 당도해 속초로 가서 물회 먹고 심야 우등고속버스로 상경하자고 했고, 한 사람은 오색 하산길의 지루하고 단조로운 급경사 길을 피해 원점회귀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일주, 이주 치열한 의견 교환이 이어졌다. 한 사람을 이렇게 설득하면 다른 사람이 저렇게 가고 싶다고 하고, 그 사람을 힘들게 설득하면 나중에 또 딴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중간에 몇몇은 따로 모여 자기들끼리 의견을 모으는 것 같았다.
대학 시절 만나 40년, 산악회에서 17년을 함께 한 세월이 없이, 그저 만난 지 얼마안된 산악회라면 다시는 안 보겠다고, 나서는 회원이 있을 법한 상황이었다. 힘들지만 서로 다른 필요를 충족해 최대 공약수를 만드는 것이 어쩌면 산을 오르는 의미가 아닌가 싶었다. 결국 각자 편한 대로 하기로 하고, 오색과 한계령에서 각자의 사정에 따라 귀경 고속버스를 타기로 했다.
아 너무 길어졌다.
각설하고 그날 아침 5시 50분 우리는 동서울터미널 앞 두 번째 포장마차에서 잔치국수와 어묵탕, 김밥으로 아침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며칠 전 한 원로(?) 회원이 아침잠 없으니 그 신새벽에 나와 아침밥을 사주겠다고 한 것을 겨우 뜯어말리고 우리끼리 만나 점심 김밥까지 알뜰히 챙겨 먹었다.
알과 아톰, 회장님과 산바람 80 둘, 달라무와 뜬 총무 이렇게 앉아 갔다. 버스는 인제와 원통에서 쉬고 한계령에 내려줬는데, 인제에서 조그마한 소동이 일었다. 쪼르르 기사석에 달려간 뜬 총무가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하니까 기사 왈, “원통 가서 충분히 시간 드릴테니 조금만 참아라”고 했던 것이다. 머쓱해진 뜬 총무가 자리에 앉으니 회장님이 일갈한다. “한계령 휴게소 가서 보면 되는데 왜 그러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그 때 느꼈다. 회장님이 짠 시곗줄에서 조금이라도 오차가 나면 큰일, 큰 사단이 벌어진다는 것을, 일행은 와 웃었다.
아무튼 원통에서 10분 이상 여유있게 쉰 버스는 10시 조금 넘어 우리를 한계령 휴게소 주차장 건너편에 내려줬다. 휴게소에서 캔맥주 넷과 막걸리 두 병, 옥수수 4개를 샀다. 그 짐을 자신의 가방 안에 집어넣지 않으려고 치열한 눈치작전이 펼쳐진다. 너나 할 것 없이 육십을 넘겼거나 내일모레라 많이 달라졌다. 예전의 나도 25리터 들이 배낭 같은 것을 지고 지리산 등을 헤맸으나 이제 그럴 나이를 넘겼다. 물 무게만 해도 상당하다, 변명하는 이가 너무 많다.
그러는 사이 뜬 총무는 원통에서도 볼일을 보더니 이곳에서도 또 화장실을 찾았다. 회장님이 그런다. “자 벌써 9시 13분이다. 원래 계획에서 13분 늦어졌다. 출발하자” 따를 수밖에.
사람 참 많았다. 삼거리까지 2.3km인데 사람들이 많고 왁자한 이들도 많아 난 고즈넉하게 산새 소리 즐기려고 조금 오버페이스를 했다. 이게 나중에 화근이었다.
숨가쁘게 올랐더니 1km떨어진 지점에 이르렀다. 35분쯤 걸렸다. 10분쯤 뒤 회장님과 달라무 형이 도착했다. 물 마시고 둘이 출발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4시간쯤 진행해 끝청 쯤에서 함께 점심 먹고 헤어지자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해서 먹을 것이 어떻게 나눠졌는지 점검하니 내 가방에 들어있던 옥수수 둘을 원점회귀 팀에 넘기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해서 나만 남고 둘이 먼저 출발했다.
조금 있으니 아톰 형이 와 실랑이를 벌였다. 나도 짐 많아 어쩌구 밀고당기고 하다 결국 넘기고 먼저 나서며, 뜬 총무가 늦게 와도 부지런히 우리를 따르거나, 아니면 원점회귀하라고 전해 달라고 아톰 형에게 당부했다.
삼거리는 왼쪽 귀떼기청과 대승령 가는 길, 오른쪽 대청봉 방향으로 갈라지는 곳이다. 한 시간 10분쯤 걸렸다.
아 그런데, 초반 너무 무리를 했나보다. 오르막에서 영 속도를 못 내겠다. 예전에는 삼거리 지나면 곧바로 너덜길이었는데 많이 우회하는 쪽으로 길을 낸 것 같다. 길은 보드라운데 오르막내리막이 계속 이어진다. 뒤를 돌아보면 멀리 안산이 희뿌옇게 원추 모양으로 버티고 있다. 능선에 내려앉은 연둣빛 신록은 싱그럽다.
데크도 제법 깔려 있고 길이 무척 편안해진 느낌이다. 그런데 난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달라무 형이 발군이다. 힘든 기색도 없이 축지법 쓰듯 나아가 따라잡을 수가 없다. 골골이 내려다보니 저 아래 한계령 고갯길, 건너편 점봉산 주전골 봉우리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대략 40~50분 걷고 5분 정도 쉬며 마음 바쁜 걸음을 옮긴다. 시곗줄보다 넉넉하게 최대한 당기자는 마음가짐이었는데 몸과 발은 자꾸 무거워진다. 왜 이러지? 어제 4시간 밖에 못 자서 그런가? 계속된 술에 의한 후유증인가? 아 진짜 헬스 부지런히 다녀 근육 좀 키워야겠구구나 생각이 복잡했다.
10시 46분에 앞서간 두 형이 길 한 복판에 놓인 주목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주목이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한다. 2분 뒤 한 등산객이 카메라에 주목을 담는데 텅 빈 밑둥에 휴대폰을 놓고 스톱워치로 나무를 찍고 있다. 조금 기다리니 나보고 양보를 해준다. 햇빛이 나뭇가지에 반짝이는 모습을 주목과 함께 담으니 만족스럽다. 그리고 설악의 이맘때 명물 털진달래가 보이기 시작하며 너덜길이 나타난다. 스틱이 있는 이들이라면 편하겠는데 난 스틱을 쓰지 않아 여간 힘들지 않았다.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꽃들을 담는 척하며 쉬었다. 끝청봉에 가까워오자 용아장성과 공룡능선 줄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날이 안 좋아지는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완전히 흐려지지는 않는다. 12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두 형이 쉬고 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자며, 내가 점심을 먹자고 했다. 힘들어서 그랬다. 집사람에게 부탁해 싸간 열무김치를 꺼냈다. 6명분으로 쌌는데 셋만 먹으니 좋다. 큼직하게 집어 먹으니 갈증 해소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다. 원기 회복은 물론이고,
이제는 느긋한 능선 길이다. 1시 37분쯤 끝청 언저리에서 파노라마로 내설악 풍경부터 중청과 대청까지 한눈에 담으니 그럴 듯하다.
사실 11시쯤부터 눈에 띄는 세 부녀가 있었다. 열 살, 여덟 살쯤 돼보이는 두 딸과 함께 온 젊은 아빠다. 무척 나직하고 정감있는 목소리의 아빠는 자근자근 산행 방법을 알려주고 산티켓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두 딸도 발군이다. 풀썩 주저앉아 있다가도 “자 끝청 가서 또 쉬자. 15분만 가면 돼, 출발”이라고 아빠가 말하면 태엽인형처럼 일어나 또 걸었다. 난 피리 부는 마법사 같다고 생각했다.
달라무 형의 말이다. “난 아들들에게(그는 무려 셋을 거느리고 있다) 맨날 다그치기만 했지, 한 번도 저렇게 다정다감하게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이건 이렇게 하면 돼 그러지 않았다. 진짜 후회되고 뉘우치게 된다.”
주말에 보기 시작한 드라마 대사가 떠오른다. “추앙해 달라. 날 채워달라. 날 응원해달라.” 아빠는 그 아버지에게 배웠을 것이고, 아이들은 아빠에게 받은 사랑을 그들의 아이에게 돌려줄 것이다. 털진달래가 매복한 이 능선길이 한결 다사로워진다. 이제 중청이다. 아침 버스에 함께 온 일행과 또 만나 한 테이블을 양분해 목을 축였다. 맥주를 마실까 하다 눈치도 보이고 해서 2시 20분쯤 털고 일어났다.
대청 오르는 길이 조금 힘들다 싶을 즈음, 털진달래 군락이 도닥거려준다. 정상 가면 복잡할 것 같아 아예 내설악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바위를 찾아 캔맥주 둘을 깠다. 멀리 울산바위와 속초시까지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맛이 일품이다.
3시 조금 넘어 대청 오르니 의외로 정상석 주변 줄이 길지 않아 20명 안팎이다. 능선에서 바라볼 때 사람이 정말 많은 것 같았는데 시간이 늦은 오후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많이 줄어든 모양이다. 대청에서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 찍은 것은 난생 처음이다. 물론 몸이 휘청일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긴 했지만 10분쯤 기다리니 차례가 돼 사진을 찍고 난 그대로 출발했다. 두 형이 전화를 받는 등의 일로 조금 늦게 출발했다.
혼자 오롯이 주목이 군데군데 자리잡은 숲길을 호젓하게 내려가는데 아 이 숲이 이렇게 좋은 숲이었구나 감탄하게 된다. 오색 하산 길은 오히려 정상 부근이 잘 정비돼 있고 중간과 아래로 내려갈수록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아 이상했다. 혹시, 케이블카 찬동 여론을 끌어올리려고 일부러 탐방로를 정비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여튼 대청에서 첫 한 시간 내외는 길도 정비돼 있고 데크와 계단이 많이 깔려 있어 무난했는데 오히려 4시부터 6시까지 두 시간 걸은 길이 얄궂었다.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안경은 흘러내리고. 가도가도 끝이 없다. 무릎 연골에 좋지 않은 신호가 와 발을 옆으로 계단 밟게 하면서 내려오고, 심지어 줄 잡고 뒤돌아선 자세로 발을 내렸다. 체면 따질 여지가 없었다. 하산하며 두 시간쯤 됐을 때, 산바람 형이 이 루트를 한사코 피하려던 것에 공감했고, 노약자나 산행 경험이 일천한 이들에게는 케이블카가 반드시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사실 하산의 고통스러운 3시간을 10분 안쪽으로 줄이면 능선 위에서 훨씬 다사로운 시간이 보장될텐데 말이다.
처음에 아늑해 보이던 숲도 시간을 거듭할수록 지겹고 단조롭게만 여겨진다. 산 모양도 제대로 안 보이고, 탁족이나 하자, 생각하며 기계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계곡물에 식은 캔맥주 담그고 발 씻고 마시면 좋을 것 같다, 했는데 회장님은 자꾸 하산 마지막에 먹자고 했다. 계곡으로 죽 내려가면 될 것 같은데 길이 갑자기 빙 돌아가게 휘어진다. 그러면서 오르막내리막까지 생긴다. 5시 10분쯤 됐을까? 원점회귀 팀이 남설악식당에 가 있다고 카톡을 보내왔다. 이제 탁족도 글렀다. 바삐 걸음 재촉해 남설악탐방센터 문을 나설 때 5시 40분 안팎이었다. 와 지루한 하산 끝났다, 두 팔 벌려 만세 포즈를 취했다.
길 건너 택시가 대기하길래 저 아래 가자고 했더니 웃으며 그냥 걸으시라고 한다. 속으로 물정 모르는 놈일세 욕깨나 했을 것이다. 시멘트 포장 길을 터덜터덜 걷는데 팍팍하다. 그런데 불평할 일이 아니다. 토요일 어스름 시간인데 오색이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다. 아 이렇게 경기가 죽었구나, 케이블카 목소리가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구나 싶었다.
여튼 남설악식당에 들어서니 원점회귀 팀이 반기는데 산에서도 막걸리 두 병과 캔맥주 하나 마시고 아톰 형이 가져온 진토닉까지 말아드셨단다. 셋씩으로 나눠 더덕구이와 도토리묵 등에 부어라마셔라 했다. 아톰 형이 남긴 진토닉까지, 나중에 뜬 총무 청구서 보니 일인당 2만원 꼴로 청구돼 있었다. 이 식당의 손님 부르는 아줌마가 지나는 산행객에 그랬다. “어느 식당이나 메뉴나 가격이나 다 똑같아요.” 그런데 말이다. 남설악식당 맨 끝 쪽에 앉아 출입문을 살짝 열어제치면 말이다. 점봉산 주전골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원점회귀 팀은 따로 산행기 써야 하느니 마니와 다음 달 정기산행 등을 주제로 떠들다 6시 50분이 못 돼 일어났다. 버스 예매소 건너편에는 케이블카 허가가 떨어지면 출발 센터로 지었음직한, 주차장 전용 빌딩으로 보이는 건물에 OSAEK 네온사인이 쓸쓸하기만 하다. 처음에는 예매소 앞에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길 건너편에 정식 정류장이 있었다. 예매소 관계자가 티켓 한 장을 주웠다며 주인을 찾아주는데 부끄럽게도 우리 일행이다. O29
뜬 총무도 잘 몰랐던 것 같은데 귀경편은 우등 고속버스였다. 덕분에 둘에 하나, 둘에 하나 널찍하게 잠을 청하며 피곤을 달랠 수 있었다.
밤 10시쯤에 동서울터미널 도착해 아침에 먹은 포장마차 다시 들어갔다. 수미쌍관이라나 뭐라나. 소주 얘기에 주인 안색이 바뀐다. 옆 가게에 옮기라고 한다. 옆 가게 알바생(주인이 아니라고 했다) 말에 따르면 포장마차도 주류 판매 허가를 받아야만 술을 판매할 수 있단다, 난 개인적으로 포장마차는 일생에 세 번 정도 밖에 들어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위생이 염려돼서다. 내가 비록 잔반 처리반이란 비아냥을 들을 정도지만 그래도 가급적 상하수도, 깨끗한 주방기구 등을 쓰는 곳에서 밥을 사먹고 술을 마시는 게 정석이라고 생각한다. 여튼 난 다른 일행보다 훨씬 걱정하는 마음으로 설거지와 개숫물 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관찰하며 소줏잔을 넘겼다.
여튼 꿈결 같다. 아침 5시 50분에 이곳에 모여 출정, 9시간쯤 산행을 거쳐 11시 15분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해산했다. 문제는 9시간의 산행을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고, 날씨가 받쳐줘 난생 처음 또는 오랜만의 이 코스를 행복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다음주 정도에 한계령~귀떼기청~대승령~장수대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거리는 똑같이 12km쯤인 것 같다.
첫댓글 애썼소. 헌신과 노고에 감사와 경의를 표하오. 덕분에 나도 좋은 추억을 또 하나 간직하게 됐다오.
몇 가지 옥에 티. 물회 한 접시? 통상 회는 접시에 담지만 물회는 대접(국그릇)에 담는 것 아닌가? 아침 포장마차에는 라면을 팔지 않았음. 잔치국수 어묵탕에 김밥을 먹었음. 한계령 휴게소 도착 시간은 10시가 아니라 9시 남짓했고, 출발한 시간도 9시 13분이었음. 한계령휴게소에서 삼거리까지는 1km가 아니라 2.3km임. 따라서 삼거리까지 걸린 시간도 35분은 아닐 듯. 나와 달라무는 1시간 30분가량 걸렸음. 날씨가 바쳐줘 -> 날씨가 받쳐줘. 그냥 재미로 한 것일세. 대청봉 등정의 추억을 생생하게 일깨워줘서 감솨.
산행기를 읽으며 느낀 또 하나의 감상. "알 대장도 우리와 크게 다르진 않구나. 세월 앞에 장사 있나." 한편으로 안도감이 들면서도 왠지 씁쓸해집니다. 한계령~귀떼기청~대승령~장수대를 예전에 걸어보고 우리 일행 3명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 "몰랐으니까 왔지 알고는 못 오겠다. 두 번은 걸을 코스가 아니야" 귀떼기청봉 지나며 너덜지대가 한참 이어지는데, 그것도 잔돌이 아니라 큰 바위들이 깔려 있어 정말 진땀을 흘렸습니다. 알 대장! 그 코스 갈 때 난 빼주게.
와우, 역시.. 진솔하고 담백하고, 디테일하고, 재밌게 잘 읽었네..원점회귀팀 산행기는 없는 모양이네, 그저 한가롭게 걷고, 산 취하고 술 취하고 사람취하고.. 산바람 형이 한계령 휴게소 눈발 날리는 휴게소 위스키 한잔 원했지만(feat 한계령 노래, 양희은), 5월 눈은 무리.. 산이 부르는 노래에 취해서 서북능선 왕복!
역시 힘들긴 했구나. 산행기를 읽기만 해도 힘든다~~ 다들 수고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