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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명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한 증명은
사실 성경을
벗어난 주제입니다. 그렇다고, 성경이 예수님
실존에 대한
증거로서 부족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신약 성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만 수
백 구절
됩니다. 복음서가
예수의 죽음
후 2세기
경에 쓰여졌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주장에 대해
사실 반대가
많습니다만, 성경이 2세기 (AD 100년부터 200년 사이) 에
쓰여진 것으로
보더라도, 사건
발생 후 200년 안에 쓰여진
고대 자료들은
매우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학자들 (기독교인들과 비기독교인들 모두)은 바울 서신(최소한 그 중
몇 개라도)이 1세기 중반
즉 예수
죽음 후 40년 안에 바울이
쓴 것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신약성서를 고대 문서
자료로 볼
때,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1세기
초반에 이스라엘에
존재했음을 증거하는
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또 알아야
할 중요
사항은 서기 70년에 로마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대부분의
지역을 침략, 파괴하고 거주 주민들을
대량 학살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곳의 많은
도시들이 실제로
모두 불에
탔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존재를 증거할
만한 자료들의
파괴되고, 예수님을
목격한 자들의
살해당했을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이 생존했던
예수를 증거할만한
증거들과 목격자들의
증언을 단절시킵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비교적 눈에
뜨이지 않는, 로마제국의 한 조그만
지역에 한정되었던
사실을 고려할
때, 세속적, 역사적 자료들로부터 발견되는
예수님과 관련된
정보들의 양은
놀랄 만한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역사적
증거들을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1세기
로마 고대
역사가 중에
한 명인
타시투스는 티베리우스
황제 시절, 본디오 빌라데에게 핍박
받았던 사람들을
미신에 사로잡힌 “크리스찬” (크라이스트에서 파생) 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하드리안 제국의
비서인 수토니우스는 1세기에 생존했던 크레스토스 (혹은 크리스트)라는
사람을 언급합니다
(Annals 15.44).
유대 역사가
중 가장
유명한 플레비우스
조세푸스는, 그의
저서에서 야고보를 “그리스도 예수의 형제”라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예수라는 한 지혜로운
자가 있다. 그를 사람으로 보는
것이 위법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는 놀랄만한 공적을
세웠다 …그는
다름아닌 그리스도였다…그는 삼일 째
부활해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예언가들이 예언한 대로
말이다. 게다가
수 천개의
다른 놀랄만한
그리스도에 관련한
일들로 말이다.” 또 다른 번역서를
보면 “그
당시 예수라
불리는 지혜로운
자가 있었다. 그의 선행은 그를
덕이 높은
자로 손색없게
했다. 많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빌라도가
예수를 사형에
처했으나, 그의
제자들은 제자도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가 십자가
사형 삼일
후에 그들
앞에 나타나신
후 그
분이 살아나셨음을 알렸다. 이런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아마 선지자들이
서술했던 경이로움으로 여긴 메시아였을
것이다.,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는 역사가 탈루스를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후에
있었던 어두움을
논했습니다 (Extant Writings, 18).
Pliny the Younger는 그의 편지
10:96에서 초기
기독인들의 예배
관례상 예수를
하나님으로 찬양하였다는 사실과 함께
당시 있었던
애찬식과 성찬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빌론의 탈무드 (산헤드린 43a)는 예수의
십자가형이 유월절
전날 이루어졌다는 것, 그리스도가
마법을 부렸던
자로 고소되었다는 것, 그리고
유대인들이 배교하도록
고무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모사타의 루시안은 2세기경의 그리스 작가로서
예수님이 기독인들의
경배를 받았고, 그들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주었고, 또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렸다고
기록합니다. 또, 예수님의 가르침은 신자들간의
형제애, 거듭납의
중요성, 또
다른 신들을
부인하는 것의
중요성을 포함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고, 자신들을
불멸하는 존재로
여기고,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자발적인
자기 헌신, 그리고 물질적 풍요를
포기한 자들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라 바
세라피온은 예수를
현명하고 덕
있는 자로
여겨졌다고 재확인합니다. 즉 많은 자들이
예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여겼고, 유대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그리고
제자들에게 가르친
그대로 살았던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 밖에, 영지주의적인 (The Gospel of Truth, The Apocryphon of John, The Gospel of
Thomas, The Treatise on Resurrection, etc.) 글들을 통해서도 예수에
대한 언급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초기에
쓰여진 비기독교
글들을 통해서도
복음을 재현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로 불려졌고(조세푸스 문서 참조), 마술을 행했고, 이스라엘을
새로운 가르침으로
이끌었고, 이스라엘을
위해 유다에서 (타시투스 문서 참조) 유월절 날 죽임을
당했다 (바빌론
탈무드 참조). 그러나 자신이 하나님
되시며 본래의
위치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셨다 (엘리자 참조). 또한
이 사실은
그의 제자들이
그를 신으로
숭배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Pliny the Younger참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는
세속적인 자료나
성경 역사적
자료 양쪽
방면에서 모두
풍성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아마 예수의 실존에
대한 가장
큰 증거는 1세기에 실재로 존재했던
수 천명의
기독교인들과 열두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순교했다는 사실일
겁니다. 사람은
진리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릴 수는
있겠지만, 거짓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A. 요세푸스의(A.D37-100년 이후) 기록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유대인의 역사가였다가 로마에 항복하여 로마의 문필가가 된 인물입니다. 요세푸스는 A.D. 93년에 그가 쓴 '유대 고대사'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2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즈음에, 굳이 그를 사람으로 부른다면, 예수라고 하는 현자 한 사람이 살았다. 예수는 놀라운 일을 행하였으며, 그의 진리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선생이 되었다. 그는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들 사이에 명성이 높았다. 그는 바로 그리스도(구세주)였다. 빌라도는 우리 유대인 중 고위층 사람들이 예수를 비난하는 소리를 듣고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명령했으나, 처음부터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예수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다. 예수가 죽은지 사흘째 되는 날, 그는 다시 살아나 그들 앞에 나타났다. 이것은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이미 예언했던 바, 예수에 대한 많은 불가사의한 일들 중의 하나였다. 오늘날에도 그를 따라 이름을 붙인 족속, 즉 그리스도인이라는 족속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다." (유대 고대사 원문 18:63-64)
62년 대제사장 아나누스가 이끄는 산헤드린이 "그리스도라고 불리우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돌로 쳐죽이는 일을 기록하고 있다. 야고보의 죽음을 부당하게 여겼던 요세푸스는 아나누스가 결국 대제사장직을 박탈당하는 것 까지 기술하고 있다. (유대 고대사 20:200)
B. 유대인 탈무드(bSanh 43a, A.D 2세기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
유월절 축제 전날 밤 사람들은 예수를 매달았다. 사십 일 전 전령이 이렇게 외쳤다. '그 사람은 마술을 행하고 이스라엘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여 불충한 자들로 만들었으니, 끌려가서 돌팔매질을 당할 것이다. 그를 변호할 자는 나와서 말해보라.' 그러나 아무도 그를 변호하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유월절 축제 전날 밤 매달았다.
랍비들은 이렇게 가르쳤다. 예수에게는 마타이, 나카이, 네제르, 부니, 토다 이렇게 다섯명의 제자가 있었다. 사람들이 마타이를 끌고 갔을 때 예수는 그들(재판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 "마타이를 처형해야 하는가? '언제 내(마타이)가 나아가서 하나님을 뵈울 수 있을까? (시편 42:2)라고 기록되지 않았나?" 그들은 예수의 말에 이렇게 응수했다. : "물론이지. 마타이는 처형될 것이야. '저 자가 언제 죽어서 그 이름이 없어질까?' (시편 41:5)라는 말씀도 있으니까."
C. 마라 바르 사라피온의 편지 (A.D 73년 직후에 쓰인 것으로 추정)
사라피온은 사모사타 출신의 시리아인 스토아 철학자로, 로마 감옥에서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아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많은 권고와 경고들을 담고 있는데, 여기서 언급한 '현명한 왕'은 예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기정사실화되어 있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를 죽여서 무슨 이익을 보았느냐? 그들이 무슨 일을 했길래 기아와 역병으로 되갚음을 당했느냐? 사모스 섬 사람들이 피타고라스를 불태워 온 나라가 한 순간에 모래로 뒤덮이게 되었으니 그들에게 무슨 득이 있겠느냐? 유대인들이 현명한 왕을 처형하고 그때부터 그 나라를 빼앗겼으니 그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신께서는 그 세 현자들을 위하여 똑같이 복수를 행하셨다. 아테네 사람들은 굶주려 죽었고, 사모스 섬은 바닷물로 뒤덮혔으며, 유대인들은 살육당하고 자기네 나라에서 쫓겨나 여기저기서 흩어져 살게 되었다."
D. 타키투스의 연대기 (A.D 115-117)
타키투스는 A.D 55/56- A.D. 120년 경의 로마 원로원 귀족 출신의 역사가로 '연대기'로 유명합니다. 그는 연대기 13-16장에서 네로의 전기를 기술하면서 64년에 일어난 로마의 대화재와 함께 그리스도(예수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명칭(Christiani)는 티베리우스 황제 치하의 행정관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당한 그리스도(예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 부패한 미신은 잠깐 동안 억눌려 있었지만 나중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 신앙이 처음 발생한 유대 지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혐오스러운 것과 흉악한 것들이 밀려들어와 횡행하고 있는 로마에도 세력을 뻗쳤다. ..(중략).. 그래서 유죄를 인정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 최초로 체포가 행해졌다. 그 때 그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도시 방화죄 때문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다."
E. 수에토니우스의 기록 (A.D. 117- A.D. 122)
A.D. 70-130년 경의 기사 계급 출신으로 트라얀과 하드리안 황제시기에 고위직에 올라 시저부터 도미티안에 이르기까지 모두 열두 황제의 생애를 기술하였습니다. 클라우디우스에 대한 보도 중 25장 4절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습니다.
"크레스투스(메시아를 의미하는 크리스투스의 오기로 추측됨)에 의해 미혹되어, 끊임없이 소요를 일으키는 유대인들을 그 황제는 로마에서 추방했다. 네로의 처벌은 새롭고 유해한 사교를 믿는 사람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려졌다."
F. 플리니 2세의 기록 (A.D 112)
플리니 2세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죽이는데 앞장섰던 인물로, A.D. 112년에 그가 소아시아의 Bithynia의 총독이었을 때 장문의 글을 트라얀 황제에게 올렸습니다. 순교자의 수가 너무 많아 믿는다고 고백하는 기독교인을 모두 죽일지 일부만 죽일지 고민했다는 내용입니다. 플리니가 당시 기독교인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새벽에 일정한 날 모이는 습관이 있고, 그리스도에게 신으로서 반복되는 찬양을 불렀고, 엄숙한 선서로서 어떤 악한 행동을 금하기로 서로 간에 약속하며 절대로 사기나 도둑질, 간음, 거짓 증거를 않으며 자신의 믿음을 부인하지 않기를 다짐했다."
G. 터툴리안의 기록(A.D 197)
터툴리안은 A.D. 197년에 본디오 빌라도와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간의 빌라도 보고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티베리우스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일컬어질 즈음에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정보를 그 자신이 보고받고 그 자신이 그리스도에 대해 긍정적인 결정을 하고서 이 문제를 상원회의에 올렸다. 상원은 그 의제를 승인하지 않고 기각했다. 카이사르는 그의 견해를 지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모든 비방자들을 벌할 것이라고 겁주었다."
H. 탈루스의 기록(A.D 52)
탈루스라는 역사가는 헬라어로 글을 남겼는데, 주후 30년 4월에 발생한 신비한 일식(만약 그것이 일식이었다면)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망 당시 발생한 3시간 가량의 이상한 어두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I. 필레곤의 기록
역사가 필레곤은 소아시아의 비두니아 지역 니케아라는 곳에서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 먼지와 흙과 나무 부스러기들이 공중에 솟아올라 그 검은 구름이 남쪽으로 흘러서 이탈리아, 희랍, 애굽의 하늘을 어둡게 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필레곤은 이 일이 희랍 달력 202번째 올림피아드 4년에 일어났다고 했으므로 A.D 33년, 즉 예수님의 사망 시점과 일치하는 대목입니다. 그 해 어떤 날에 그 일이 있었다고 설명하지는 않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사망했을 때 하늘이 어두워졌다고 성경에 기록된 것과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이 외에는 없을까요?
게리 하버마스(Gary R. Habermas) 박사는 ‘역사적 예수(The Historical Jesus)’라는 책에서 예수의 생애에 관한 고대 자료는 45개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초기 교리적인 자료 19개, 4개의 고고학적 자료들, 17개의 비그리스도인의 자료들, 그리고 5개의 신약성경을 제외한 초기 그리스도인의 자료들을 일일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버마스는 예수의 생애에 대한 45개의 고대 자료 중에서 예수의 실제 생애, 인격, 가르침, 죽음, 부활 그리고 제자들의 초기 메시지 등을 철저히 분석하였는데, 그 결과 예수와 관련된 고대 역사의 사건 기록들은 총 129가지나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고대 자료들을 꼼꼼히 분석한 하버마스는 “예수님은 단순히 자신에 대한 역사적 자료들을 많이 가졌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분량의 질적인 자료들을 가진 역사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 분에 대한 자료는 고대에서 가장 공식적으로 언급된 것이며, 가장 입증된 삶을 보여주는 자료 중의 하나다”라고 결론 맺었습니다.
또한 보스턴대학의 하워드 클라크 키(Howard Clark Kee)는 신약성경 외의 자료들을 연구한 후에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예수에 관한 전통들이 이 정도로 다양하게 전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인류사에 그토록 심오한 영향을 계속 끼쳐온 이 인물의 생애, 가르침과 죽음에 대한 내용들이 명료하면서도 놀랄 만큼 일관되게 정돈되어 있다는 증거들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처럼 예수님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서만 언급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적인 이해관계가 없거나 오히려 반기독교적인 성향을 지닌 역사가들조차도 '예수님의 역사적 실존'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그들의 기록을 통해 확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실제 역사의 인물이었냐 아니냐는 '종교적 믿음'의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이는 '고고학적 사실'에 관련된 문제이며, 논란의 여지조차 없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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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역사적 실존을 인정한다고 해도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음이나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예수님은 사실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거나, 십자가에 달려 사망하기는 했지만 결코 부활은 하지 않았다거나, 이 모든 사건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등의 '음모론'들을 내세웁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예수님이 죽은 이후에 어떻게 변했을까요? 만일,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십자가에서 죽은 후 부활하지 않았다면 상식적으로 이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수많은 기적을 행하는 것을 자신이 똑똑히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과 믿음을 가진 제자들이라면, 예수님이 스스로 십자가에 돌려 돌아가신 후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는 예언이 거짓이었음을 안 순간, '믿기 힘든 기적을 행하긴 했지만, 자기 말대로 죽음을 극복하지는 못한 희대의 사기꾼'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며, 배신감에 치를 떨며 그 조직은 와해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이후의 제자들의 행적을 살펴볼까요? 성경에서 살펴본다고 하면 행여 '인위적으로 기독교쪽에 유리한 문서'에서 찾아본다고 할까봐(물론 이런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다른 사료를 통해 확인해보겠습니다.
유세비우스가 쓴 '교회사'에는 예수님의 12 제자의 순교일지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베드로
로마에 가서 전도하다 박해를 견디다 못해 돌아오던 중 주님을 만나게 된다. 주님을 본 베드로는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나는 네가 도망쳐 나온 네 대신 로마로 가노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다시 로마로 간다.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주님과 같은 모습을 할 수 없다. 거꾸로 못 박혀져서 순교했다.
2. 안드레
헬라에 가서 전도하다가 아가야 성에서 십자가에 줄로 매달려 순교했다. 안드레의 달린 십자가는 X형이었다.
3. 야고보
예루살렘에서 헤롯의 박해에 칼로 목이 베여져 순교했다.
4. 요한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부탁하신대로 어머니(마리아)를 끝까지 모시고 있으며 유대 국내에서 전도하다가 예루살렘이 주후 70년 로마에게 멸망 된 후 에베소에서 전도했다. 그곳에서 온갖 박해와 고문 끝에 끓는 기름 가마에 집어넣었으나 기적적으로 튀어 나온다. 그를 박해하던 무리가 놀래서 그를 밧모섬으로 귀양 보낸다. 그곳에서 홀로 일생을 보내며 거기서 묵시를 받아 쓴 성경 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며 자기 수명대로 살다 자연사로 죽었다.
5. 빌립
소아시아 부르기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기둥에 매달려 찢겨져 순교했다.
6. 바돌로매
알메니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잡혔다. 그는 수 없는 매질을 당한 다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져 순교했다.
7. 도마
인도에 가서 전도하던 중 현장에서 군인들이 던진 창에 맞아서 순교했다.
8. 마태
이디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잡힌다. 잡혀 질질 끌려가면서 계속 전도를 했다. 결국 그들의 칼날에 목이 베여져 순교했다.
9. 알패오의 아들 야곱
군중들은 시체나 다름없는 그를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가서 밀어 떨어뜨려져서 순교했다.
10. 시몬
애굽으로 전도를 갔다 중 유대로 돌아와 그곳에서 전도하던 중 군인들이 쏜 화살에 의해 순교했다.
11. 야곱의 동생 유다
파사에서 전도하던 중 활에 맞아서 순교했다.
12. 맛디아
이디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관중들이 수없이 던진 돌에 맞아 순교가면서 복음을 외쳤다.
예수님의 12제자의 죽음은 성경이 아닌, 다른 문서에 이와 같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거짓이었다면, 수많은 기적을 직접 목도했음에도 믿지 않았던 믿음없는 제자를 포함한 12제자들이 모두 이처럼 한결같이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버려 순교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망과 부활 직후 로마 치하에서는 A.D. 64년 이후 A.D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 네로, 도미티안, 트라얀, 하드리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셉티무스 세베루스, 막시미누스, 데키우서, 발레리안, 디오클레티안 갈레리우스 등의 로마 황제에 의해 조직적이고 잔혹한 기독교 핍박(화형, 십자가형, 사자의 먹이로 던져짐 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오히려 더 퍼져나갔으며, 끔찍한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수많은 순교자가 끊이지 않았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기독교 박해와 기독교 공인은 너무나 중고등학생도 알고 있는 기본적인 세계사적 상식이므로 제가 굳이 근거를 들 필요성은 없겠죠? 이 모든 사실이 거짓이라면 어떻게 이런 집단적인 순교가 가능할 수 있을까요?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종교적인 열심으로 '순교'를 불사하는 '광신도'들은 어느 종교에나 있는 것 아니냐? 어떻게 순교자가 많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것이 진실임을 입증할 수 있느냐라고 말이죠. 충분히 일리있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이후에 불길처럼 번져간 기독교와 순교자들의 경우는 타 종교의 '순교'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당시 초대 교회 기독교 순교의 경우에는 검증되지 않은 '종교적 교리'에 세뇌되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목격되고 확증된 부활이라는 사실'에 기초를 했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부활한 이후 12명 자신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당시 수많은 사람들(500여명)에게 나타났다(고린도 전서 15장)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가장 믿을만한 문서인 사복음서와 신약 성경에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로 기록되어 있으며, 신약성경을 뺀 분명한 다른 로마 시대의 기독교 박해사와 이후의 드러난 역사적 기록과 그에 대한 정황을 살펴도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첫댓글 뭐래???
살아생전 당시의 기록은 왜 한개도 없을까나;;; 침략 등으로 설명은 부족한데
참으로 쓰레기같은 글이네요. 위에서 언급한 예수 실존 역사 기록은 모두 예수와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 사후라는 시기에 "...카더라"는 기록들로 예수가 실존인물이라는 구체적 정황보다는 종교적 정황만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라는 존재가 실존했다는 그 시대에 그와같은 엄청난 기적질을 행하고, 가르침을 펴고, 유대를 발칵 뒤집고,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따라다니고, 4박음서나 그외의 헛된 기록들 처럼 그런 짓거리를 하고 사형당하고, 부활했다면 당시의 재판기록이나 당시의 로마의 행정문서, 하다못해 민간기록이라도 단 하나라도 있어야 합니다. 모두 50년 100년 후의 기록들이고 위조에 가까운 거짓된 기록이 대다수죠.
단군시대의 역사적 전쟁이나 정치적 실존성은 당대의 중국 기록이나 비파동검이나 산더미 같은 홍산유적.유물들이 엄청나게 있지만, 예수라고 일컫는 그 인물은 전무합니다. 위의 글은 역사적 예수를 언급한 글이 아니라, 오로지 미신(기독교 믿음)에 충만해서 여러가지를 갖다 붙인 헛소리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예수라는 종교는 유대교에서 나왔지만 당시의 신의 아들이니, 심판이니, 천사니, 부활이니 하는 모든 교리가 고대 중동의 다른 종교 교리를 빌려온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확실한 거짓뿌렁이의 증거죠. 유대교엔 그런 교리가 없었고, 그런 교리를 언급하는 자들을 죽여버릴 정도로 유대교는 엄금하고 있었죠.
기독교는 유대교인들이 나라를 잃고 로마나의 강력한 문화권 안에서 로마, 헬라 종교, 헬라 이원론 철학, 디오니소스교, 조로아스터교, 이스터교, 미트라교....등 당시의 풍부한 중동의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당시의 유대인들의 종교투항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가 실존이냐 아니냐는 어리석은 논쟁입니다. 유대인들이 유대교에 헬라의 종교와 철학을 믹스해 가는 한 현상이라고 봐야 합니다. 예수는 인물이 아니라, 현상의 상징어, 문화의 충돌에서 비롯된 문화융화의 한 현상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무슨 제자가 실존했고 그에 대한 기록이니 하는 것은 심봉사와 심청이와 뺑덕어미를 기록한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슨 기독교의 순교는 부활에 기반했고 그 죽음은 다른 종교의 순교와 다르다고 거의 정신병에 가까운 소리를 하는데 이것은 아주 기독교에 물든 사람의 뇌 자체가 착각병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종대왕 시대의 4육신의 죽음의 과정을 돌이켜 봐야합니다. 수양대군의 온갖 감언이설과 유혹, 참아 입에 담기 힘든 모든 고문을 당하고, 사지가 찢어져 나가는 고통속에서도 그들은 끝까지 단종에 대한 충절을 지켰습니다. 이 죽음은 기독교의 개죽음(순교)와 비교할 수 없는 거룩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뒈졌다가 살아나서 고통을 견딘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역사속의 헤아릴 수 없는 순교과 순절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쓰다 버린 쓰레기 미신에 뇌가 세뇌되어 거룩한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욕보이는 유대인 흉내 쥐바귀새들은 이래서 유대인들에게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팔아넘긴 매국노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쓰다 버린 미신을 믿는다는 명목으로 우리 민족의 종교와 역사와 정신과 전통과 거룩한 혼을 팔아넘기고, 유대인 노숙자놈 하나를 주인님 주인님 하는 이 정신병균은 반드시 우리 사회와 민족이 척결하고 치료해 줘야 하는 중대한 범죄이며 매국행위이며, 병입니다.